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내 주식을 산 개인 투자자들의 곡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가 급락으로 담보 가치가 하락하면서 증권사의 반대매매가 들어가고 이러한 반대매매가 다시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증시에선 하루 동안 무려 1,000억원이 넘는 반대매매 매물이 쏟아졌다. 한국거래소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반대매매 규모는 유가증권시장에서 451억원, 코스닥 시장에서 558억원 등 총 1,010억원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코스피 1,000선이 무너졌던 2008년 10월 27일(851억원) 보다도 159억원 많은 사상 최대치다.
반대매매는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뒤 해당 주식 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면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강제로 주식을 매도하는 것을 일컫는다. 증거금이 최소 담보유지비율(140%) 이하로 떨어질 경우 증권사는 대출을 받은 투자자에게 주식을 팔거나 추가로 자금을 투입하라고 공지한 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다음날 장 개시 전 시초가로 주식을 판다. 예를 들어 개인투자자가 현금 100만원과 주식담보대출 100만원으로 10만원짜리 주식 20주를 샀다면 총 주식가치는 200만원이 된다. 이 때 담보유지비율이 140%라면 주식계좌 잔고 총액이 대출받은 자금(100만원)의 140%인 140만원, 즉 주가가 주당 7만원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7만원 미만으로 떨어지면 반대매매가 시작된다.
실제로 이러한 반대매매의 여파로 이날 코스피는 연중 최저치인 1,985.95에서 출발했다. 코스닥도 장 시장 직후인 이날 오전 9시10분 617.00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날 코스피가 0.93%, 코스닥이 2.29% 상승하는 등 오후 들어 시장이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상은 개인과 외국인의 ‘투매’를 긴급 투입된 기관투자자들이 받아낸 성격이 강했다. 개인투자자는 반대매매 포함 코스피에서 3,582억원, 코스닥에서는 2,687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전날(7,944억원 순매도)까지 합하면 이틀간 순매도한 주식만 1조4,213억원 어치다. 특히 외국인은 코스피에서만 1,833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9거래일 연속 누적 2조1,128억원어치의 순매도 행보다.
주가 급락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나오지 않으면서 투자자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코스피ㆍ코스닥 지수는 이달들어 각각 14%, 21% 이상 하락했다. 2008년 이후 코스피가 한달 간 10% 넘게 추락한 것은 세 번뿐이었다. 두 차례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됐던 2008년(1월, 10월)에 일어났다. 나머지 한 번은 코스피가 11.8% 하락한 2011년 8월이다. 당시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미국 국가신용등급이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그러나 이번엔 뚜렷한 원인이 짚이지 않는다. 미중 무역분쟁격화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 우려, 미국 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 기조 등이 배경으로 거론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는 전문가가 많다. 무역분쟁을 약세장 요인으로 지목하면 분쟁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보다 국내 증시가 더 가파르게 떨어진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중호 이베스트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투자자들이 단순한 수급 문제인지, 자신은 모르는 시스템 리스크가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워 두려움을 느끼는 장세”라며 “구조적 위기로 넘어가는 과정인지에 대한 확인이 먼저 돼야 대응도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