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쫓는 대신 피해자 구하는 경찰, 케어(CARE) 요원
# 아버지를 ‘폭행치사’로 잃었지만 맏딸 김민정(가명)씨의 얼굴에선 눈물이 말랐다. 당장 스물둘의 나이로 가장이 된 그 앞에 놓인 것은 수천 만원의 병원비. 아버지는 꼬박 스무 밤을 중환자실 병상에서 사경을 헤맸다. 막막한 생계 앞에서 애도조차 잊은 언니를 보며 동생 민서(가명ㆍ당시 17)양도 마냥 울 수 없었다. 그렇게 자매가 꾹꾹 눌러 담아야 했던 눈물은 몇 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차 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 돌아가신 게 언젠데 이제 와서?” 무감한 수군거림이 무성했다. “아니야, 괜찮아, 당연해. 마음껏 울어도 돼요.” 어떤 낯선 이의 손을 잡고 그들은 비로소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케어 요원 최진이(40) 경사가 내민 손이었다.
주먹은 대개 ‘술김’에 뻗고, 칼날은 대개 ‘홧김’에 휘두른다. 그래서 범죄는 일종의 ‘재난’이다. 술김이 오르는, 홧김이 치받는 그 찰나의 순간에 누군가의 인생은 ‘복구 불능’의 상태로 무너진다. 비단 살인 사건 유족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매일같이 다니던 길 위에서 납치돼 강간 위협을 당했던 여성은 집 밖으론 한 발자국도 나설 수 없고, 눈 앞에서 어머니의 시신이 차게 식어가는 모습을 본 꼬마는 평생 그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약자라서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라서 또다시 약자가 되는 굴레에 갇힌 사람들, 이들에게 다가가 손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 범인이 아닌 피해자를 찾아 다니는 별난 경찰들, 범죄피해심리전문 ‘CARE(Crisis-intervention, Assistance, REsponse)’ 요원들이다. 삶이 재난으로 바뀐 피해자들에게 “괜찮다” 건네는 이들의 한마디는 곧 ‘응급처치’, 케어 요원들이 스스로를 응급 대원이라 칭하는 이유다. 범죄가 할퀴고 간 현장을 누비며 하염없이 방치된 ‘마음의 고름’을 짜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경찰이야, 상담사야? 도대체 정체가 뭐냐고요?”
한마디로 ‘둘 다’ 필요해서 ‘둘 모두’가 된 사람들이다. 심리학 안에서도 특수 심리치료부터 심리상담, 임상심리까지 각자 전공 분야는 달랐지만, ‘심리학자의 손길이 가장 절실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결국은 한 곳으로 모아졌다. “경찰에 들어오기 전엔 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났었어요. 내담자 중 상당수가 범죄 피해자였는데, 대부분은 마음에 난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고 수개월, 수년을 그저 자신을 방치한 상태였죠. 만약 내가 이 사람들을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더라고요.” (김은진) 몸의 상처에 비유하자면 범죄피해자들의 정신적 상해는 ‘중증외상’에 가깝다. “경찰은 그렇게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이고요.” 범인을 쫓는 것만으로도 이미 두 손이 모자란 형사와 수사관들의 사이를 누비게 된 이유다.
특화된 전문지식은 현장에서 십분 빛을 발한다. “범죄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대개 분노거든요. 앞에 앉은 상대가 누구든 일단 가시 돋친 말들을 장대비처럼 쏟아내는 거예요. 바로 이럴 때 형사들과 저희의 반응이 엇갈리곤 하죠.”(최진이) 형사도 사람인지라 욕설까지 난무하는 고함 소리가 듣기 좋을 리는 없다. 피곤한 표정에선 ‘어휴… 진상 만났네’란 속마음이 대번에 읽힌다. “저희는 보통 쾌재를 불러요. 자기감정을 마음껏 분출한다는 건 심리학적으로 아주 좋은 징후거든요. 일단 마음에 맺힌 분노를 해소하고 나면, 어떤 치료를 하든 효과가 훨씬 좋죠.” 그래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줄 뿐이다. 당장 ‘원망할 사람’이 필요한 이들에게 잠시라도 그 상대가 되어주는 과정이다. “그렇게 힘을 다 빼시고 나면 따뜻한 물 한잔 떠다 드리며 ‘이제 좀 괜찮으세요?’라고 물어요.” 그게 시작이다. 요령은 늘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피해자 다독이고, 형사 설득하고
수사관 앞에선 잔뜩 얼어붙어 버리는 피해자들의 긴장을 천천히 풀어주며 ‘진술 산파’ 노릇을 하기도 한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겼을까? 어린 성추행 피해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태어나 경찰서도 처음 와 보는 친구였어요. 이미 입구를 지나는 그 순간부터 온 몸이 잔뜩 위축됐더라고요.”(황지현) 특히 성범죄를 당한 여성들은 남성 수사관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하나하나 털어놓는 과정 자체를 수치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아무개가 성기를 만지게 했다’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는데, 자꾸만 얼버무리게 되는 거죠.” 망설이는 피해자들을 설득해 ‘2차 진술’을 결심하게 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부끄럽다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형사들은 그런 걸 듣는 게 일이신 분들이라고 충분히 안심을 시켜주죠. ‘그러니 결코 이상한 게 아니야’라고요.” 그저 끄덕여주고, 다독여주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은 금방 용기를 낸단다.
