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이런 날씨였다. 계절이 넘나드는 시기. 독일의 어느 소도시에서. 겨울 한복판이라면 대적을 하든 숨든 태세라도 갖추었을 텐데. 아무 준비도 없이 맞아버린 쌀쌀맞은 추위에, 여행자였던 나는 얄팍한 스카프 한 장 겨우 목에 말고, 이게 웬 봉변이냐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목은 따끔, 머리는 지끈, 몸은 으실, 곧 몸살감기가 오시겠구나, 이러다가 어디 드러누워 일행에게 민폐나 끼치고 말지. 그때 함께 있던 시인이 조용히 약국에 들러 자그마한 병을 사 들고 나왔다.
민트오일이야. 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몇 방울 떨어뜨려. 보자기를 둘러쓰고 그 김을 마시는 거야. 물이 다 식을 때까지. 여기 사람들이 아이들 감기 걸렸을 때 하는 민간요법이야. 약 먹이는 것보다 안전하지. 나도 종종 해. 이따 숙소 들어가서 같이 하자. 그리고 이건 집에 가지고 가. 두통에도 좋고 피로회복에도 좋고, 다 좋아.
그날 우리는 숙소에서 번갈아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민트오일 김을 쐬었다. 무언가 은밀한 의식을 치르는 듯 엄숙하면서도 자꾸 웃음이 나기도 했다. 밖은 여전히 을씨년스럽게 추웠지만, 숙소 안은 향기롭게 훈훈했다. 그녀의 말대로 감기 기운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오호 괜찮은데, 이 민트오일 하나면 자잘한 병치레는 없겠어.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두 번인가 그 오래된 민간요법을 사용했을 뿐, 구비해놓은 종합감기약을 입에 털어 넣는 쉽고 빠른 방법을 택했고, 그녀가 챙겨준 민트오일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약장 한 편에 처박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박하를 약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박하사탕은 맵기만 했고, 박하차에서 치약맛이 난다고 여겼던 시절을 지나, 디저트 아이스크림 위에 얹어 나온 애플민트 잎을 장식용으로 여겨야 할지 식용으로 씹어야 할지 망설이던 시간이 있었고, 라임 맛인지 민트 맛인지 어쨌거나 모히토 최고라 외치며 럼 칵테일을 들이키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집먼지진드기나 모기 같은 해충이 꺼려 하는 식물이라는 정보에 따라 웃자란 박하 줄기를 베어 말린 다음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있다.
그녀가 알려준 민간요법은 사실 혼자 사는 사람이 법석을 피우며 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약이라기보다는 아픈 배를 쓰다듬는 할머니 약손 같은 것. 뜨거운 대야 앞에 아이를 앉히고, 보자기를 둘러씌운 다음, 아이를 등 뒤에서 감싸 안은 채,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숨 들이마시고 내쉬고, 아이고 착하다, 열 번만 더 해볼까, 관심과 인내와 정성으로 병의 기운을 물리치는 방법. 손길과 보살핌을 통해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 박하오일의 약효. 그 오일병에는 이미 그녀의 관심과 손길이 들어 있었다는 걸 미처 몰랐었다.
올해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을 떠나 보냈다. 준비도 없이 갑자기. 허망과 슬픔과 울분 속에서도 내 삶은 계속되었다. 추위에 옷깃을 여미다 박하향이 피어올랐다. 향기와 더불어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떠나간 사람, 가고 없는 사람, 잃어버린 사람, 잠시 머물렀다 간 사람, 멀리 있다 더 멀리 간 사람. 보자기를 둘러쓰고 울고 싶은 밤. 박하 김인지 눈물인지. 아무래도 그 누군가가 다녀갈 모양이다. 그녀의 소설 속 ‘박하’ 시가 알려준 것처럼.
네가 쓰러졌는데도 난 몰랐고/ 내가 우는데도 넌 몰랐지/ 꼭 우린 모르는 사람들 같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건/ 단 하나, 빛나는 우리 인생의 별/ 살아가는 거야, 서로 사랑하는 우리,/ 상처에서 짓이겨진 박하향기가 날 때까지/ 박하향기가 네 상처와 슬픔을 지그시 누르고/ 너의 가슴에 스칠 때/ 얼마나 환하겠어, 우리의 아침은/ 어디에선가 박하향기가 나면/ 내가 다녀갔거니 해줘. -허수경 ‘박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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