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4일 대만 국민투표
올림픽 등 국제스포츠대회서
‘차이니스 타이베이’ 아닌
‘대만’ 명칭 사용 여부 표결
차이잉원 총통 관망 입장이 변수
탈원전ㆍ동성결혼 등도 안건으로
1900만명 중 25% 찬성 땐 통과
이달 24일 대만은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벌인다. 국민투표는 2008년 이후 10년 만으로, 지난해 말 실시 기준이 완화되면서 이번에 총 10가지 사안을 놓고 표결이 진행된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비롯한 국제스포츠대회 참가 명칭을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pei)’가 아닌 ‘대만(Taiwan)’으로 할 것인지와 탈원전, 동성결혼 합법화 등에 찬성하는지가 주요 안건이다. 국민투표는 1,900만명의 대만 유권자 가운데 25%가 찬성하면 통과되며, 통과된 안건에 대해 정부는 3개월 내 이를 반영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국제스포츠대회 호칭 ’차이니스 타이베이’ 그대로?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초 대만의 국제스포츠대회 호칭 사용 문제를 놓고 42만9,000건의 국민투표 실시 청원 서명이 접수돼 이 안건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대만 유권자들은 24일 ‘2020년 도쿄올림픽을 포함해 국제스포츠대회에서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대만은 중국의 끈질긴 압력으로 198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합의해 지금껏 올릭픽에서 대만이라는 명칭 대신 차이니스 타이베이를 사용해왔다.
논란이 불거진 건 지난해 8월 대만이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개최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회 조직위는 안내 자료에서 대만을 차이니스 타이베이로 소개, 해당 명칭에 대한 반감이 달아올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여기는 중국 정부가 대만을 계속해서 압박하고 있는 것을 언급하며 불쾌감을 드러낸 글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차이니스 타이베이라고 불리는 섬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좀 알려줄 수 있나요? 제가 지리학을 잘 몰라서요’라고 비꼬거나, ‘타이베이(대만의 수도)가 차이니스 타이베이의 수도라고요? 대회를 개최하면서 자국을 이렇게 길게 설명해야 하나요?’라고 불평하는 식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 “미국이 중대 국제대회를 주최하면서 스스로를 ‘영국의 워싱턴’이라고 부른다면 어떨 지 한 번 상상해보라”며 명칭 사용에 관한 대만의 논쟁을 소개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대만인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으로 인식하는 비중이 높아진 것과 연관이 깊다. 올 6월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5.8%가 스스로를 대만인으로 인식, ‘중국인+대만인’(37.2%)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을 상회했다. 중국인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은 3.2%에 그쳤다. 대만 현지매체인 뉴스렌즈는 “대만국립정치대 조사에 따르면 1992~2018년 사이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대만과 중국이 하나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 들였던 보수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 시절(2008~2016년)에도 이런 흐름에 큰 변화가 없었다”며 “특히 18~39세 사이 응답자에서 대만인 정체성이 뚜렷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달 20일에는 대만 독립을 국민투표로 가릴 것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처음으로 벌어졌다. 로이터통신 등은 “수만 명의 시위대가 대만 독립을 국민투표로 결정하자고 촉구했다”며 “이들은 국가명도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ㆍROC)이 아닌 대만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물론 명칭을 대만으로 하자는 의견이 많더라도 국제무대에서 명칭 개정이 실제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국이 대만에서 국민투표가 통과될 경우 올림픽에 불참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거칠게 항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웨이펑허(魏鳳和) 중국 국방부장은 이와 관련 지난 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외교안보 대화를 마친 후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분열되면 미국이 남북전쟁 때 그랬듯 모든 대가를 감수하고서라도 조국 통일을 수호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진당 출신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대만 독립을 추구하면서도 중국과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2025년까지 탈원전, 동성결혼 합법화도 찬반 투표
대만 유권자들은 또 국민투표에서 2025년까지 대만 내 모든 핵 발전소를 폐쇄하는 전기사업법 조항을 폐기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차이 총통은 2016년 대선에서 탈원전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고, 정권교체 이후 전기사업법에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의 가동을 전면 중단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원전 지지 단체가 주도한 탈원전 폐기 국민투표 청원은 사실 가까스로 국민투표 안건에 오를 수 있었다. 애초에 2,000여건의 서명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소송과 추가 서명을 받아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10번째로 국민투표 안건에 채택됐다.
재임 기간 추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 반대에 부딪혀 계획을 백지화한 마잉주 전 총통은 탈원전 정책 폐기를 지지하고 있다. 정전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며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동안 원전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후아메이치우 쑨원대 교수 등 학자 50여명은 공개 서한을 통해 탈원전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후아메이치우 교수는 “원전을 유지하면 지진과 쓰나미로 재앙을 맞을 수 있다”며 “방사성 폐기물 처리도 너무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기독교단체 등 보수 성향의 단체 주도로 성사 된 동성 결혼 및 동성 커플의 사실혼 관계 허용 찬반 투표가 벌어진다. 앞서 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5월 이성 간의 결혼만 인정한 민법이 위헌이라고 판결, 대만은 동성 결혼 합법화를 눈 앞에 두고 있다. 헌재 판결에 따라 의회가 2년 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하지만, 기독교단체는 이를 뒤집겠다는 의도다.
한편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시위대는 지난달 말 타이베이에서 정부를 상대로 동성 결혼을 평등하게 대우하라고 촉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결혼 평등 법안을 지지한다던 차이 총통이 집권에 성공했지만 그 동안 변한 게 거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시위에 참석한 미아오 포야는 로이터통신에 “우리는 차이잉원 정부에 시민들이 결혼 평등을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투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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