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고 5차례 문제 유출… 전과목 정답 적힌 메모지 발견
12일 경찰이 발표한 ‘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의혹’ 사건 수사 결과는 내로라하는 명문사학의 내신 및 학사관리가 얼마나 엉망인지 그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2학년인 쌍둥이 자매가 입학 후 정상적으로 본 시험은 단 한 차례로, 아버지인 교무부장이 문제와 정답을 유출하고 자매가 이를 외워 시험을 보는 ‘부녀의 조직적 커닝’이 무려 5차례 시험과 18과목에 걸쳐 무방비로 이뤄졌다. 학교와 동료교사가 ‘눈 뜬 장님’이었는지, 의심하고도 모르는 채 방조한 것인지 의문이 적지 않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이날 학교 학업성적관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전 교무부장 A(53ㆍ구속)씨와 쌍둥이 자매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자매는 미성년자인 점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문제 유출은 자매가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른 이후인 지난해 6월부터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있었던 올 7월까지, 총 5차례 이뤄졌다. 경찰은 시험지를 복사하거나 사진을 찍는 등 정확한 유출 경로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A씨가 올해 중간ㆍ기말고사에서 시험지가 금고에 보관된 날마다 야근을 한 만큼 그 당시에 문제와 정답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고사 총괄 교사만 아는 금고 비밀번호를 A씨도 알고 있었다.
수사로 드러난 부녀의 부정행위는 노골적이었다.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전 과목의 정답이 빼곡하게 적힌 접착식 메모지(포스트잇)와 미적분 과목 시험지, 동생 휴대폰에서 시험 전 작성된 영어 시험문제 정답이 발견된 것이다. 1학년 1학기만해도 전교 121등(언니ㆍ문과), 59등(동생ㆍ이과)이던 자매 성적은 전 과목을 베낀 2학년 1학기 시험에서 각각 문ㆍ이과 1등으로 수직 상승했다.
1학년 1학기 기말고사와 2학기 중간ㆍ기말고사 시험지에서도 정답을 미리 외워와 적어둔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감독관 눈을 피하려고 깨알 같은 글씨로 정답을 나열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매는 채점하기 위한 메모였다고 했지만 채점용이라면 그렇게 작게 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계산이 필요한 물리 문제에 정답만 있거나, 화학 문제를 제대로 풀어놓고도 미리 외워둔 엉뚱한 답을 적기도 했다. 화학 시험 출제 교사는 “당시 오타로 잘못된 정답지를 만들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A씨가 오답이 있었던 정답지를 유출했고, 자매가 이를 그대로 베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학교 측은 눈치채지 못했다고 변명하지만 대학 입시와 직결되는 시험인데도 관리 자체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시험 출제와 관계 없는 교무부장 A씨가 금고 비밀번호를 아는가 하면, 시험지가 금고에 보관될 당일에도 아무 제재 없이 야근을 섰다. 금고 주변에는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야근을 섰던 날은 모두 동료 교사들이 퇴근을 서두르는 금요일로 올 6월 22일에는 혼자 근무했고, 4월 20일에는 다른 교사가 있었지만 A씨 혼자 있는 시간이 1시간 이상 됐다”고 말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시험지 관리 부실, 내신비리는 숙명여고만의 일은 아닐 것”이라며 “이번 사건과 같은 시험부정, 비리를 적극 신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외부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신뢰도 제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교사인 부모와 자녀가 별 제재 없이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문제의 발단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은 자매와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데도 A씨를 교무부장 직위에서 배제하지 않는 등의 혐의로 입건(유출 방조)된 전직 교장 등 교사 3명은 충분한 증거가 없었다며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교육부는 문제유출 의혹이 불거진 8월, 고등학교 교원과 자녀를 같은 학교에 배치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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