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 대활약 베테랑 박정권
봄, 여름, 정권(가을), 겨울. 프로야구 SK 팬들의 사계절이다.
SK 팬들은 ‘가을’ 하면 박정권(37ㆍSK)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SK의 마지막 우승이었던 2010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박정권은 선선한 바람이 불면 ‘가을 DNA’가 꿈틀거린다. 올해 전까지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은 49경기 타율 0.319 9홈런 34타점이다. 시리즈 MVP는 세 차례(2009 플레이오프ㆍ2010 한국시리즈ㆍ2011 플레이오프) 차지했다.
올 가을에도 박정권은 어김 없이 맹위를 떨쳤다. 이번 시즌 주로 2군에 머물던 그는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승선해 넥센과 플레이오프 1차전에 교체 출전해 9회말 극적인 끝내기 2점 홈런을 터뜨렸다. 2차전엔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려 볼넷 2개를 골라 멀티 출루를 했다. 올해 초라했던 정규시즌 1군 성적(14경기 타율 0.172 2홈런 6타점)은 눈부신 가을 무대 덕에 잊혀졌다.
박정권의 ‘2018 가을’이 빛나기까지 남 모를 마음고생이 많았다. 그는 올해 내내 기약 없는 기다림과 싸웠다.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해 한 달간 3할 타율을 유지하며 버텼지만 1군의 부름은 없었다. 기다렸던 1군엔 6월 13일 올라왔으나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12일 만에 말소됐다. 박정권은 다시 2군에서 3개월 넘게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지쳐갔다. 그 사이 함께 ‘SK 왕조’를 구축했던 동갑내기 동료 조동화(37)는 은퇴했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시즌을 완주해내자는 정신 무장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정규시즌 막판인 지난 2일 1군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2004년 1군 데뷔 이후 가장 적은 경기를 소화하게 된 그는 겉으론 아쉬움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오랜 만에 1군에서 본다”는 인사에 “이제라도 올라온 게 어딥니까”라고 답했다.
지나간 일보다 앞으로 있을 일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박정권은 10월 7경기에서 타율 0.133(15타수 2안타)로 타격 감이 썩 좋지 않았는데도,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마지막 14번째 야수로 합류했다. 트레이 힐만 SK 감독은 30인 엔트리 가운데 마지막 야수 한 명을 두고 박정권과 윤정우 사이에서 고민했다. 오른손 타자에 수비와 주루에서 윤정우는 박정권보다 쓰임새가 많았지만 코칭스태프는 최종적으로 박정권을 택했다. 정경배 SK 타격코치는 “가을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었고, 힐만 감독님도 박정권이 가을에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스윙도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타이밍이 (투구에)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가을 무대를 다시 찬란하게 물들인 박정권은 “2군에서 힘들었을 때 그냥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스스로를 붙잡았다”며 “참다 보니까 엔트리에 들고, 마지막에 찬스도 왔다. 시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자신에게 ‘쓰담 쓰담’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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