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순철 개인전 ‘나의 가족’
실향민 옛 가족사진 바탕으로
KIST가 현재 얼굴 창조
여든을 넘은 아들(김홍태)이 부모를 70년 만에 만났다. 사진을 통해서다. 한국전쟁 발발 이전에 교복을 입고 부모의 앞에 앉아 사진을 찍었던 소년은 이제 부모의 뒤에 서서 카메라를 응시한다. 전쟁은 부모와 아들을 갈라놓았지만 세월은 함께 흘렀다. 닮은 세 노인의 흑백 사진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어있다. 김씨는 실제 인물이지만 김씨의 부모는 과거 초상을 바탕으로 현실 모습을 상상한 가상이다.
현대 기술을 사진과 접목해 실향민의 이산가족 상봉을 가상으로 성사시킨 변순철 작가의 개인전 ‘나의 가족’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22일부터 열린다. 실향민 23명의 가상의 부모, 형제 등을 등장시킨 사진 20여점이 전시된다.
작업은 2015~2016년에 걸쳐 이뤄졌다. 변 작가는 광복 70주년이었던 2015년 대학적십자사의 협조로 북한에 있는 가족의 옛 사진을 소장한 2,000명의 실향민 중 50여명을 추렸다. 사진의 가족 얼굴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의뢰해 ‘3D 나이변환 기술’을 적용해 현재 모습에 가장 가까운 가상의 얼굴을 만들었다. 이후 실제 인물과 가족의 현재 나이로 추정되는 모델이 함께 서서 사진을 찍은 후 가상의 얼굴을 합성해 작품을 완성했다. 사진 속 인물은 누가 실제인지, 가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다. 변 작가는 “가상과 현실을 뛰어넘은 느낌을 주기 위해 높이가 2m에 가깝도록 크게 하고, 흑백으로 처리했다”며 “주름과 실 한 올, 눈빛 등 인물의 디테일은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하나같이 뭉클하다. 부모님과 큰 형의 사진을 손에 꼭 쥐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울음을 가까스로 참고 있는 서은희씨나 가상의 아버지와 손을 부여 잡고 나란히 서 있는 이배근씨의 사진은 실제 여부에 상관없이 통곡의 세월을 버텨온 이들의 아픔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변 작가는 “사진을 찍는 동안 그들의 사연을 듣고 여러 번 울컥했다”며 “사연을 듣고 그것을 끄집어내 시각화하는 게 작가로서의 역할이었다”고 설명했다.
변 작가는 평범한 인물에 감춰진 사회적 의미와 욕망을 카메라로 포착해왔다. 동양 여자와 백인 남자,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 등 다인종 가족을 찍은 ‘짝-패’ 시리즈나 KBS ‘전국노래자랑’ 출연자들의 생생한 모습을 찍은 ‘전국노래자랑’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번 전시도 가족을 그리워하는 실향민 개인의 모습을 단순화해 역사적인 의미를 끌어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갤러리는 실향민의 실제 사진을 찍은 사진과, 이를 바탕으로 재현된 가상의 인물을 합성한 사진을 나란히 걸지 않고 따로 떼어 전시했다. 시간이 흐른 뒤 이들의 모습을 전시장에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어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변 작가는 “기억은 사라지지만 사진은 기억을 대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13일까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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