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의 사전적인 뜻은 ‘어떤 개체군 또는 종의 영원한 소멸’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한 생물종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말하지요. 이와 관련 기억에 남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혹성탈출’입니다. 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주인공들이 어떤 행성에 불시착했더니 그곳에선 영장류인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이 지배하고 인간을 잡아 실험과 전시 등을 위해 사육하고 살인을 자행하더라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은 말을 타고 탈출하지만 그곳이 다름 아닌 지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이 행성에서 남녀 주인공이 모두 사라진다면 우리는 이를 인간이란 종의 ‘멸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론 둘 중 한 명만 사라져도 앞으로의 번식은 불가능해 이때부터 멸종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멸종된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늑대는 미국 북서부 옐로스톤 국립공원 인근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최상위 개과의 포식자였습니다. 당시 이 종을 대상으로 심각한 수준의 총기와 독극물 등을 이용한 수렵이 만연했습니다. 결국 1926년 옐로스톤에 마지막 남은 한 무리의 늑대가 인간에 의해 사라졌습니다. 이 늑대 무리를 끝으로 이곳에서는 더 이상 늑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가축과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이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생각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50여년이 지난 1974년 늑대는 옐로스톤 내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됐고, 1년 후인 1975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옐로스톤 늑대 복원 프로그램’이 시작됐습니다. 복원 프로그램이 시작됐다고 바로 복원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수많은 모니터링과 논의를 거쳐야 했고 미국 의회는 1991년에서야 늑대 복원을 위한 예산안을 승인했습니다. 1994년에는 늑대 재도입에 대한 의견을 160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렴했다. 마침내 1995년과 1996년 캐나다 서부로부터 도입된 31마리의 늑대를 옐로스톤에 단계적으로 이주시켰습니다. 2010년 전후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있는 몬태나와 아이다호 2개 주에서 늑대는 성공적으로 복원되어 멸종 위기 목록에서 제외됐지만, 현재까지도 이들에 대한 개체군과 서식지에 대한 보전 및 관리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왜 멸종 위기 야생동물을 복원해야 하나
우리는 왜 과거 수많은 종의 야생동물을 죽여 놓고 다시금 이 종을 복원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이미 멸종했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복원해야만 할까요? 그것도 큰 예산을 들여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늑대 복원사업을 통해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900년대 초반 옐로스톤에서 늑대가 사라지면서 이들의 먹잇감인 사슴과 엘크가 번성했고, 그 결과 직간접적으로 식물과 동물의 생물 다양성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 먹이그물에 심각한 충격을 주게 된 것입니다. 특히 겨울철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 사슴류는 식물의 새싹, 어린나무, 줄기와 뿌리 등을 닥치는 대로 먹는데, 이로 인해 식생이 비정상적인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는 식물을 은신처와 먹이로 이용하는 소형동물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복원 이후 늑대가 사슴, 엘크 등을 주요 먹잇감으로 삼아 이들의 개체수가 줄어들었고, 늑대가 먹다 남긴 사체는 청소부 역할을 하는 다양한 종들에게 먹이가 됐습니다. 또 늑대가 없는 곳에서 최상위 포식자였던 코요테 수가 줄어 소형포식자, 설치류, 조류 등의 개체 수가 늘어났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늑대로 인해 사슴, 엘크 등의 서식지 이용 양상에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 결과 하천 수변에서 사라졌던 큰키나무들이 다시 자라나 다양한 육상생물에게 안정된 서식지를 제공했습니다. 하천에는 비버가 다시 돌아와 댐을 만들면서 다양한 수생생물의 서식지가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수변 식생과 수중의 비버댐은 하천의 침식작용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늑대의 복원이 생태계 먹이그물 내 생물 간 상호작용을 복원시킨 것은 물론 생태계의 물리적인 복원까지 이끌어낸 것입니다. 현재 옐로스톤은 예전 자연의 건강성을 회복해 가고 있는 동시에, 늑대의 울음소리를 포함한 다양한 야생동물의 생태를 접할 수 있는 생태관광의 중요한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멸종 위기 야생동물의 복원 사례
우리나라 멸종 위기종 복원사업의 첫 사례는 멸종 위기종 I급인 반달가슴곰입니다. 1983년 설악산 마등령에서 한 밀렵꾼에 의해 총을 맞고 신음하던 반달가슴곰을 끝으로 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약 20년 후인 2000년,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반달가슴곰이 카메라에 잡혔고 약 5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2004년부터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현재 50개체가 넘는 곰들이 서식하게 됐습니다. 이는 2020년까지의 목표 ‘최소 생존 개체수’인 50개체를 이미 넘어선 것입니다.
