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울림’
김상욱 지음
동아시아 발행ㆍ272쪽ㆍ1만5,000원
모든 면을 동일한 색으로 맞추는 것이 목표인 정육면체 모양의 루빅스 큐브가 가질 수 있는 형태는 4,000경(1조의 1만배) 가지 정도라고 한다. 흐트러진 큐브를 아무렇게나 돌려 우연히 색이 맞아 떨어지게 될 확률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떨림과 울림’은 시간은 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가에 대한 설명을 이 큐브에 빗대서 해주는 친절한 책이다. 큐브가 맞춰져 있는 상태를 ‘과거’로, 흐트러진 상태를 ‘미래’로 본다면, 압도적인 경우의 수 차이로 인해 시간은 미래로만 향하게 된다. 이처럼 ‘자연이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 법한 상태로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물리학자들은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부른다. 좀 더 멋진 말로 “엔트로피는 증가만 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복잡한 공식의 암기를 시작하는 순간 과학과 이별하는 일은 너무나 쉬웠다. 오래 전 과학과 작별을 고한 탓에, 이름만으로는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던 수많은 법칙들을 이토록 친절하게 설명해준 이는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다. 최근 tvN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3’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물리학자다. 책장을 넘기며 독자들도 이런 탄식을 내뱉을지 모른다. “김상욱에게 배웠다면 물(리)포(기)자가 되지 않았을 텐데.”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단위인 원자를 설명하는 이론인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도 최대한 친절하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3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와 에르빈 슈뢰딩거(193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는 원자 속 전자가 운동하는 원리를 설명함으로써 양자역학을 탄생시켰다.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를 추상적인 수학적 구조로 본 행렬역학을, 슈뢰딩거는 원자의 본질을 물결과 같은 파동이라고 본 파동역학을 세상에 내놓았다. 물론 친절한 설명이 양자역학에 대한 비전공자의 완벽한 이해를 담보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도의 말을 빌려 독자를 좌절에서 구해낸다.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떨림과 울림’은 원자, 전자, 시공간, 빛, 카오스 등 물리의 핵심원리는 물론 과학자들이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들어낸 발견들을 다룬다. 닐스 보어, 제임스 맥스웰 등 수많은 과학계 위인들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리함에 기여한 점도 알게 된다.
이 책의 미덕은 과학적 지식의 나열에 있지 않다. 물리학자가 이야기하는 우주와 세계가 철학적이고 문학적으로 읽힌다는 데 있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와 같은 소설은 물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까지 인용한다. 물리학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선물 아닐까. 예컨대 이런 구절들이다. 원자들이 운동하면 온도가 올라간다. 하지만 온도를 결정하는 것은 원자 속도분포의 ‘평균값’이 아니라 ‘표준편차’다.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부의 평균을 높이더라도 표준편차를 줄이지 못하면 사회가 뜨거워진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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