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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 "난 운이 좋았고 안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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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 "난 운이 좋았고 안주하지 않았다"

입력
2018.11.16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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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는 남편이 정치인이 되는 걸 반기지 않았다. 정치도 불신했다. 대선에 뛰어들어 '다른 사람'이 됐다. "나는 선거운동이 좋았다. 전국의 유권자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었다. 하지만 혹독하게 힘든 일이었다. 틈나는 대로 쉬어야 했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미셸 오바마는 남편이 정치인이 되는 걸 반기지 않았다. 정치도 불신했다. 대선에 뛰어들어 '다른 사람'이 됐다. "나는 선거운동이 좋았다. 전국의 유권자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었다. 하지만 혹독하게 힘든 일이었다. 틈나는 대로 쉬어야 했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정치인 자서전을 읽는다는 건, 비유하자면 설탕으로 잔뜩 코팅된 뭔가를 먹는 것이다. 그런 책은 좋은 말로 시작해 더 좋은 말로 끝나기 마련이다. 당으로 머리가 얼얼해질 것을 감수하고 우리가 책에서 찾는 건 인생의 교훈이다. 아니면 ‘역시 그는 내가 지지할 만한 지도자야’라는 확신이거나.

미셸 오바마(54)의 자서전 ‘비커밍(Becoming)’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미셸은 ‘흑인’ ‘여성’ ‘가난’이라는 3겹의 벽을 뛰어 넘은 착한 이야기를 잘 포장해서 들려준다. 그는 “정해진 길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모범생이자 “한 사람의 의견이 나에 대한 나 자신의 평가를 무너뜨리도록 놓아 두지 않는” 모험가였고, 그래서 끝내 “사다리의 가장 높은 발판”에 도달했다고 자평한다. 다시 말하지만, 자서전은 원래 그렇게 좀 느끼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57)가 성공한 미국 대통령이었는지에 대해선 양론이 있다. 미셸이 성공한 퍼스트레이디였음에 토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퍼스트레이디, 그것도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출발했다. “흑인 사회에는 오래된 금언이 하나 있다. 남들보다 두 배 이상 잘해야 절반이라도 인정받는다.” 흑인 퍼스트레이디는 백인 퍼스트레이디와 달리 저절로 우아해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미셸의 “엉덩이 크기”를 놓고 토론을 벌였고, “너무 크고, 너무 강하고, 남자의 기를 죽이려 드는 고질라 같은 여자”라고 불렀다. “내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대중의 판단이 재깍 그 공백을 메운다. 내가 스스로 나서서 자신을 규정하지 않으면, 남들이 얼른 나 대신 나를 부정확하게 규정한다.”

영리한 미셸은 균형을 구했다. “잘 차려 입은 인형”으로 묘사되는 전통적 영부인과, 힐러리 클린턴처럼 오버하는 영부인 사이에서 “부드러운 빛”을 내고자 했다. 그 빛에서 나온 힘을 제대로 썼다. 어린이,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러고도 적을 별로 만들지 않았다.

퍼스트레이디로서 미셸의 최우선순위는 두 딸, 말리아와 샤샤였다. "버락이 대통령이 되면 개를 키우기로 했던 약속을 지켰다. 결국 두 마리를 키우게 됐다. 보(사진)와 서니는 매사를 더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퍼스트레이디로서 미셸의 최우선순위는 두 딸, 말리아와 샤샤였다. "버락이 대통령이 되면 개를 키우기로 했던 약속을 지켰다. 결국 두 마리를 키우게 됐다. 보(사진)와 서니는 매사를 더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시카고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백악관까지 수직 상승한 성공 서사를 시간 순으로 읊는 미셸의 목소리엔 ‘오만’이 없다. 그의 부모는 엘리트 특권층은 아니었지만, 미셸 남매의 교육에 인생을 건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미셸은 가족과 지역사회의 사랑과 기대를 흠뻑 받으며 자랐다. 그는 그게 “행운”이었다는 걸 잊지 않는다. “우리가 어처구니없을 만큼 운이 좋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며, 따라서 우리끼리 안주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래서 유색인종, 여성, 혹은 유색인종인 여성의 멘토가 되려 애썼다. “내가 최초였더라도, 나중까지도 (그런 자리에) 나만 있지는 않기를 바랐다. 개천에서 난 용이 되는 것은 물론 훌륭한 일이지만, 개천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책은 퍼스트레이디가 아닌 인간 미셸의 꿈이 좌절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셸은 프린스턴대,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다. 일류 로펌을 제 발로 나와 사회운동을 하려 했다. 그의 성공 서사는 오바마에게 “집어삼켜졌다.” 미셸이 아무리 잘났어도, 그의 신분은 어디까지나 ‘더 잘나가는 남편의 조연’이었다. “버락이 마음껏 자신의 꿈을 추구하도록 허락한 뒤로, 나는 내 일에 들이는 노력을 좀 줄였다. 거의 의도적으로, 스스로의 야망엔 무감각해졌다. 오바마의 아내로 인지될수록 내 다른 면들은 남들의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건 “거대한 비전을 품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죄”였다. 미셸이 소개한 일화. 연애 시절 잠에서 깬 미셸이 속삭였다. “무슨 생각해요?” 천장을 응시하고 있던 오바마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소득 불평등에 관해서요.”


 비커밍 

 미셸 오바마 지음∙김명남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발행∙564쪽∙2만2,000원 

세상은 미셸이 언젠가 ‘미셸의 꿈’을 펼칠 거라고 기대한다. 대선 출마 말이다. ‘오바마 부인’으로 불리기 전, 미셸은 정치를 불신했었다. “정치는 전통적으로 흑인을 억압하는 수단이었다. 내내 흑인을 고립시키고 배제했고, 흑인이 교육과 고용과 고소득을 누리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막았다.” 미셸은 정치의 긍정적 힘을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됐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미셸은 책에서 “정치는 내 세계가 아니”라고 일단 선을 그었다. “사람들이 종종 내게 묻기에, 이 자리에서 확실히 대답해두겠다. 나는 공직에 출마할 의향이 없다. 전혀 없다.” 자서전이 나온 이상, 미셸 대망론은 더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많은 이들이 ‘비커밍’이라는 제목 뒤에 숨겨진 말이 ‘프레지던트(President)’일 거라고 짐작한다. 책은 14일 31개국에서 동시 출간됐다. 각국에서 찍은 초판은 무려 300만권. 출판이 만년 불황이라는 한국에서도 3만부를 찍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자서전도 내년 하반기쯤 나온다. 미국 차기 대선은 그 다음 해인 2020년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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