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1일 저녁, 경북 경주시 월성원자력발전소 3호기에서 냉각재(물) 일부가 원자로 건물 안으로 새어 나왔다. 열기를 식히기 위해 원자로를 순환하는 냉각재에는 방사성물질이 들어 있어 당시 작업자 29명이 방사선에 피폭됐다. 원전이 정지된 채 정기검사 중이었고 피폭량이 적어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월성 3호기의 냉각재 누출은 인재(人災)였다. 원전을 운전하는 작업자들 간의 의사소통이 잘못돼 일어났다. 그런데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단지 작업자 탓만은 아니다. 힘든 일을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와 급속도로 진행 중인 탈원전 정책이 맞물리면서 원전을 돌리는 핵심 인력이 줄어들고 있는 게 근본 원인이다. 원전 비중을 줄이고 재생 에너지를 늘리는 건 가야 할 방향이다. 하지만 지어놓은 원전이 모두 멈출 때까지 안전하게 운영해야 하는 것 역시 정부의 책임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사고 당시 월성 3호기 주제어실(MCR)에선 원자로조종사(RO)가 현장 작업자에게 냉각재 밸브 개폐를 지시했다. 해당 작업자는 여러 개의 밸브 중 일부는 열고, 일부는 닫혀 있는 걸 확인해 보고했다. 그런데 사고 이후 조사에서 RO와 현장 작업자가 말한 밸브가 서로 달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냉각재 흐름에 관여하는 여러 밸브 중 닫혀야 할 밸브가 열린 바람에 냉각재가 흘러나온 것이다. RO와 작업자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자칫 큰 사고가 발생할 뻔했다.
당시 월성 3호기 MCR에서 근무한 RO는 3호기가 아닌 4호기 소속이었다. 3호기 RO 자리가 1년 5개월째 공석이던 탓에 다른 원전의 RO들이 돌아가면서 자리를 대신 채워주고 있었다. RO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원전 기술자는 “오랫동안 함께 손발을 맞춰온 3호기 RO가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며 “다른 원전의 RO가 대신 운전하는 게 법적 문제는 없지만, 번번이 다른 RO가 대체 투입될 경우엔 원활하고 조직적인 의사소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원자로를 운전하는 RO와 이를 감독하는 원자로조종감독자(SRO)는 원전을 작동하는 핵심 인력이다. 원전의 심장부인 MCR에 근무하며 현장에 필요한 지시를 내리고 수시로 운전 상황을 점검한다. 대부분 원전에서 10명 안팎으로 구성된 근무조가 6개씩 운영되는데, 이 중 3개조는 8시간씩 나눠 24시간 교대근무를 하고 1개조는 비상 상황을 위해 대기한다. 다른 1개조는 교육을 받고, 나머지 1개조는 휴무다. 법적으로 조마다 SRO를 1명, RO를 2명 둬야 하기 때문에 원전 한 호기당 최소한 SRO 6명, RO 12명이 필요하다.
SRO나 RO가 되려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주는 국가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이공계 4년제 대학을 졸업했거나 같은 수준 이상의 학력이 있는 사람 중 원자로 조종에 관한 실무 경력을 각각 3년, 1년 이상 갖춰야 SRO와 RO 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원전 근무자들 가운데 이 면허를 따려는 이가 점점 줄고 있다. 3교대의 힘든 근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데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미래마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SRO나 RO 면허는 원전 아니면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없다.
특히 월성 원전에선 SRO와 RO 면허 취득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한수원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삼화(바른미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월성 원전에서 2008년 SRO와 RO 면허를 새로 취득한 인원은 각각 10명, 14명이었으나 지난해엔 6명, 2명에 불과했다. SRO와 RO 면허는 원자로 유형마다 각각 따야 한다. 국내 대부분 원전이 경수로인 것과 달리 월성 원전은 중수로인 데다 4기밖에 없고, 10년 뒤면 설계수명이 끝난다. 월성 원전의 RO 면허를 따봤자 10년 뒤엔 무용지물이 될 거란 생각에 젊은 근무자들이 외면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월성 3호기 한 근무조의 RO 자리가 약 1년 반 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었고, 결국 냉각재 유출 사고로 이어졌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RO 감소 추세는 원전 종사자들의 사기 저하가 반영된 현상”이라며 “이를 방치하면 남은 원전의 안전 운전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수원은 당장 RO가 부족하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대부분 원전이 보유하고 있는 현재 RO 인력 수는 최소 필요 인원보다 많다. 그러나 젊은 근무자들의 RO 면허 취득 기피 경향이 심해지는 걸 고려하면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미 원전 현장에선 SRO와 RO를 포함한 전문 인력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월성 원전 노동조합 관계자는 “인원이 모자라 주52시간 근무를 지키자면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원전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런 상황 때문에 “90일 동안 평균 주5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하는 걸로 노사가 협의했고, 빠른 시일 안에 인원을 보강해달라고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전 전체를 꿰뚫어 보면서 MCR을 맡을 수 있는 RO 한 사람을 키우려면 적어도 6, 7년은 걸리는 만큼 RO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선 지금부터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원전을 더 짓지 않더라도 정부가 가동하기로 한 23기의 원전은 최장 2075년까지 남아 있다. 그때까지 핵심 인력의 안정적인 확보는 필수다. 탈원전 과정에서 기존의 ‘원전 생태계’에 어느 정도 변화는 불가피하겠지만, 생태계 자체를 무너뜨려 관련 인력 부족 사태까지 초래해선 안 된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삼화 의원은 “원전을 차츰 줄여나가는 데는 동의하지만, 마지막까지 원전을 안전하게 운전하는 데 정부 차원의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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