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고재필 하나은행 골드PB 부장 인터뷰
최근 국내 주식시장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주식계좌 쳐다보기가 두렵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미국 금리 인상과 미중 무역분쟁, 국내 내수경기 부진 등 주식시장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여의치 않다 보니 지금이라도 손절(손해를 감수한 주식 매도)에 나서야 하는 건 아닌지, 그래도 주식이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일반 개인 투자자로선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 재테크에 내공이 깊은 자산가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고재필 하나은행 클럽1 PB(프라이빗뱅커ㆍ금융 포트폴리오 전문가)센터지점 골드PB 부장은 지난 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증시가 많이 빠지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지만 사실 자산가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자산가들은 지금 상황을 추가 매수를 위한 기회로 보고 시장 진입 타이밍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이 선진국에 견줘 여전히 저평가돼 있기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고 부장은 KEB하나은행에서 투자전략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하나은행 본점 신탁부에서 주식과 채권 운용 업무를 10년 넘게 맡았다. 투자전략 분야에서 성과를 인정 받은 뒤 2013년 서울 강남PB센터로 발령 받아 투자 컨설팅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엔 서울 삼성동 클럽1PB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이곳은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를 주 고객층으로 하는 최우수고객(VVIP) 전용 PB센터로 하나은행 PB센터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 들어 국내 증시가 계속 안 좋은데, 자산가들은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국내 주식 시장이 많이 떨어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자산가들의 시각은 일반 투자자와는 다르다. 일반 투자자 사이에선 당장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감이 크지만 자산가들은 의외로 별다른 동요가 없다. 자산가들 중엔 1997년 외환위기 당시부터 2008년 금융위기까지 모두 겪은 이들이 많다. 이들은 경험상 지금의 상황이 안 좋긴 해도 과거의 위기 수준으로 볼 정도는 아니라고 여긴다. 당장 주식이 많이 떨어졌다고 해서 손절에 나서겠다는 이들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 주식 비중을 더 높여야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된다.”
-지금 상황에서 주식 비중을 늘리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주가가 많이 빠졌다고 해서 무턱대고 추가 매수하는 것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맞지 않다. 자산가들은 금융상품에 투자할 때 무조건 수익만 추구하지 않는다. 자산을 잃지 않으면서 연 6% 수익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서는 자산을 분산시킬 수 밖에 없다. 국내 주식에만 모든 금융자산을 넣는 일도 없다. 자산이 분산돼 있다 보니 국내 주식이 과도하게 내려도 타격이 크지 않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위기로 보지 않다 보니 이들로선 국내 주식을 더 사들이는 옵션도 고려할 수 있다. 사실 우리 경기를 둘러싼 여러 변수를 고려해도 최근의 주가 하락은 너무 지나치다. 기업이 당장 망할 정도로 재무상태가 갑자기 나빠진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코스피 기업들의 주가순자산비율인 PBR는 0.86으로 미국 다우지수(3.9)보다 훨씬 낮다. 국내 기업이 재무상태에 견줘 상당히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최근 고객인 한 자산가는 지수 움직임에 따라 수익이 나는 코스피 추종 인덱스펀드에 50억원을 투자했다. 지수가 충분히 빠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자산가들은 어떤 종목을 선호하나.
“대기업 대표 주식, 업종 간판 주식이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정보기술(IT) 업종 대표 종목인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종목이다. 자산가들은 우리나라가 대기업 위주로 성장해온 것을 봤기 때문에 업종 대표 기업은 경기를 타도 망하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꾸준히 보유하면 수익이 난다고 여긴다. 삼성전자 주식을 10년 이상 갖고 있는 분들도 많다. 무조건 장기 투자가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어떤 종목을 고르면 1,2년은 투자한다. 외환위기 땐 우리기업이 이익을 내다 적자로 돌아서며 주가가 폭락했다. 2011년엔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주가가 폭락했지만 대기업들이 적자를 내진 않았다. 지금도 경기는 안 좋지만 상장기업의 이익은 오히려 늘었다. 당장 이익이 반토막 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오히려 업종 대표주를 싸게 살 기회인 셈이다. 다만 많은 자산가가 일단 관망하고 있다. 완전한 바닥에서 잡진 못해도 변동성이 줄어들길 기다려 투자 리스크를 낮추려는 전략이다.”
-자산가들은 자산 배분을 어떻게 하나.
“이들은 자산을 철저히 나눠서 투자한다. 한 바구니에 모든 자산을 담는 일은 결코 없다. 주식도 국내와 해외 주식을 나눈다. 요즘은 위험 분산 차원에서 달러 비중을 높이는 추세다. 주식 비중이 가장 큰 것도 아니다. 투자위험은 낮추면서 연 5~6% 수익을 낼 수 있는 금융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주가연계증권(ELS)이나 주가연계신탁(ELT)이 대표적이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수익률이 높아지고 있는 해외채권도 요즘 인기가 높다.”
-직장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자산가가 처음부터 자산가였던 것은 아니다. 시장을 보는 안목을 꾸준히 기른 끝에 나름의 투자 노하우를 터득해 자산가가 된 경우도 많다. 일반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우선 초년생이라면 투자수익을 내는 것보다 목돈 만들기가 1순위 목표가 돼야 한다. 예ㆍ적금을 기본으로 하되 일부는 적립식 펀드에 배분하는 게 낫다. 펀드라도 적립식으로 넣으면 코스트 에버리지 효과(평균 매입단가 낮추기)로 투자 위험은 낮추면서 예적금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목돈을 모은 뒤엔 적극적으로 인덱스펀드, ELS, 부동산펀드와 같은 금융상품을 이용해야 한다. 이들 상품에 익숙해지면 가입시기와 가입금액을 쪼개는 식으로 수익률을 더 높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자연스레 자산을 배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일반인도 PB센터를 이용할 수 있나.
“사실 100만원 정도 투자하려는 이가 PB센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주눅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요즘 모든 은행들이 일반 고객들을 상대로 한 자산관리 업무를 대폭 키우고 있다. 일반 영업점에도 자산관리 인력들이 많다. 10만원을 투자해도 이들을 찾아가 상담을 요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전혀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 PB센터가 아니어도 일반 창구 상담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금융상품에 가입하지 않아도 상담원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금융상품에 대한 공부가 될 때가 많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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