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오른 소설·소설집 10편을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두 편씩 글을 싣습니다. 본심은 11월에 열립니다.
‘여름, 스피드’는 왜 이렇게나 아름다울까. 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올까. 사랑일까. 그런데 사랑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고, 사랑을 들인다고 해서 소설이 절로 아름다워지는 것도 아닐 텐데…… 무엇일까. 왜일까. 혹시 소설 속 인물들이 아름다울 때까지 사랑을 하는 덕분일까. 더불어 작가가 아름다울 때까지 사랑을 쓰는 덕분일까.
‘여름, 스피드’의 사랑은, 다름으로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다수의 이들이 막연하게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아니 달라야 한다는 믿음과 강박으로 애써 후미진 자리로 밀어두곤 하는) 소수의 사랑이 다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설핏 생각해보아도 모든 사람의 사랑이 같은 종류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정확히 반사랑적이다. 사랑의 본질에서 영영 벗어난 것이다. 소수든 다수든 모든 사랑의 기제는 상대와 내가 다른 존재라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다름의 간극에서 다정과 감정, 이해와 오해, 비밀과 거짓말 같은 것이 생겨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간극으로 슬퍼하기도 하고 혹은 지나치게 좁혀진 간극을 지겨워하기도 하지만, 일순간 “기분 좋은 땀냄새” 같은 마음이 훅 끼쳐 들며 이 모든 것들이 날아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너무너무 좋았다!”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 사랑이란 나만큼 복잡다단한 존재가, 그래서 더욱 귀한 존재가 또 있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임을 김봉곤의 소설을 읽으며 다시 생각한다.
나는 김봉곤의 소설을 세 번 읽었다.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독법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인물과 관계에 집중을 했고 두 번째에는 서사를 좇아갔다. 그리고 세 번째는 문장에 집중해 문장 단위로 끊어 읽었다. 소설 텍스트의 시적 독서라고 해야 할까. 그의 소설 속 인물도 서사도 문장도 “너무너무 좋았다!” 특히 인상 깊게 남은 것은 어떤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작가의 태도가 반영되지 않은 문장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결같은 사람이 보이는, 한결같은 사랑의 태도.
작가에게 무례가 될 수도 있으나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컬리지 포크’ ‘여름 스피드’ ‘Auto’ ‘라스트 러브 송’ ‘디스코 멜랑콜리아’ ‘밝은 방’의 마지막 문장을 한데 이어 적어둔다. 다른 사랑들이 스치고 있으니까. 같은 아름다움들이 스치고 있으니까.
“나는 창문을 닫고 눈을 감았다. 그와 함께했던 봄과 여름이 쏟아져 들어왔다./내 앞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그리하여 여름, 비 오는 날의 아침을 보고 있다. 아니 쓰고 있다. 그러니까 보고 있다./순정한 다음의 풍경이 보고 싶었다. 어떤 모습이든, 어떻게든. 나는 그것이 보고 싶었다./그리고 그런 내가 정말이지 오랜만에 싫지 않았다./그리하여 저 문을 열어, 열고 나가면, 또 다른 빛 아래에서, 우리는 다시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약간은 끔찍해하면서.”
박준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