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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사르습지도 개발 갈등…자연과 사람 품은 동백동산

입력
2018.11.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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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효의 이미지 제주]공존의 의미 되새겨 ‘제주다움’ 지켜지길

조천읍 선흘곶자왈의 대표적 습지인 먼물깍.
조천읍 선흘곶자왈의 대표적 습지인 먼물깍.

제주시가 조천읍 선흘곶자왈의 동백동산 습지 덕분에 지난 10월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을 받았다. 이번에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된 곳은 한국에서 제주시를 비롯해 창녕군(우포늪), 인제군(대암산 용늪), 순천시(순천만) 등 4개 도시다. 이번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 결정은 ‘미래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습지’를 슬로건으로 습지의 훼손을 막아 개발로부터 자연과 인간을 보호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람사르습지도시는 람사르습지 인근에 위치하고, 습지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참여하는 도시나 마을을 의미한다. 습지도시 인증은 이런 지역과 세계가 힘을 모아, 지역 주민을 위한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혜택의 증진을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다. 지난 2015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제12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인증제 시행을 결의해 이번에 처음 지정됐다. 인증을 받으면 람사르 브랜드를 6년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 농산물이나 특산품 판촉, 생태관광 활성화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습지식물로 뒤덮인 먼물깎.
습지식물로 뒤덮인 먼물깎.
먼물깍 주변에 서식하는 제주고사리삼.
먼물깍 주변에 서식하는 제주고사리삼.

람사르습지(Ramsar wetlands)는 ‘물새 서식지로서 중요한 습지 보호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협약에 따라 생물지리학적으로 독특한 특징을 가진 곳이나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 또는 물새 서식지로서의 중요성을 가진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지역이다. 제주에서는 동백동산 외에 물영아리, 물장오리, 1100고지 습지, 숨은물뱅디 등이 람사르습지로 지정돼 있다.

그중에서 동백동산은 하천이나 호수가 아닌, 화산섬 제주의 독특한 지형인 곶자왈 숲 속에 형성된 내륙습지로 지하수를 많이 머금고 있고, 생물다양성이 풍부해 더욱 가치가 높다. 곶자왈은 ‘곶’과 ‘자왈’의 합성어로 곶은 숲을,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이르는 말이다. 화산이 폭발할 때 오름으로부터 흘러 나와 굳은 용암이 요철 모양으로 크고 작은 돌무더기를 형성하고 있는 지형이다. 때문에 과거에는 농사를 짓지 못하고 소나 말의 방목지로 이용했고, 땔감이나 숯을 얻기 위해 들어갈 뿐 버려진 땅으로 인식돼 왔다.

선흘곶자왈의 대표적인 습지는 먼물깍이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을 담고 있는 먼물깍은 과거 마을 주민들이 식수원으로 이용했던 연못이다. 2011년 3월 14일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2010년 세계지질공원 인증, 2011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데 이어, 2012년부터는 선흘1리 생태마을로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습지의 면적은 0.59㎢다. 습지 주변에는 전 세계에서도 이곳에서만 발견되는 제주고사리삼을 비롯하여 순채, 통발 등의 습지식물과 발풀고사리, 홍지네고사리 등 양치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다.

습지뿐만 아니라 동백동산 자체도 1981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됐다. 동백동산은 평지에 남아 있는 난대성 상록활엽수로는 제주도에서 면적이 가장 넓다. 곶자왈내 용암이 만들어 낸 요철 지형은 풍부한 지하수를 머금고,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숲을 이루어 생태계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용암이 깨져 형성된 돌무더기 틈으로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해 다양한 식생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일대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8호인 백서향 및 변산일엽 군락지로 지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선흘곶자왈 안의 목시물굴 입구.
선흘곶자왈 안의 목시물굴 입구.
선흘곶자왈의 동백동산 숲길.
선흘곶자왈의 동백동산 숲길.

동백동산이 위치한 선흘곶자왈 안에는 목시물굴, 대섭이굴, 토틀굴 등 용암동굴도 많다. 4ㆍ3 당시 이들 동굴은 지역 주민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중산간마을 소개령과 초토화 작전으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동굴에 숨어든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목시물굴 등 일부 동굴에 숨었던 주민들이 토벌대에 발각돼 집단 학살을 당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곶자왈 특유의 다양한 식생과 습지의 희귀식물, 그리고 지역 주민의 애환이 서린 동백동산은 이제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동백동산습지센터가 건립되고, 4.82㎞의 선흘곶자왈 동백동산 숲길이 조성돼 생태관광마을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러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인근 지역의 개발계획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선흘곶자왈의 일부를 포함한 구좌읍 동복리 일대 99만1,072㎡의 부지에 1,000여 마리의 야생동물을 사육하는 시설과 숙박시설을 짓는 제주사파리월드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개발계획을 두고 지역 환경단체는 “람사르습지도시로 지정한 취지와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반발하고 있고, 인근 마을 주민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제주의 자연과 문화의 진가를 제대로 살리는 길은 다름 아닌 ‘제주다움’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제주의 지속가능성이기도 하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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