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자 컬링 대표팀인 경북체육회 소속 김은정ㆍ김영미ㆍ김경애ㆍ김선영ㆍ김초희(팀 킴) 등 5명이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그의 딸인 김민정 여자 팀 감독, 사위인 장반석 믹스더블 팀 감독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호소문을 낸 뒤 또 다른 폭로가 줄을 잇고 있다.
평창올림픽 남자대표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김 전 부회장의 아들 김민찬을 뒤늦게 합류시키기 위해 붙박이 주전에 가까웠던 다른 선수가 희생양이 됐다는 의혹도 그 중 하나다.
평창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은 1차(2017년 3월 6일~12일), 2차(4월 5일~12일), 3차(5월 1일~4일)에 걸쳐 치러졌는데 김민찬은 2017년 3월경 전역 후 2,3차 선발전 명단에 갑자기 이름을 올렸다. 경북체육회는 최종 우승을 차지해 평창올림픽 출전권을 땄고 스킵 김창민, 리드 이기복, 세컨드 오은수, 서드 성세현, 후보 김민찬이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김민찬은 올림픽 예선 1,2차전을 선발로 뛰었으나 한국은 모두 졌다. 김민찬은 3차전부터 후보로 다시 밀렸고 한국 남자 팀은 평창올림픽 예선 전적 4승 5패로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올림픽 선발전 직전 피해를 본 것으로 보이는 선수가 김 모 씨다. 김 씨는 2014년부터 3년 이상 경북체육회에서 리드로 뛰다가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을 3개월 여 앞둔 2016년 말 남자 팀에서 더 이상 뛸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김 씨는 한국일보와 장시간 인터뷰를 통해 “다른 선수들과 4년 동안 호흡을 맞췄는데 사전 의논도 없이 하루아침에 나가라고 해서 멘붕(멘털 붕괴)이 왔다”고 털어놓으며 “늦었지만 감사를 통해 진실이 꼭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결국 남자 팀에서 빠진 그는 믹스더블로 종목을 바꿔 올림픽 선발전에 출전했지만 탈락 했고 지난해 12월 계약이 끝난 뒤 컬링계를 완전히 떠났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인터뷰 내용을 있는 그대로 써 달라”는 김 씨 요청에 따라 일문일답 형태로 기사를 싣는다.
-남자 팀에서 갑자기 빠지게 된 상황을 자세히 듣고 싶다. ‘팀 킴’의 폭로 후 이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11월 초순경 장반석 감독에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장 감독은 “김 선수가 못하겠다고 손을 들어서 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더라.
“그 말이 틀린 건 없다. 그러나 그 전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의성에서 아시아태평양컬링선수권(PACCㆍ2016년 11월 5~12일)이 예정돼 있어 의성 컬링훈련원이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그래서(훈련장을 쓸 수 없으니) 우리 팀은 캐나다로 전지훈련을 좀 빨리 떠났다. 약 40~50일 일정이었다. 오랜 외국 생활에 지치고 컬링 성적, 제 실력에 스트레스 이런 것들이 많이 쌓인 상태였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나.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에서 한국에 왔고 PACC 대회의 일손이 모자란다고 우리(경북체육회 선수들)가 타임키퍼를 했다.(당시 대회는 강원도청이 국가대표로 출전)”
-타임키퍼를 왜 했나.
“지도부가 ’우리 집에서 열리는 대회인데 일손이 부족하니 도와야 한다‘고 했다.”
-대회 내내 한 것인가.
“그렇다. 그 때 의성에서 훈련하던 대학생 선수들도 있었는데 그들과 우리가 같이 했다.”
-선수들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다고 타임키퍼를 하는 경우가 있나.
“잘 없지 않나... 다른 것보다 우리도 선수라 (국가대표로 그 대회에 못 나가는 것도) 속상한데 타임키퍼를 하며 다른 선수들이 뛰는 걸 보니 심리적으로 좀 힘들었던 기억은 있다.”
-대회 후 어떤 일이 있었나.
“대회가 끝나고 첫 훈련이 있던 날 팀 미팅을 했는데 ‘올림픽 선발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는 선수 엔트리를 확정해야 한다. 당시 후보였던 이기복 선수를 선발 엔트리에 넣고 훈련을 진행할 테니 너는 4명과 따로, 시트를 잡아줄 테니, 혼자 훈련을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 김 선수의 포지션은.
“리드(첫 두 번의 스톤을 던지는 역할. 평창올림픽 때 ‘팀 킴’의 김영미가 이 포지션)였다.”
-그 통보를 누구에게 받았나.
