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제때 받으면 범죄로 이어지지 않아
퇴원 후 관리 ‘외래치료 명령제’ 대안
조현병 환자 백모(47)씨가 경북 영양군에서 지난 7월 난동을 부리다 출동한 경찰을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10월 25일에는 대낮 거리에서 50대 조현병 환자가 행인 2명을 흉기로 찔렀고, 5일 뒤에는 경기 광명시에서 60대 조현병 환자가 ‘저 사람 때문에 인생이 잘못됐다’는 환청을 듣고 이웃 여성을 살해했다.
정신질환자를 향한 공포가 넘실거리고 있다. 20일 서울 강서구 PC방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피의자가 우울증 약을 복용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신질환 범죄자’에 대한 단죄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되어서는 안 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00만을 훌쩍 넘는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과연 정신질환자들은 잠재적 강력범죄자일까. 일단 불안의 주요 근거로 제시되는 수치는 여럿이다. 정신질환 범죄자는 지난해 기준 9,027명으로 2013년보다 54%가량 큰 폭 증가했다. 더불어 이들의 재범률은 65%로 전체 범죄자(47%)에 비해 훨씬 높다.
반면 범죄를 저지르는 정신질환자 비율이 0.08%에 불과하고, 이는 비(非)정신질환자(1.2%)보다 월등히 낮다는 수치도 엄연히 존재한다. 치료만 제때 받는다면 정신질환이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반박에 힘이 실리는 셈이다. ‘정신분열증’이라 불리다 2011년 정도부터 본격 대체된 병명 조현병(調絃病) 자체가 ‘현악기를 조율하면 다시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것처럼, 치료하면 다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
실제 영양 사건의 피의자 백씨는 조현병 치료를 중단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약을 끊은 지 40일 만에 범죄를 저지른 그를 돌본 사람은 70대 노모뿐이었다. 백씨가 입원했던 정신병원 관계자는 “약을 안 먹으면 곧 증상이 나타났던 환자라 퇴원해서 약만 잘 복용했다면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현재 조현병 등 국내 정신질환자 치료가 ‘발병→입원→퇴원’에 한정돼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환자들이 퇴원한 이후에는 복약 지도와 상담 등 지속적인 관리를 받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퇴원 이후 ‘치료의 연속성’을 보장해 줄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ㆍ정신재활시설 인프라는 취약하고 부족하다. 정신재활시설은 2016년 기준 336개로 시ㆍ군ㆍ구별로 평균 한 곳 정도에 불과하고, 각 지방자치단체 정신건강복지센터 역시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정신 감정과 치료를 담당하는 치료감호소의 수용 인원은 정원(840명)을 훌쩍 넘어 지난해 기준 1,091명에 달했다.
그렇다고 입원이 치료의 보루가 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조현병으로 진료받는 환자 10명 중 1명(13.7%) 정도만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감금치료’를 주로 했던 과거 정신병원에 대한 트라우마 탓에 환자가 입원을 거부하기도 한다. 게다가 지난해 5월 정신보건법 개정안 시행으로 ‘강제입원’ 요건이 강화되면서 무작정 입원을 강요할 수도 없다.
입원 치료도, 퇴원 이후 조치도 틈이 많다 보니 치료를 둘러싼 갈등이 가족을 비극의 피해자로 몰아가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2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집에서 아버지를 폭행하고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윤모(42)씨는 “부모님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 데 불만을 가졌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병원이나 각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치료와 관리를 일임할 게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양한 교류를 통한 재활시스템 구축을 강조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외래치료 명령제도’가 거론된다. 이는 정신과 전공의 등 전문인력이 환자의 자택으로 직접 찾아가 지속적인 관리를 하도록 하는 제도다.
권오용 한국정신장애연대 사무총장은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사회복지사, 간호사, 동료지원전문가(Peer Support Specialist)가 합심해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질환자들의 복약 관리와 주거 지원, 사회적응훈련 지원, 취업 지원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지역사회중심 정신보건서비스 체계를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유기적인 지원 서비스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소수자가 아니라 이웃으로 호흡한다는 얘기다.
4월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용역의뢰를 받아 ‘지역사회의 정신보건서비스체계’라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오현성 미 애리조나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복약 관리뿐 아니라 인지행동치료, 심리사회서비스 등이 적절하게 동반돼야 제대로 된 재활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자문=오현성 미 애리조나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도움=한국정신장애인권연대 카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