이들의 존재감은 형사와 피해자 간의 긴장이 팽팽한 상황에서 더욱 커진다. “실종 신고가 접수된 한 여성을 우여곡절 끝에 찾았는데, 처음엔 그저 ‘괜찮다’고만 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감금된 채로 가학적인 성폭행을 당했던 거였죠. 가해자가 언제 보복을 해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둘러댄 거였어요.”(최진이) 견디다 못한 피해자는 사건 발생 3개월 만에야 경찰서를 찾았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피해자가 진술을 마음먹게 하는 데만 꼬박 수개월이 걸렸죠. 그런데 막상 녹화실에 들어가니 공황장애 증상을 보이더라고요.” 하루라도 빨리 증거를 찾아 수사를 진척시켜야만 하는 형사는 속이 터졌다. “옆에서 보기엔 그냥 일시적 호흡곤란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피해자의 입장에선 ‘당장 여기서 쓰러져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극도의 불안 상태인 거죠. 결국 답답해하는 형사님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 진술을 중단했어요.” 같은 일터 안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서로의 성격과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매 상담 때마다 장장 ‘5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며 몇 달을 더 노력한 끝에 최씨는 비로소 피해자의 진술을 받아낼 수 있었다. “지금도 연락이 와요. ‘생명의 은인’이라면서요.” 피해자가 만약 최 경사의 도움 없이 끝내 공황장애의 벽을 넘지 못했더라면, 아직도 가해자에 대한 공포의 그늘 아래서 떨면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감정을 잃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지옥’
“제가 맡았던 케이스 중에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사건이 있었어요. 살인도 자살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이뤄졌죠.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이 얘기하길 ‘아이들이 가정폭력을 일상적으로 당해서 그런가? 굉장히 덤덤해요’라고 하더라고요. ‘덤덤하다니…’ 그 말을 듣자마자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죠. 그건 덤덤한 게 아니라 감정이 마비돼 버린 상태거든요.”(최진이) 이들이 피해자의 분노 앞에서 내심 안도하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피해자에게도 상담가에게도 가장 어려운 상황은 ‘감정을 분출하는 방법 자체를 아예 잊어버린 경우’다.
보통 비전문가들은 큰 동요가 없는 피해자들을 보면 ‘원래 감정이 희박한 사람’이라고 넘겨 짚거나 ‘남들보다 강하구나’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케어 요원들은 ‘소리 없이 피를 쏟는 이들’을 직접 찾아 다닌다. “아버지를 폭행치사로 잃었던 김민정(가명)씨네 자매 경우가 대표적이에요. 당시 맏딸 민정씨가 대학생이었고 한창 취업 준비를 할 때였어요. 그 기막힌 상황 속에서도 전문점 커피까지 포장해 와서 저희를 대접하더라고요. ‘와주셔서 감사하다’ 웃으면서… 단번에 봐도 예사 상황이 아니었죠.”(최진이) 고통조차 스스로 차단해 버린 것이었다. 감정을 잃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로부터 반년쯤 지났을까. 1심 재판이 끝날 때쯤에서야 눌러둔 감정이 터지더라고요. 사건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은 더 더뎠어요. 장장 2년이 걸렸죠.” 피해자전담경찰관이 사건이 종결된 후에도 이따금씩 이들을 찾아 살뜰히 챙긴 덕이었다. 뒤늦게 ‘도와달라’는 용기를 낸 민서 양은 10차례의 상담 내내 줄곧 아빠 얘기만 하며 울었다. “몸은 앞을 향하고 있지만, 시선은 계속 뒤에 두고 있었던 거예요. 거기 보내지 못한 아버지가 있으니.” 제 때 하지 못한 애도는 일종의 ‘빚’이었던 셈이다. 빚을 청산한 자매에겐 그렇게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겼다.
