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탁환 ‘살아야겠다’ 메르스 다룬 르포 형식 소설
그는 마지막 한 명이었다. 2015년 11월 25일 그가 사망하자 국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는 공식적으로 0명이 됐다. 사람들은 애도하기보단 안심했다. 그는 운이 나빠 죽었을 뿐이니까. 그의 죽음으로 누군가 같은 불운을 당할 가능성이 줄었으니까. 그리고 세상은 그를 잊었다. “억울한 죽음, 아니 살인”이라는 아내 배윤희(39)씨의 절규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김탁환(49) 작가가 그들의 사연을 불러냈다. 메르스 피해자들의 증언, 정부 기록, 간호사 출신인 배씨가 집요하게 모아 둔 의료기록을 토대로 장편소설을 썼다. ‘살아야겠다’(북스피어). 인물 이름 같은 소소한 정보만 바꿨을 뿐, 소설은 논픽션에 가깝다. 생지옥을 기록한 르포. 김 작가와 배씨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배씨 남편 김병훈씨는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을 앓고 있었다. 2015년 5월 검사를 받으러 삼성서울병원에 갔다. 입원실이 나지 않아 응급실에서 사흘을 꼬박 기다렸다. ‘14번’이라 불린 메르스 환자가 거기 있었다. 김씨는 그렇게 ‘80번 환자’가 됐다. 누구라도 ‘80번’이 될 수 있었다. “메르스란 병에 걸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세월호란 배에 타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안일하고 허약한 자기합리화가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중이지. 그렇게 비겁한 다행에 안주하면 결국 언젠가 우리도 외롭게 불행을 만나게 돼.”(소설 속 선우병호 기자의 말)
삼성서울병원은 300원짜리 비닐 가운을 메르스 환자 보호자들에게 지급했다. 병원과 정부가 초기 대응을 그렇게 안이하게 한 게 잘못이었는데도, 죄인은 김씨였다. 서울대병원 격리 병실에서 6개월 만에 숨질 때까지, 그는 인간이 아니라 “바이러스 덩어리”였다. “나는 여전히 가해자의 가족이다. 아들 어린이집 부모들이 싫어할까 봐 얼굴을 공개하지 못하겠다. 우리 가족이 뭘 잘못했을까. 모르겠다.”(배씨) 소설 속 인물들은 완치 판정을 받고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후유증으로 몸은 엉망이 되고, “더럽다”는 낙인이 찍혀 회사에서 해고된다. 자살까지 시도한다. 실화다. “메르스 사태가 누구의 잘못이었는지를 한 번도 정리한 적이 없다. 피해자들이 숨어 살며 자책만 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취재를 거부했다. 세월호 소설을 쓸 땐 유족들이 있는 그대로 전부 다 써 달라고 했는데…”(김 작가)
소설은 메르스 피해자들의 원통한 사연을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배씨의 입을 빌려 김씨의 격리가 부당한 “감금”이었다고 주장한다. 병원이 판정한 김씨의 사인은 메르스가 아닌 악성 림프종. 메르스 치료는 몇 달 전에 중단한 상태였다. 메르스 검사에서 안정적으로 음성이 나오지 않는 게 문제였다. 의사들은 “림프종 때문에 활동력을 잃어 전염력도 없는 바이러스 찌꺼기 조각만 남아 검출되는 것 같다. 감염력이 0%에 가깝다”고 했다. 병원은 그러나 “윗선의 지시”라며 격리를 풀어 주지 않았다. ‘격리 해제 기준이 뭔지’에는 정부도, 병원도 답을 내놓지 못했다. 김씨는 “문 없는 성에 갇힌” 처지였다.
배씨는 “남편이 격리 병실에서 림프종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죽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와 병원들이 “면피의 늪”에 빠져 있었다는 기록을 모아 소송을 냈다. “남편은 림프종과 메르스를 동시에 앓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환자였다. 특수 케이스였는데도 정부는 회의 한 번 열지 않았다. 내가 분신 자살이라도 했어야 했나 싶다. 그 때는 정부와 병원 분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주사라도 아프게 놓을까 봐….”
메르스가 퍼질 0.0001%의 가능성이라도 차단하는 것이 정부의 원칙적 책임일 것이다. 배씨도 “내 주장이 이기주의로 비칠까 걱정된다”고 했다. 김씨를 격리한 것이, 혼자 외롭게 세상을 떠나게 한 것이 정말로 메르스 바이러스였는지를 소설은 묻는다. 막연한 공포는 아니었는지, 공포를 방패 삼은 무책임은 아니었는지를, 또한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누군가의 생명권을 지켜 주지 못한 게 온당한 것이었는지를. 김 작가 말대로, “문학은 가난한 자 약한 자 아픈 자의 편”이어야 하니까. “제대로 된 나라라면 국민 한 사람이라도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도탄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배제하려 든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아니다.”(김 작가)
배씨는 소설이 나오자마자 100권을 샀다. “남편에게 제일 먼저 전했다. 읽어야 할 사람들에게 한 권씩 보낼 거다. 그 때 내 전화번호를 수신 차단한 질병관리본부 간부가 읽었으면, 그가 한 번쯤은 후회했으면 한다. 위로 받으려고 소설을 쓰자고 한 게 아니다. ‘슬프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나한테 그런 일이 닥치지 않아 다행이야’ 하면서 사람들이 책을 덮을까 두렵다. 공감을 원한다. 제발 공감해 주기를 부탁드린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이슬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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