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김명규, 공연 리뷰ㆍ무용수 소개 등
“이렇게 멋진 무용수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이 세상에 좀 더 알려지면 발레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국립발레단에서 드미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발레리노 김명규(30)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를 대중에게 어떻게 하면 잘 알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고심 끝에 나온 결론은 자신이 직접 해보자는 것. “우주 최초, 세계 최초 현직 발레리노 유튜버”라는 생기발랄한 인사말로 시작하는 영상은 이런 고민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지난 15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하고 벌써 영상을 4편이나 제작해 올렸다. 제대로 해보겠다는 뜻이었다. 최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명규는 “컬링, 피겨스케이팅처럼 비인기 종목 스포츠가 인기종목이 된 것처럼 발레에도 그런 계기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무용원을 졸업한 김명규는 2014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하기 전 케이블채널 Mnet의 춤 경연프로그램인 ‘댄싱9’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공연을 앞둔 그를 응원하기 위해 팬들이 ‘도시락 조공’을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베를린 국제무용콩쿠르 대상, 바르나 국제무용콩쿠르 금상 등을 수상해 이미 실력으로 인정 받았다. 입담과 재치까지 갖춰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유튜버가 되겠다는 결정에는 ‘댄싱9’ 출연 경험이 영향을 줬다. “그때는 발레를 더 잘하고 싶어서 (‘댄싱9’ 출연 이후)방송 프로그램 섭외에 잘 응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방송에서) 말을 재미있게 한다는 평을 들었던 기억이 나서, 유튜브를 통해 관객들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에 따르면 한국에서 발레를 다루는 유튜버는 손에 꼽는다. 현역 발레리노가 1인 미디어가 돼 콘텐츠를 만든다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을 홍보하는 게 목표는 아니다. 그는 “대중들에게 발레는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며 “공연 리뷰와 같이 무용수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16년 만에 내한한 무용단 네덜란드댄스시어터(NDT)1의 공연을 무용수 입장에서 설명해주는 미리보기 영상도 찍어 올렸다. 자신이 만든 영상처럼, 그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연을 지향한다.
지난 8월 국립발레단의 안무가 육성프로그램인 KNB무브먼트에서 그는 안무가로도 변신했다. 판소리 ‘춘향전’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몽룡아~~~~~~’는 발레와 한국무용, 현대무용이 조합된 춤으로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7명의 이몽룡이 춘향이를 차지하기 위해 시기질투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 등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무용수라면 누구나 주역을 하고 싶어해요. 이몽룡을 1명으로 정하면 다른 무용수는 백댄서가 돼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모두를 ‘센터’에 한 번씩 설 수 있게 했어요. 발레리노들의 실력을 아이돌처럼 뽐내고 싶은 마음으로요.”
김명규는 주변이 ‘콘텐츠 덩어리’이기 때문에 영상의 주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국립발레단 안에는 김지영 등 수석무용수들과 유수 콩쿠르에서 상을 받은 젊은 무용수들이 많다. 김명규의 유튜버 도전은 수명이 길지 않은 직업 발레리노에 대한 고민의 결과이기도 했다. “아직도 발레를 잘 하고 싶고, 욕심과 열정이 많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발레단의 형, 누나들이 은퇴를 보면서 잘 하는 게 발레밖에 없는 나는 은퇴 후에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튜브는 은퇴 후를 생각한 계획 중 하나예요.”
유튜브를 통해 수익을 얻게 된다면 그는 모교인 한예종에 제빙기를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무용수들이 부상을 입으면 병원에 가기 전 바로 얼음찜질을 해 회복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다. “주변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고등학생 시절에는 집안이 어려워 학원비를 한 번도 내지 못했지만 선생님이 절 가르쳐주셨거든요. 저도 그렇게 베풀고 싶어요.”
김명규의 본업은 발레리노다. 국립발레단 신작인 ‘마타하리’에서 니진스키 역을 맡아 무대에 선다. 니진스키는 발레 뤼스의 인기 무용수였던 실존인물이다. 발레리나를 꿈꿨던 마타하리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새로 제작된 작품인 만큼 그가 맡은 역할은 중요하다. “니진스키는 높은 점프로 유명했던 무용수예요. 제 특기도 체공 높은 점프거든요. 캐릭터 해석이나 동작이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맞아 떨어져서 기분이 좋아요.” 그는 꼭 해보고 싶은 역할로 ‘호두까기 인형’의 왕자를 꼽았다. “제 이미지가 왕자 같지 않아도 저만의 매력으로 왕자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빨간 타이츠를 입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웃음)”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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