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30주년 기념작 ‘인형의집’
노라·린데 역할 맡은 정운선·우정원
“지금도 와 닿는 부분이 있다는 게 사회의 인식이 조금 나아진 것뿐이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는 의미 같아요. 노라처럼 결단을 내리고 집을 나갈 수 있는 여성은 지금도 별로 없어요.”(배우 우정원)
“노라의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노라가 집을 나가는 모습도 여성 해방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스스로 판단해 나가는 지점이 잘 드러나게 표현하고 싶고요.”(배우 정운선)
140년이 다 돼 가는 작품이 오늘날 읽어도 생생하게 와 닿는다고 배우들은 말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작으로 11월 6일부터 공연되는 ‘인형의 집’ 무대에 오를 이들이다. ‘인형의 집’은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1879년 작으로 초연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역할에 만족하며 살던 주인공 노라가 자아를 찾고 독립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인형의 집’에서 노라 역할을 맡은 배우 정운선(35)과 그의 친구이자 또 다른 여성 등장인물인 린데 부인 역을 맡은 우정원(35)을 함께 만났다.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여전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분명 140년 전과는 달라졌다. ‘인형의 집’이 오늘날과 맞닿는 지점을 두 배우는 독립을 선언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에서 찾았다. “당신도 나도 온전히 자유로워져야 해. 당신도 나와 마찬가지로 책임에서 벗어나야 해”라고 말하며 집을 떠나는 노라의 대사가 대표적이다. 남편의 인형이 아닌 한 명의 인간임을 선언하는 노라의 대사는 남편 헬메르에게도 의무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찾으라는 뜻을 전한다. “일반적으로 헬메르를 악역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 환경 속에서 헬메르는 남자로서 여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살았잖아요. 요즘 사람들도 정말 좋아서 좋은 건지, 그저 익숙해서 따르는 건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면서 살아 온 지점이 있어요. 모두에게 ‘모든 책임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 만으로 충분히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해요.”(정운선) “린데는 노라와는 반대로 안정된 울타리를 찾아 집으로 들어가게 돼요. 자신을 희생하는 게 최대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린데가 인형의 집에 다시 갇히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린데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선택한 거라고 생각해요.”(우정원)
국내에서 ‘인형의 집’이 공연된 건 손에 꼽힌다. 그 중 2005년 독일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버전이 관객들에게 깊이 남아 있다. 노라가 헬메르를 총으로 쏴 죽이는 결말이 충격을 줬다. 두 배우는 이번 공연은 형식 자체가 충격을 줄 것이라 공언했다. 러시아 공연계 최고 권위의 상인 황금마스크상을 34세에 수상했던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가 연출을 맡았다. 두 배우에 따르면 부투소프의 연출은 “파격적인 해체”다. 음악을 틀어 놓고 ‘움직임’을 연습하는가 하면 극사실주의를 따르기도 한다.
정운선은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연극 ‘목란언니’ 등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우정원은 국립극단 시즌 단원 등으로 활동하며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 굵직한 연극 무대에 서 왔다. 올해 초 연극계에서 불타오른 미투 운동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 본 이들이다. 미투 이후, 연습 시작 전 다같이 모여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는 등 분명한 변화도 있다. 하지만 연극계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식이 변화하려면 갈 길이 멀다. “일련의 사건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까지 굉장한 용기와 희생들이 뒤따르는 걸 보며 인식이 변화하려면 정말 많은 게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인식이 바뀌어갔으면 좋겠어요.”(정운선) “여성 배우들끼리 모여서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성별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다양성과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해요.”(우정원)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