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 세력이 ‘반일 그룹’으로 몰아붙였지만 방탄소년단(BTS)의 인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13일 오후 일본 도쿄도(東京都) 분쿄(文京)구에 위치한 도쿄돔. 공연 시간을 두 시간 여 앞둔 시간이었지만 ‘원폭 티셔츠’ 논란으로 일본 TV의 음악방송 출연이 취소된 BTS의 공연장엔 수 만명의 일본 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공연장 주변에 설치된 방탄소년단 기념상품(굿즈)를 판매하는 부스 주변엔 이른 아침부터 긴 행렬이 이어졌고, 오후엔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까지 기념상품 구입 대열에 합류하면서 일부 상품은 매진을 기록했다.
일부 팬들은 한글로 멤버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달고 있었고, 한글로 ‘지민’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이들도 눈에 띄었다.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버섯구름 사진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어 극우세력의 ‘타깃’이 된 지민에 대한 응원으로 보였다. 공연을 보기 위해 오사카(大阪)에서 왔다는 20대 여성은 “1년 전 나온 사진을 가지고 뒤늦게 방송국이 출연을 취소하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입한 BTS 공식 라이트스틱(야광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던 10대 팬들도 “한일 언론들이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해 갈등만 부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우리는 단지 BTS의 음악을 좋아하고 응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일부 팬들은 최근 양국에서 불거진 BTS 논란에 대해 묻자 답변을 사양하는 등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최근 일본 우익과 일부 언론의 ‘BTS 때리기’가 잇따르면서 공연장 주변에서 혐한 시위가 열릴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 공연장에서 수백m 떨어진 스이도바시(水道橋)역 주변에선 일본 우익이 1인 릴레이 시위를 하며 ‘혐한’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행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오히려 짜증스럽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오히려 혐한 시위에 맞서 ‘한일 우호’란 한글과 같은 뜻의 일본어가 적힌 피켓을 든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BTS가 공연한 도쿄돔은 4만5,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연장이다. 일본 가수들이 ‘꿈의 무대’라 부르는 장소에서 객석을 꽉 채워 성황리에 공연을 끝냈다. ‘원폭 티셔츠’를 입어 구설에 오른 방탄소년단 멤버인 지민은 마지막 무대를 마친 뒤 일본 관객들에게 “정말 마음이 아프다”며 미안함을 전했다.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도 이날 “원폭 이미지로 불편함을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14일까지 이어질 도쿄돔 공연 티켓은 모두 동이 났다. BTS는 도쿄돔을 시작으로 21, 23, 24일 오사카 교세라돔, 내년 1월 12, 13일 나고야(名古屋)돔, 2월 16, 17일 후쿠오카(福岡) 야후오쿠돔에서 공연을 갖고 총 38만명의 관객을 동원할 예정이다.
이번 논란으로 일본 내 BTS의 입지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음반시장에선 여전히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일본의 음반 판매량 집계사이트 오리콘차트에서 BTS는 지난 7일 일본에서 발매한 싱글 ‘페이크 러브/에어플레인 파트2’로 주간(5~11일)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다.
BTS는 또 해외 가수 최초로 발매 첫 주 40만 포인트를 넘겼다. BTS의 이번 싱글 앨범 판매가 그만큼 폭발적으로 이뤄졌다는 뜻이다. 오리콘차트는 앨범 판매량을 점수로 환산해 순위를 내는데 BTS의 점수는 45만4,829점이었다. 일본에서 한류를 이끌고 있는 BTS가 일부 혐한 분위기 속에서도 K팝의 기반을 굳건히 다지면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한국 대법원의 일본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 내 반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지만 BTS와 트와이스 등 K팝 그룹들의 인기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와이스는 지난 5일 발매한 앨범 ‘예스 오어 예스’로 이날 오리콘 주간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 더욱이 트와이스는 일본어 앨범이 아닌 한국어 앨범으로 1위를 차지했다. 트와이스가 한국어 앨범으로 오리콘 주간 차트 정상을 밟기는 처음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12년 독도 방문 이후 일본 지상파 등에서 K팝의 인기가 위축됐다. 그러나 최근 반일 논란 속에서 K팝 가수들이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제3차 한류 붐’의 위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특히 K팝의 주요 소비층인 10대 여성들이 정치적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TV보다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음악을 접하고 있다는 점도 이전과는 다른 특징이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BTS와 트와이스가 한국과 일본의 차가워진 정치적 관계에서도 성과는 내고 있다는 건 그만큼 현지에서 K팝 소비층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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