◇”당신이 원할 때” 상담의 통제권, 피해자에게
그렇다면 피해자들이 감정을 잃는 이유는 뭘까. “세상에 대한 통제감을 잃은 거죠. 우리가 파란 불일 때 길을 건너고, 빨간 불일 때 멈추는 건 ‘합의된 규칙을 지킬 때, 나는 안전할 것이다’란 통제감이 있어서예요. 그런데 어느 날 빨간 불 신호를 무시한 차에 치어버렸어요. 그럼 무력감이 엄습하는 거죠. ‘세상은 내 의지와 무관해, 나는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할 거야’라는.”(최진이) 살인사건 피해자의 유족들이 하루아침에 회사를 그만둬버리거나 생업을 팽개치는 것은 바로 그런 무력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일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다. “그래서 피해자 상담의 제1원칙은 세상에 대한 통제감을 회복시켜주는 거예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요. ‘상담은 2~3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하지만 언제든지 힘드시면 그만하셔도 된답니다’라는 말은 그저 의례적인 안내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통제권을 쥐어주는 과정이에요.” 오로지 당신이 원할 때 시작하고 끝내겠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 범죄 자체를 막을 순 없었을 지라도, 그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건 가능하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에서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한 가지 또 정말 중요한 게 있죠.”(황지현) 아무리 안타까워도 무력감에 빠진 피해자에게 “왜”라 반문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피해자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지인들도 함께 상담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형사들도 가끔 그런 실수를 하세요. ‘그러게 거길 왜 가셨어요?’라고 묻는 거죠. 가족들은 속상한 마음에 ‘늦게까지 술을 마신 이유가 뭐야’라면서 몰아세우기도 하고요.“ 하지만 피해자는 이미 자책하고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기에 급급한 것도 그래서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범죄피해자가 된 것은 내 탓이다’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 “오직 나쁜 마음을 먹은 가해자가 잘못이라는 걸, 상담사 혼자 얘기한다고 납득이 가는 건 아니거든요. 피해자가 다시 의지를 회복할 수 있기 위해선 ‘네 잘못이야 아니야, 넌 할 수 있어’란 주변의 믿음이 무엇보다 간절하답니다.”
◇사람은 없고, 돈은 더 없고… 한계 다다른 현장
“케어 요원 3기 이후 4기가 뽑히는 데에 무려 5년이나 걸렸어요. 1기 특채 이후 1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전국에 20명뿐이랍니다. 일선 경찰서마다 1명씩 피해자전담경찰관이 있긴 하지만, 케어 요원과는 달라요. 심리학 전공자나 상담 전문가는 아니거든요. 아직까지 저희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분들도 계실 정도니까…”(김은진) 지난 2016년, 5년 만에 치러진 ‘4기 케어 요원 특채’에 선발돼 1년 간의 지구대ㆍ수사과 순환근무를 마치고 올해부터 피해자를 만나기 시작한 김 경장은 생각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현장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경찰들조차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백방으로 뛰면서 ‘저희 여기 있어요! 이런 일들을 해요!’ 알리는 것도 오롯이 우리의 몫이니… 진이 금방 빠지죠.”
요즘 같은 국정감사 시즌엔 격무에 치여 ‘본업’인 피해자를 만나는 일은 되레 뒷전이 되기도 한다. 대도시를 제외하면 지방청 단위로도 오직 1명씩 배치돼 있다 보니 비슷한 고충을 함께 겪는 전우도, 쌓인 일을 나눠가질 동료도 마땅히 없다. 황지현 행정관처럼 상담 업무만을 전담으로 하는 공무원들이 올해 4월부터 경찰로 투입되긴 했지만, 피해자에게 의료비나 생계비를 지원하는 일, 당장 머물 거주지를 마련하는 일까지 모두 도맡아야 하는 케어 요원의 ‘과중한 업무’를 나누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오죽하면 형사들이 제 차가 들어오는 걸 보면 ‘어이~ 저기 택시 왔네’ 하며 놀리셨겠어요. 주행거리가 웬만한 택시 저리가라 였으니까요. (웃음) 심지어 경기 북부청에서 일할 때는 강원청보다 가깝다는 이유로 철원까지 커버했었죠.”(최진이) 하루 최소 3개 이상의 경찰서를 안방처럼 드나들며 쏟아지는 사건들을 쫓아 다니지만, 아직도 자신의 눈길이 미처 가 닿지 못한 곳에서 지쳐 쓰러진 피해자가 있진 않을까, 그저 불안한 마음뿐이다.
