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나라가 전쟁 중입니까, 어떻게 해마다 100명 여성이 목숨을 잃어야 합니까?”
22일 서울 강서구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남편 김모(49)씨에게 목숨을 잃은 이모(47)씨 사건으로 여성계가 가정폭력 대응시스템의 전면 쇄신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씨가 생전 김씨에게 반복적인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 등 국가기관의 안일한 대응이 사건을 촉발시켰다는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690개 여성단체는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국가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국회는 ‘피해자 인권’을 중심으로 가정폭력처벌법을 전면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가정폭력범 수사와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는다.
가정폭력 신고율은 2016년 기준 1.7%로 실제 벌어지는 사건에 비해 경찰 등 수사기관에 접수되는 사건은 매우 미약한 수준이다. 문제는 그나마 접수되는 사건 중 경찰이 가해자를 검거하는 비율조차 14%에 불과하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지난해 검찰 단계에서 실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10건 중 1건(9.6%)이 채 안 됐고, 가해자가 구속되는 비율은 0.8%에 머물렀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지난 9년간 여성 824명, 한 해 평균 92명이 (남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던 남성에게 살해를 당했다”고 지적했다.
여성계는 법적 제도 정비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이 ‘가정의 유지’에 있고, 가정폭력범을 ‘처벌’이 아닌 ‘교정’의 대상으로만 보는 게 가정폭력 근절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실제 가정폭력처벌법 제1조는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환경의 조정과 성행(性行)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날 참석한 여성단체들은 “’가정 보호’에서 ‘피해자 인권’ 중심으로 가정폭력처벌법을 전면 개정하고 피해자에게 처벌 의사를 묻지 않고도 가해자를 체포하는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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