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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 가방 든 의사, 수가만 높이면 늘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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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 가방 든 의사, 수가만 높이면 늘어날까

입력
2018.11.03 04:4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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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한 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주미현(30ㆍ가명)씨는 병원 방침에 따라 지난해부터 방문 진료(왕진)를 시작했지만, 막상 올해 들어 왕진을 나간 횟수를 세자면 열 번도 채 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왕진 1회 시 지급하는 교통비 등은 약 10만원으로 꽤 높은 편. 하지만 전문의 둘이서 입원ㆍ외래 환자만 돌봐도 일과가 꽉 차기 때문에 자주 병원을 비우기는 쉽지 않다. 주씨는 “별도 왕진 수가가 마련되면 왕진 의사가 크게 늘어 취약계층을 충분히 돌볼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박구원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박구원기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의사의 왕진 수가를 별도로 책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왕진을 둘러싼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는 왕진 수가가 따로 없어서 의사가 가정에 방문해 진료를 하더라도 의료기관 내에서 환자를 진료했을 때와 똑같은 진찰료를 받는다. 초진을 기준으로 상급종합병원 진찰료는 1만8,800원, 의원급은 1만5,310원 정도다. 대한의사협회는 왕진 수가가 마련되면 병ㆍ의원 밖을 나서는 의사들이 많아져, 최근 정부가 무게를 싣고 있는 의사ㆍ환자 간 원격진료의 필요성이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의료 현장에선 회의적 목소리가 나온다. 1인 개원의 비중이 높은 한국 의료계 구조 상 별도 수가만으론 의사들을 움직이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병수 일차보건의료학회 회장은 “선진국에서 왕진이 활발한 이유는 전문의 5, 6명 정도가 모여 공동으로 의원을 차리고 내ㆍ외부 진료를 번갈아 맡아 공백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라며 “한국 의원은 90%가 단독 개원 형태라 이러한 순환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환자가 몰리는 종합병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급종합병원으로선 거의 유일하게 왕진을 실시하는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의 신현화 전임의는 “보통 왕진을 나가면 환자 1명 당 3시간이 소요되는데, 전문의가 여럿이더라도 손이 부족해 왕진 횟수를 늘리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다수 전문의와 의사협회 등은 이러한 기회비용을 감수할 만큼 왕진 수가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책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상 의원에선 의사 1명이 오전 진료 4시간 동안에만 환자를 최대 40명까지도 볼 수 있고 이 때 진찰료는 60만원이 넘는데, 왕진 환자는 오전 시간에 적게는 1명, 아무리 많아도 3, 4명 정도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왕진 1회 당 수가가 15만~20만원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왕진과 유사한 가정간호(간호사가 가정에 방문해 환자를 돌봄)의 경우 1회 방문 시 기본방문료가 병원 종 별로 4만5,880~4만6,790원, 교통비는 7,960~8,820원 정도다. 경기의 한 내과 전문의는 “수가가 웬만큼 높지 않으면 내원 환자를 포기하긴 쉽지 않은데, 정부는 의료계가 원하는 수준을 맞춰주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고병수 회장은 “정부와 의료계 모두가 왕진 활성화에 대해 수가 문제로만 접근하면 현상은 나아지기 힘들 것”이라며 “한국 의료 현장의 구조적 한계와 부수적 제도 마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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