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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슈] 여대는 왜 다시 금남구역이 되고 있나

입력
2018.11.02 06:00
수정
2018.11.0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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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덕여대 ‘외부인 출입금지’ 실시 계기로 돌아본 한국의 여자대학 

※ [모슈]는 ‘모아보는 이슈’의 준말로, 한국일보가 화제가 된 뉴스의 발자취를 짚어보는 기사입니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전경. 이화여대는 국내 여대 중 학부, 대학원 과정을 통틀어 유일하게 남자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 학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전경. 이화여대는 국내 여대 중 학부, 대학원 과정을 통틀어 유일하게 남자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 학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달 29일 동덕여대의 문이 닫혔습니다. 명목은 외부인 출입금지이지만 사실상 ‘금남 선언’입니다. 동덕여대는 같은 달 13일 처음 알려진 일명 ‘알몸남 사건’의 피해 학교입니다. 27세 박모씨는 지난달 6일 자격증 관련 교육 참석 차 동덕여대를 방문해 강의동과 화장실 등지에서 나체 상태로 음란행위를 한 뒤 사진과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했습니다. 박씨는 검거됐지만 동덕여대는 외부인 출입규정을 신설했습니다. 1일부터 학교의 모든 건물에는 카드 출입기가 설치돼 학생증을 태그해야만 출입이 가능해졌습니다.

열 것이냐, 닫을 것이냐. 이는 동덕여대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이화여대는 지난달 샤워실, 탈의실, 학생회실에 카드 리더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9월 한 직장인 남성이 이화여대 사회과학대 건물 안으로 들어와 복도 의자에서 자고 있던 여학생의 신체를 만진 사건 때문입니다. 이 여학생은 도주하는 남성을 추격해 현장에서 붙잡았고 남성은 입건됐습니다.

요즘 캠퍼스는 대학의 것만이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담장 허물기 사업’ 시행 이래 대학들은 점점 더 지역을 향해 문을 활짝 여는 추세입니다. 그럼에도 여대가 점점 더 문을 굳게 걸어 잠그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앞에서 열린 '안전한 동덕여대를 위한 민주동덕인 필리버스터'에서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참가자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앞에서 열린 '안전한 동덕여대를 위한 민주동덕인 필리버스터'에서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참가자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여학생들아 나와서 놀자” 소동에 헌병 출동, 금남 구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여대는 여성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학교를 말합니다. 여성에게 배움의 기회가 적었던 시절,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여대의 탄생 배경입니다. 현재 국내에는 14곳의 여대가 있습니다. 설립 당시 대부분의 여대는 남성 금지 구역이었습니다.

금남의 ‘성역’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과거에도 여대를 둘러싼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1967년 11월 한 여대 기숙사에 S대 법대 4년생 정모군을 포함한 22명의 남학생이 떼지어 몰려가 “여학생들아, 나와서 놀자”라며 1시간 가량 떠들어댄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숙사 사감과 교수들이 말리다 못해 헌병까지 출동한 끝에 남학생들은 연행됐습니다.

여대가 공식적으로 문을 연 건 대학원을 개방하면서입니다. 학생 충원이 되지 않아 재정난에 시달리던 여대들이 일부 대학원에 한해 남학생을 받으면서 여대 캠퍼스에 남자가 활보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됐습니다. 1979년 대구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가 대학원 박사과정에 남자 입학을 허용한 것을 시작으로 90년대 들어 성심여대(현 가톨릭대), 상명여대(현 상명대) 등이 남학생에게 대학원 문을 개방했습니다. 지금은 서울여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동덕여대, 덕성여대 등 서울 주요 여대들 모두 대학원 과정에 남자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학부, 대학원을 통틀어 남자 입학을 한번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이화여대뿐입니다.

서울 모 여대 교정에서 4학년 학생들이 졸업앨범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모 여대 교정에서 4학년 학생들이 졸업앨범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쌀 씻어라, 단화 신어라” 여대 수난사 

대학이 배움의 터에서 주민들에게 열린 공공시설로 변모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흐름입니다. 이 같은 흐름을 거슬러 금남을 선언한 배경에는 여대들이 수십 년 간 겪어온 수난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난사의 한가운데에는 이화여대가 있습니다.

1971년 9월 29일 고려대 학생 40여명이 이대 정문으로 몰려와 책자를 배부했습니다. 책자에는 ‘하이힐을 벗고 단화를 신어라’ ‘귀부인과 같은 손가락으로 쌀을 씻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른바 ‘사치배격대회’입니다. 이대 축제인 대동제에서 고대생들이 집단 난동을 부린 것도 장장 10년에 걸쳐 계속됐습니다. 1985년부터 1996년까지 고대생들은 매년 5월 대동제에 난입해 집기를 부수며 행사를 방해했고 이 과정에서 이대생이 팔이 부러지는 등의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세기가 바뀌었으나 학내는 여전히 안전구역이 아닙니다. 이대는 올해에만 학내 경비원의 음란 행위, 여장 남자의 무용과 탈의실 주변 배회 사건 등이 일어났습니다. 숙명여대에서는 지난해 4월 동국대 남학생이 숙대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서울여대 커뮤니티에서는 지난해 수업 도중 검정 마스크를 착용한 남성이 몰래 강의실에 들어와 네 발로 기어 다녔다는 일명 ‘가마 할아범’에 대한 목격담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앞에서 열린 '안전한 동덕여대를 위한 민주동덕인 필리버스터'에서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앞에서 열린 '안전한 동덕여대를 위한 민주동덕인 필리버스터'에서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금남 선언이 답? 안전한 환경 조성이 먼저 

지속적으로 범죄의 타깃이 되는 여대, 과연 금남 구역 지정이 답일까요? 동덕여대 알몸남 사건을 비롯해 비슷한 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대 학생들 사이에서는 “외부인 출입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동덕여대는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5일간 시위를 벌여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학교 측의 조치를 얻어 냈습니다.

그러나 금남 선언이라는 강수만이 답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여대가 폐쇄적인 위치를 강화할수록 오히려 더 성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덕여대 사건의 피의자는 “여대라는 특성 때문에 성적 욕구가 생겼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현실과 다소 동떨어졌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동덕여대는 교내 택배와 음식 배달도 원칙적으로 금지돼 벌써부터 학교 주변 상인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캠퍼스를 산책로로 활용하던 주민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지역 주민과의 상생을 추구해야 할 대학에서 문을 굳게 잠근 것은 시대와 역행하는 태도라는 지적입니다. 여성정책 전문가들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자유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지, 문을 걸어 닫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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