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발생한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은 중동 분쟁의 해묵은 변수 하나를 끄집어냈다. 다름아닌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 얘기다.
1928년 이집트에서 출범한 무슬림형제단은 소수 광신도들이 강압적으로 통치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정치와 달리, 이슬람주의에 기반한 대중정치를 지향하고 있다. 정당정치나 선거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건 물론 학생단체, 노동조합, 사회조직에 깊이 파고드는 노련한 조직화를 하고 있어, 아랍권에서 가장 대중적인 정치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각 나라별로 고유한 정치 환경과 시대 상황에 다이내믹하게 반응해 온 탓에 비폭력 노선만 고집해 오진 않았다. 예컨대 무슬림형제단의 시리아 버전인 ‘이크완 운동’은 1980년대 초반 시리아의 하페즈 알 아사드(바샤르 알 아사드 현 대통령의 부친) 정부에 대항해 무장봉기를 한 바 있다. ‘세속주의’ ‘독재’ ‘아랍 민족주의’ ‘군인 정치’ 등의 키워드가 다양하게 얽힌 중동 내 다른 정치 세력들과 갈등을 빚으며 오랫동안 탄압받아온 게 무슬림형제단의 역사다.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신정국가 사우디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바로 무슬림형제단이 상징하는 이슬람 대중 정치운동이다. 사우디는 2014년 3월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공식화했다. 그리하여 비판세력은 모조리 무슬림형제단 계열로 몰아가면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
다시 카슈끄지로 돌아와 보자. 서방 언론은 그를 마치 ‘리버럴’이나 ‘언론자유 투사’, ‘반체제인사’ 등으로 묘사하기 바쁘지만, 그의 인생 전체를 보면 무리가 있다. 카슈끄지는 사우디 왕정 체제에 수십년간 복무해 온 체제순응적 언론인이자, 사우디의 다양한 왕자들에 대한 자문 역할을 해 온 왕정체제의 핵심 엘리트로 살아 왔다. 한편으로는 무슬림형제단 가입 이력도 간과하기 어렵다. 예컨대 워싱턴포스트 8월28일자 칼럼에서 그는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미국의 거부감이 아랍세계 전체를 고통받게 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또 “어느 아랍국가에서든 ‘이슬람 정치’의 수용 없는 정치적 개혁과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며 “무슬림형제단을 제거하는 건 아랍세계에서 권위주의와 부패한 권력 통치하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었다. 이런 지적은 아랍의 현실에서 일면 타당한 면도 없지 않지만, 적어도 그가 ‘리버럴’ 성향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걸 말해 준다.
흥미로운 건 사우디도 무슬림형제단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점이다. 냉전시대 공산주의 블럭의 대항마로 보수극우 성향인 무슬림형제단은 이용가치가 높았다. 특히 이들을 포함해 이슬람주의자들이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지하디 전사들로 대거 흡수되던 시절, 지하디의 물주였던 사우디는 언론을 통한 지하디 프로파간다 작업에도 열을 올렸다. ‘기자 카슈끄지’가 오사마 빈 라덴을 인터뷰한 것도 이 시절이었다. “1980년대 초반 빈 라덴을 알게 됐다”는 카슈끄지는 CNN 안보분석가 피터 베르겐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사마는 그 시절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우디 무슬림형제단에 참여했다. 그냥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다만 좀 더 종교적이고, 원리주의적 성향이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정치학과 교수인 아사드 아부칼릴은 지난 15일 미 대안방송 ‘리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카슈끄지가 아랍어 기사와 영문 기사에 각각 다른 톤의 주장을 복잡하게 표출해 왔다고 지적했다. ‘카슈끄지는 왕자의 줄을 잘못 섰다’는 제목이 달린 이 인터뷰에서 아사드 교수는 “자말 카슈끄지는 (아랍어로 쓴 기사에서)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목소리를 냈다”며 “그의 정치적 입지는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소속된) 정의개발당(AKP) 정부와도 가까운 관계”라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 23일 카슈끄지의 죽음을 ‘정치적 살해’라고 규정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터키 AKP가 무슬림형제단과 정치적 노선을 공유한다고 보고 있다.
무슬림형제단 계열을 상대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가 벌인 전쟁은 군사작전이 진행 중인 예멘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버즈피드뉴스는 이달 18일 “중동의 왕정국가가 정적 암살을 위해 미국의 전직 군인들을 고용했다. 이는 미래의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UAE가 고용한 사설군사업체 ‘스피어 오퍼레이션 그룹’의 용병들이 예멘의 무슬림형제단 계열 조직 ‘알이슬라’의 지도자 안사프 알리 마요 암살을 시도했다는 폭로였다. 알이슬라는 현재 난잡하기 짝이 없는 ‘반후티(anti-Houthis) 전선’에서 사우디와 동맹으로 묶여 있다. 그러나 적과 동지가 순식간에 갈리는 예멘 분쟁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6월 사우디 주도로 UAE와 이집트, 바레인 등 걸프 4개국이 카타르를 봉쇄한 바 있다. 이들은 당시 개인 59명과 조직 12곳을 “카타르와 연계된 테러리스트”라고 발표했다. 명단에는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출신 성직자 유수프 알 카라다위, 그가 의장으로 있는 ‘무슬림 학자 국제연맹(IUMS)’ 등이 올랐다. 알 카라다위는 올해 1월 이집트 군사법정에서 부재 중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2004년 카타르에서 창립된 IUMS는 회원 9만명을 보유한 이슬람 학자동맹으로, 무슬림형제단의 정신적 지주로 여겨지고 있다. 사우디 등 걸프국들이 “카타르가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건 바로 이 조직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지난해 9월 초에도 지식인과 종교 지도자, 기업인 등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 이들 중 상당수를 구속했다. 해당 인물들의 체포를 수행한 건 지난해 6월 무함마드 빈 살만이 왕세자로 결정된 직후 만들어진 ‘국가안보의장대’였다. 당시 체포 명분도 ‘카타르 지원 자금의 수령’, ‘(사우디를 전복하려는) 카타르의 음모에 연루’ 등과 같은 것이었다.
구속된 인사들 가운데 ‘살만 알 와다’(61)라는 성직자는 1990년대 초 무슬림형제단 계열 ‘자와 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그 역시 IUMS 소속이다. 친 사우디 성향 언론 ‘알 아라비야’의 올해 4월3일자 칼럼은 “알 와다의 설교는 젊은이들을 유혹해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하도록 부추긴다”고 적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달 12일 보도자료에서 “살만 알 와다는 사우디의 테러리즘 단죄 법정에서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다”며 “그의 37개 혐의 중 대부분은 무슬림형제단, 카타르 정부와 연계됐다는 것이지만 구체적 내용은 없다”고 꼬집었다.
카슈끄지 암살은 작금의 중동분쟁에 종파나 패권세력 간 다툼뿐 아니라, 대중적 이슬람주의 정치세력과 이들을 적으로 설정한 절대왕정 세력의 ‘외교전’ 양상도 있음을 들춰내 보였다. 당장 궁지에 몰린 쪽은 사우디 왕실이지만, 그들이 공격적으로 진척시켜 온 패권 프로젝트, 예를 들어 예멘전쟁이나 범이슬람군사동맹 등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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