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선량 방사선에 계속 노출된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인근 야생 원숭이에서 신체 변화가 나타난 만큼 사람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일본 도호쿠대ㆍ히로시마대ㆍ도쿄의과대 등이 참여한 공동연구진은 지난 13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 반경 40㎞ 안쪽에 서식하는 ‘피폭’ 야생 원숭이와 반경 60~100㎞ 사이에 사는 ‘대조군’ 야생 원숭이 등 95마리를 잡아 방사선 내부ㆍ외부 피폭 정도, 조혈작용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지 등을 비교했다. 골수에서 백혈구ㆍ적혈구ㆍ혈소판 등 혈구세포를 만드는 조혈작용은 방사선에 민감하다.
후쿠시마 원전 반경 40㎞ 이내에 살고 있어 지속해서 저선량 방사선 영향을 받은 야생 원숭이의 내부 피폭량은 하루평균 0.0000255Gy(그레이ㆍGy는 방사선 에너지 흡수량 단위)였다. 내부 피폭은 먹이를 먹거나 호흡을 통해 체내에 들어온 방사성 물질에 의한 피폭을 뜻한다. 대기나 땅에 있는 방사성 물질에 의한 외부 피폭량까지 합하면 하루에 평균 0.0000415Gy의 방사선에 노출됐다. 방사성 물질에 대한 노출이 덜한 후쿠시마 원전 반경 60~100㎞ 야생 원숭이의 내부 피폭량(하루평균 0.00000064Gy)은 그보다 훨씬 적었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연간 0.3∼0.5Gy에 피폭되면 면역체계가 약해진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덜 피폭됐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다. 국제기준보다 적은 연간 피폭량(약 0.152Gy)을 기록한 후쿠시마 원전 40㎞ 이내에 사는 원숭이에게서 각종 혈액세포 수치가 비정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피폭 원숭이의 경우 원전에서 만들어진 인공 방사성 물질인 세슘(Cs-134, Cs-137) 농도가 1㎏당 평균 6,200베크렐(Bq)로 대조군 원숭이(㎏당 평균 102.7Bq)보다 60배 높았다. 피폭 원숭이의 혈액 1㎖당 백혈구(9,300개)와 적혈구(450만개) 수는 대조군 원숭이(1㎖당 백혈구 9,800개ㆍ적혈구 530만개)보다 적었다. 골수 안에 있으면서 백혈구ㆍ적혈구 등을 만드는 조혈세포와 골수세포는 물론, 혈액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도 피폭 원숭이에게서 적게 나왔다.
연구진은 “방사성 세슘 농도는 뼈를 감싼 골격근에서 높게 나타난다”며 “뼈 안에 있는 골수가 골격근에 쌓인 방사성 물질에 의해 피폭되면서 여러 혈액세포 수가 감소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연구결과는 저선량 방사선이라도 계속 노출되면 조혈 작용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7년 지났지만 방사성 물질에 의한 생물학적 영향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 일본수의생명과학대ㆍ교토대 연구진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약 70㎞ 떨어진 지역에서 2011년 전후로 태어난 야생 원숭이 태아(각 31마리)의 체중과 머리 크기를 비교한 결과, 원전 폭발 사고 이후 태어난 새끼의 체중과 머리 크기가 이전보다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한 논문에서 연구진은 “방사선 피폭이 성장을 늦추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2014년 9월에는 오키나와(沖繩)에서 잡은 나비에게 후쿠시마에서 59~1,760㎞ 떨어진 지역 6곳에서 모은 나뭇잎을 먹이로 줬더니, 방사성 세슘에 오염된 나뭇잎을 먹은 나비의 수명이 감소했다는 일본 류큐대 연구진의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현재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에선 방사성 물질이 녹아든 오염수가 날로 늘고 있다. 원전 폐로 작업의 첫 단계인 사용후핵연료 반출은 4호기만 마쳤다. 나머지는 원전 내 방사선량이 높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원전 폐로와 오염 제거, 배상 비용 등을 모두 합하면 원전사고 처리 비용으로 약 21조5,000억엔(약 215조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한때 값싸고 깨끗하다고 여겨졌던 원전의 역설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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