물리적 피해나 재산상의 피해가 미미할 경우, 피해자가 아무리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더라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상황에 좌절하는 순간도 적지 않다. “한 남자 고등학생이 공중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여성 분을 몰래 찍은 사건이 있었어요. 피해자전담경찰관이 지역 사회 성폭력상담소 쪽으로 상담 요청을 하니 ‘여기도 일이 너무 많다’며 돌려보냈다고 해요. 카메라이용촬영죄는 다른 강력사건에 비해 죄의 무게가 덜하다 보니 제대로 신경 써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제가 피해자를 만났을 땐 이미 공황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었고요.”(최진이)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한 버스를 타는 것조차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지원을 요청할 때마다 ‘카메라이용촬영죄? 더 중요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란 반응이 돌아왔다. “피해자의 간곡한 목소리가 ‘서면’으로만 전달되기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처럼 현장에서 직접 듣지 않는 한, 그 절박함에 공감하긴 힘들겠죠. 다만 ‘사람이든 돈이든 지금보다 조금만 더 넉넉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죠.”
한 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으로 책정된 880억 중 경찰이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이 고작 1.4%(12억)에 불과하다는 것도 이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 중 하나다. “칼에 찔린 피해자가 당장 응급실 치료비 16만원이 없어서 퇴원을 못하고 있는데 그 돈이 지급이 안돼요. 치료비나 긴급생계비를 내주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법무부 산하인데, 각종 증빙서류가 제출되기 전엔 사전지급을 일절 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가정폭력 피해자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부부가 별거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돈이 곧 가해자의 수중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남편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데 당장 아이들은 먹여 살려야 하는 딱한 경우들이 사각지대에 놓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장 필요한 돈을 만들기 위해 케어 요원들이나 피해자전담경찰관들이 ‘영업사원’으로 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업이나 자선단체 등을 주먹구구식으로 찾아 다니면서 ‘이런 사정이 있는데 피해자 긴급지원 기금을 모아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 거죠.” 이들이 없는 시간까지 쪼개 사방팔방으로 뛰는 이유는 하나다. 당장 ‘몇 푼’이 없어 벼랑 끝에 내몰리는 취약계층 피해자들을 그저 두고 볼 수 없어서. “다행히도 대부분 흔쾌히 참여해주시는데, 꼭 항상 물어보세요. 모금을 해서 피해자를 도와야 할 만큼 경찰에 돈이 없느냐고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참… 씁쓸하죠.”(김은진)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달려간다
피해자와 형사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는 건 예삿일, 피해자들의 ‘욕받이’나 ‘감정 청소기’ 노릇도 톡톡히 해내면서 밖으론 영업까지 뛰어야 한다. 범인을 잡는 일과 다르게 어지간해서는 표도 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몸ㆍ마음 어느 하나 성할 날 없는 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피해자 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뭘까.
“남자 친구의 폭행을 피하려다 피부가 찢기고 손가락뼈까지 부서졌던 아이가 생각나요. 겨우 이십 대 초반이었죠. 가정불화로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못 본 지 오래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좋지 않아 일찍부터 남자 친구의 집에 얹혀살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어쩌면 부모를 대신할 보호자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죠. 처음엔 엄마 손에 끌려와 엉엉 울기만 했는데, 한 번 두 번 얘기를 나눌 때마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하더라고요. 저는 거의 들어주기만 했어요. ‘너는 참 대나무 같은 아이라고, 볼 때마다 훌쩍훌쩍 자라 있다’고 격려해주니 알아서 옳은 판단을 내리더라고요. 안 나오겠다 버티던 아이가 결국 자기 손으로 그 집에서 짐을 싸서 나왔어요.” (김은진)
이들을 움직이는 건 결국 ‘누군가를 구하고 있다’는 생생한 감각이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괴로운 날들 속에서도 끝내 다시 고개를 드는 피해자들을 만날 때마다, 울컥울컥 뜨거운 의욕이 샘솟는단다. 그저 ‘듣는 귀’가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구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하기 때문. 그래서였을까. 피해자들의 사연을 하나씩 꺼내놓을 때마다 이내 눈가가 촉촉해지던 그들의 얼굴에선 하나같이 ‘고독한 확신’이 읽혔다. “그래, 내가 아니라면 누가?” ‘워라밸’과 맞바꾼 건 하염없이 무겁기만 한 ‘사명감’이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단다. 그들이 피해자들에게 원하는 것은 단지 하나. ‘고맙고, 또 고맙다’는 정성스러운 인사도, ‘당신은 내 삶의 은인’이란 화려한 찬사도 아니다. 범죄라는 재난의 끔찍한 잔해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것, 그렇게 ‘다시 살아가는 것’.
그래서 이 응급대원들은 오늘도 비명이 난무하는 현장으로 씩씩하게 나선다. 그리고 말한다. 무너진 게 아니라, 잠시 넘어졌을 뿐이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말이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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