[“불편 말하면 찍힌다” 좌절하는 사람들] 
 편한 신발 신고 싶어도 병원선 ‘간호사 유니폼 논리’ 거부 
 “명절 때 부엌 일 남녀 함께” 말하자 가족마저 “버릇없다” 
[저작권 한국일보]불편함을 토로하지 못하는 갑남을녀

현대인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불편을 겪으며 살아가면서도, 유독 온라인상에서는 ‘프로불편러’를 ‘매사를 삐딱하게 보는 사람’으로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프로불편러와 갑남을녀의 차이는 ‘불편을 말할 용기’를 갖고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일상에서 느끼는 각종 부조리와 불편함은 누군가 개선의 목소리를 내기 전에는 쉽게 고쳐지지 못한다. 하지만 목소리를 낼 용기를 발현한다면 기존 질서를 지탱하려는 시스템(예를 들어 고리타분한 상사, 비합리적인 관료주의 등)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좌절하고, 나아가 부정적인 프로불편러로 남겨지는 이들도 적잖게 나온다.

◇업무효율 따져도 “조직논리” 메아리만

간호사 장모(31)씨는 얼마 전 다른 병원에서 역시 간호사로 근무하는 대학 동기와 대화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장씨의 동기가 “우리 병원에서는 간호화(신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알려 줘서다. 장씨가 일하는 병원은 신발도 하나의 유니폼으로 간주해 정해진 것만 착용할 수 있는데, 해당 신발은 반발력이 떨어져 오래 신고 일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게 장씨의 설명이다. 그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간호사들은 하루 10시간 가까이 선 채로 일하기 때문에 신발이 안 좋으면 무릎, 발, 다리에 무리가 가고 허리 디스크에 시달리기도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장씨는 동기의 말을 듣고도 선뜻 병원 측에 간호화를 자율화하자고 건의하지 못했다. 이미 선배들이 추진했다가 무산됐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어서다. “입사하기도 전에 선배들이 나서 신발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자고 건의했지만 ‘유니폼 논리’에 막혀 무산된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에 선배들이 절충안으로 ‘푹신하면서도 반발력 있는 신발을 단체 구매하자’고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관철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장씨는 “편한 신발을 신으면 간호사들의 업무효율성이 높아지고 장기적으로 병원측에도 이득이 될 텐데 굳이 이를 막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이미 한 번 병원측에서 강하게 거부했던 사안이라 다시 말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합리적인 이유로 불편함을 제기하려 했지만, 단단한 조직사회의 벽에 부딪혀 현실화시키지 못한 사례이다.

◇조금만 달라도 ‘튀는 사람’ 취급

중견기업에 다녔던 박상운(34)씨는 얼마 전 퇴사했다. 6년 전 입사 당시만 해도 ‘개인 의자’ 문제로 회사를 그만두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는 “남들이 보면 황당한 이유로 퇴사했다고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며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박씨는 지난해 심각한 허리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그는 “직업 특성상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에 이상이 생겼다”며 “의사가 ‘자세를 자주 바꾸고 오래 앉아 있어야 하면 되도록 허리에 좋은 의자를 쓰라’고 처방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의 말을 듣고 직장에 개인 의자를 가져오겠다고 말했지만, 그때마다 부장은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라’, ‘운동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참다못한 박씨가 의자를 회사로 주문하자 부장은 박씨를 ‘튀는 사람’ 취급했다. 부장은 박씨 자리 근처를 지날 때마다 핀잔을 줬고, 같은 부서 동료들도 농담 삼아 박씨를 ‘의자왕’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금방 사라질 꼬리표라고 믿었는데 인사이동으로 부서를 옮긴 후에도 계속해서 이 일이 회자됐고, 결국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또 튀냐’는 식으로 핀잔을 받게 되더라고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퇴사했습니다.” 그는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는 절대 회사에서 정해준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가족들에게도 속마음 감추고

직장인 김혜미(31)씨는 지난 추석 연휴 동안 큰집을 방문했다가 어른들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사건의 발단은 추석 전날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김씨는 “부엌에서 큰어머니와 엄마를 도와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큰아버지께서 부엌을 찾아와 ‘배가 고프다’며 음식을 찾았다”라며 “항상 여자들만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데 의문을 품고 있던 터라 큰아버지께 ‘같이 음식을 준비하자’고 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냉랭해졌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날은 김씨의 ‘도발’이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진짜 문제는 추석 당일인 다음날 터졌다. 차례가 끝나고 식사를 마친 뒤 상을 치우는 과정에서 “여자들이 음식을 했으니 상 치우기와 설거지는 남자들이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가 어른들의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친척들이 전부 놀란 토끼눈이 돼서 쳐다보더라고요. 할머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버릇없다’라며 큰 소리로 호통을 치셨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부모님께 크게 혼났다는 김씨는 “잘못된 관습을 바꿔보려고 어렵게 꺼낸 이야기인데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라며 “가족들마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걸 보고 회사에서는 절대 속마음을 입밖에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연인 사이에도 말 못하는 불편함

직장인 장소영(30)씨는 남자친구에게도 일상생활에서 느낀 불편함을 마음껏 말하지 못한다. 언젠가부터 장씨가 성차별과 관련한 일을 언급하면 남자친구는 “언니, 이거 나만 불편해?”(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스트를 비꼴 때 사용하는 말)라고 응수하며 웃어넘기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남자 직장상사로부터 “결혼하고 언제 애를 가질 계획인지 꼭 알려달라. 그래야 너랑 같은 부서에 지원하는 일이 없을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 분개했지만, 이를 남자친구에게 말하지 못했다. 장씨는 “남자친구는 보나 마나 ‘농담으로 한 말에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며 나를 유별난 사람 취급할 게 뻔하다”며 “일상에서 성차별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때마다 남자친구는 내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기보다 어린아이가 하는 ‘푸념’ 정도로 취급한다”고 말했다.

장씨에 따르면 남자친구의 태도에 화가나 싸운 적이 여러 차례였지만 변한 게 없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어보라 선물했지만 왜 이런 걸 주는지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내년쯤 남자친구와 결혼하기로 얘기가 오갔는데, 부부가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서로 허심탄회하게 말하지 못 할 거라 생각하니 끔찍해요. 결혼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장씨는 “최근 젊은 세대에 ’싫존주의(타인의 싦음마저 존중하자는 주의’)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며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호, 불편, 부당함을 온전히 인정해주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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