복원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간의 노력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종의 보다 성공적인 복원을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지속적인 개체군의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입니다. 최소생존개체수란 말 그대로 이 종의 최소생존을 위해 필요한 개체 수를 의미하며 자연적 혹은 인위적 교란요인에 의해 언제든지 사라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방사된 반달가슴곰의 복원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안정된 서식지 확보입니다. 방사지 내 지역주민과의 충돌을 줄이고 로드킬 및 밀렵, 개발, 환경오염 등과 같은 교란요인을 제거하고, 갑작스러운 교란요인에 대비해 하나 이상의 다중개체군으로 자연스럽게 분산시켜야 합니다. 이때 원활한 이동을 위해 합리적인 서식지간 생태 축 연결 및 서식지 복원이 요구됩니다. 반달가슴곰 외에도 종복원기술원과 서식지외 보전기관(지자체, 대학 등)에서는 황새, 따오기, 산양, 여우 등을 복원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복원사업은 아직까지 갈 길이 먼 것이 현실입니다.
◇멸종 위기종 복원의 새로운 패러다임 도래
반면 국제적으로는 멸종위기종 복원에 최첨단 기술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미 멸종한 종을 신기술을 사용해 복원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 600만년 전부터 북미에는 여행비둘기(또는 나그네비둘기)가 살았지만, 1914년 신시내티 동물에서 마샤라는 마지막 개체가 죽은 뒤 이 종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습니다. 한 때 약 50억 마리였던 이 종이 멸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0년에 불과했습니다. 멸종의 원인은 사업적 사냥이 허용되면서 식용을 목적으로 거래됐기 때문입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이 종의 표본만이 박물관에 남아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최근 생명공학회사, 대학연구소, 조류보호학자, 생명윤리학자 등이 모여 박물관 표본을 이용해 실제로 복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진들은 여행비둘기의 일부 발바닥 조직을 이용해 유전자(DNA) 단편을 얻은 후 최첨단 유전체 분석방법을 이용해 전체 게놈(생물체의 모든 유전정보)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밝혀진 전체 게놈을 바탕으로 살아 있는 가장 가까운 친척인 꼬리줄무늬비둘기와 여행비둘기의 게놈을 합쳐 여행비둘기의 DNA를 얻기 위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연구진은 이 DNA를 닭의 생식선에 넣고 이를 통해 비둘기의 알을 얻어 부화한 새끼를 증식시키는 연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증식된 여행비둘기에게 무리를 이루는 법과 과거 서식지와 먹이터를 찾는 법을 훈련시키는 것까지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유사한 방법은 오록스 등 일부 야생포유동물에 이미 적용이 된 바 있는데 앞으로 더욱 발전된 분자생물학적 방법, 합성생물학적 방법, 인공수정 등의 복원기술들이 국외뿐만 아니라 국내의 다양한 종에게 적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 지구적 생물 다양성 감소와 멸종 가속화
최근 인권 전문가이자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국제법 교수인 존 녹스 U.N. 특별 조사 위원은 UN 보고서를 통해 인권에 있어 생물 다양성과 건강한 생태계가 필수적임을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즉 생물 다양성이 식량, 물, 건강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21세기 들어 많은 과학자들은 현재 생물 다양성 위기와 생태계 건강성 악화로 6번째 지구의 대량 멸종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생물 다양성 분야의 과학자 19명은 2006년 저명한 학술지인 ‘네이처’에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서식지 파괴와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지구의 생물종이 자연적인 속도보다 약 100~1,000배 정도 빠른 속도로 멸종하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이는 과거 6,500만년 전 소행성 충돌로 공룡을 포함한 수천 종의 동식물이 멸종한 때보다 더 빠른 속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종 수는 1만6,119종에 달합니다. 이중 포유류의 25%, 조류의 10%, 양서류의 30%이상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향후 50년 내 생물종 15~37%가 추가적으로 멸종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특히 1970~2012년 사이 포유류를 포함하는 척추동물의 개체군 풍부도가 전체적으로 58%나 감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덴마크 오르후스대학의 고생물학자 매트 데이비스 박사 연구팀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포유류의 생물 다양성을 현대 인류가 출현하기 전으로 복원하는데 약 500~700만 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50년간 사라지는 포유류의 생물 다양성을 복원하는 데에는 약 300~500만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처럼 생물의 멸종은 생물 다양성, 생태계 건강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만일 이미 멸종했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종에 대한 복원이 지연되거나 수행되지 않는다면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 건강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생물 다양성을 복원 또는 현재 수준을 유지하지 않고 나중에 복원해도 되는 것으로 치부한다면 우리는 더 혹독하고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를 수도 있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멸종의 운명에서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김백준 국립생태원 환경영향평가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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