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써낸 연구자 최태섭
“공공부문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
최근 6년 수혜자 74%가 남성”
요즘 한국 남성들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기’다. 사회문화 연구자 최태섭(35)씨에 따르면 그렇다. 이 억울한 남성들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를 남성인 최씨가 캔 책, ‘한국, 남자’다. 책은 모질고 신랄하다. 연구자료, 통계 수치로 잔뜩 무장했다. 저자가 여성이었다면 남성들이 모여 불태웠을지도 모르겠다.
20대 남성은 현대판 ‘귀남이’들이다. 그들이 태어난 1990년대는 말로만 새 시대였다. 아들을 낳기 위한 성 감별 임신중절이 역사상 제일 많았다. 1990년의 출생 성비는 116.5, 1995년엔 113.2였다. 그들이 만난 세상은, 부모들의 바람과 딴판이었다. 2000년대 들어 ‘남성의 몰락’이 세계적 흐름이 됐다. 학습능력으로 치면 여성이 단연 앞섰다.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몸 쓰는 노동자, 군림하는 관리자는 쓸모가 떨어졌다. 여성들은 제 삶을 살겠다고 선언했다. “남성들이 자기 처지만 비관하는 사이, 잔해를 똑똑한 여성들이 줍는다. 남성들이 남성들 간의 경쟁에서뿐만 아니라 여성들과의 경쟁에서도 패배하기 시작했다.”
혼기가 차면 누구나 가장이 되던 시대가 끝난 거다. 달콤한 가부장 권력은 아버지만 누리고 사라진 듯 보였다. 그래서 남성들은 화가 났다. 남성들이 분노에 휩싸여 ‘내가 왜 불쌍해졌는지’를 냉철하게 따져 보지 않는 것, 최씨가 지적한 요즘 남성들의 문제다. 논점 일탈은 그들의 특기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대다수가 남성인 권력자들과 사회경제 양극화의 수혜자인, 역시 대다수가 남성인 부자들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대신 약자, 특히 여성들에게 분풀이한다.
“여자들 때문에!”는 향정신성의약품 같은 구호다. “군대도 가지 않는 여자들, 의무는 지지 않고 권리만 누리려는 여자들, 사무실 정수기 물통도 못 가는 여자들, 된장녀, 김치녀, XX녀…” 최씨는 1999년 군 가산점 위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들은 놔두고 위헌 소송을 낸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린치를 가한 걸 대표 사례로 꼽았다.
정말로 여자들 때문일까. 남성들은 정말로 역차별을 당하고 있을까. 최씨는 각종 사회경제 지표를 들어 논박한다. 2003년 공공부문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가 도입됐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30% 이상씩을 고용해 성별 독점을 막는다는 취지다. 그런데, 2010년부터 6년간 채용 절차에서 이 제도 덕에 추가 합격한 수혜자의 74.4%가 남성이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기는커녕, 경쟁에서 도태된 일부 남성을 구제하는 용도가 됐다.”
최씨는 가부장제가 상징하는 남성 지배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남성들의 어리석음을 꼬집는다. “남성 지배는 소수의 권력자 남성들을 위해 다수의 별 볼일 없는 남성들이 열과 성을 다해 복무하는 불공정 게임이다. 남성 지배로 얻어 낸 산물은 일부가 독식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자신들의 발 밑에 자신보다 더 못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며 얻는 위안과 약간의 반사이익을 위해 가부장제의 수호자 노릇을 하고 있다.”
남성들의 분노는 타오르지만, 그뿐이다. 지난 주말 서울 혜화동에서 열린 ‘곰탕집 성추행 사건 가해자 실형 선고 항의 집회’ 참석자는 100명쯤이었다. 최씨에 따르면, 이는 “의리 없음”이다. “침묵하는 다수는 결핍된 남자들이 벌이는 쇼를 즐기고 그것이 만들어낸 이득은 공유하되 책임은 나누지 않는다. 성전(性戰)에 의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의리 없음이야말로 젠더 권력이 어디로 쏠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남자들은 굳이 나서서 연대할 필요가 없다. 가장 효과적인 대응 전략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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