“장반석 감독이었다. 사전에 어떤 말도 없이 통보하는 식으로 ‘이기복 선수로 가야 우리가 올림픽 선발전을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 같다며 따로 훈련하라’고 하니 그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터져 버렸다.”
-그 말을 들은 시기는.
“올림픽 1차 선발전 3~4개월 전으로 기억하고 있다.”
-경북체육회 남자 팀에서 몇 년 정도 컬링을 했나.
“4년 정도 했다.”
-어떤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나.
“그 때 이기복 선수는 후보생이었고 이기정 선수(추후 믹스더블로 전향해 평창올림픽 출전)가 원래 남자 팀에 있었다. 스킵 김창민 선수가 제대(2016년 말 전역)하기 전 나와 오은수, 성세현은 4년 정도 꾸준히 호흡을 맞췄다.”
-4년 정도 호흡을 맞추며 리드로 뛰었는데 장반석 감독이 너는 시트에서 따로 훈련하라고 했을 때, 김 선수는 ‘내 실력이 부족하다’고 받아들인 건가.
“그 땐 너무 혼란스러워서 그렇게 받아들였는데, 이제 아니라는 의심을 갖게 됐다.”
-후보도 아니고 리드였던 김 선수를 갑자기 빼는데 왜 그러냐고 반문하진 않았나.
“지도자가 올림픽에 가려면 이기복 선수가 맞는 거라 얘기하는데 내가 거기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하나. 이미 결정을 다 하고 통보 하는 느낌인데…“
-반문하거나 물어볼 분위기는 아니었던 건가.
“벌써 다 확정된 분위기인데 내가 뭐라고 한들 바뀌는 게 있을까.”
-일방적인 통보 후 어떤 일이 있었나.
“팀원들이 코치들에게 ‘그렇게 통보하는 하는 건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수들은 ‘다른 시트에서 훈련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난 이미 정신이 거의 나가 있었다.”
-그 다음에는.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주장 형(김창민)이 임명섭 감독(남자 팀 지도자)에게 ‘아무리 얘기하더라도 그렇게 통보하는 건 아닌 거 같다’고 얘기를 한 모양이다. 임 감독님이 훈련 전 따로 보자고 하셨지만 난 ‘못하겠다고, 이제는 돌(스톤)을 던지는 것도 무섭고 싫다’고 말했다.”
-임 감독 반응은.
“두 번 정도 ‘나가면 안 된다’ ‘네가 필요하니 남아라’고 하셨다. 그리고 장 감독님을 만났는데 감독님이 ‘그렇게 힘들었느냐’ ‘나가서 뭐 할 거냐. 생각해놓은 것이 있느냐’ ‘특별히 할 게 없으면 나가지 마라’고 하셨다. 그래도 난 ‘못 하겠습니다’고 계속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장 감독님이 위약금 얘기를 하셨다.”
-무슨 위약금인가.
“계약기간 도중 그만두면 위약금이 있다는 게 계약서에 명시돼 있었던 것으로 확실히 기억한다.”
-위약금이 얼마였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하지만 나에게는 꽤 큰 금액이었다.”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으니 더 힘들었겠다.
“또 한 번 ‘멘붕’이 왔다. 그렇게 하다가 김경두 교수님(전 부회장)이 장반석, 임명섭 두 감독님이랑 저까지 같이 만나자고 하셨다고 들었다. 그 전에 이제 내가 나간다는 걸 알게 된 형들이 나를 계속 설득을 했다. ‘나가면 안 된다고’ ‘끝까지 같이 가자고’ ‘조금만 더 버티라고’ 말해줬다. 하루는 집 앞까지 형들이 찾아와서 설득을 한 적도 있다. ‘왜 그만두느냐고’ ‘얼마 안 남았는데 같이 가자’ ‘선발전 얼마 안 남았는데, 평창까지 가자’고 말이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까지 해주지 하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복잡했다.”
-그 후에는.
“형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장 감독님에게 ‘제가 4인조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한 겁니까’라고 물으니 말을 흐리듯 얘기를 하셨다.”
-답이 부정적이었다는 말인가.
“힘들다는 뉘앙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아 그런 가요’ 했더니 장 감독님이 ‘믹스더블로 선발전 나가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그런데 형들은 나보고 같이 하자고 계속 설득하는 상황이었으니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믹스더블로) 가버리면 또 형들 말을 무시하는 게 되니, 장 감독님에게 ‘형들한테 물어보고 (믹스더블로) 가라고 하면 가고, 아니면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장 감독님은 ‘중요한 시기에 네가 팀을 이탈한다고 하니 김경두 교수님이 많이 꾸짖으실 거라’고 말하시더라.”
-김경두 교수를 만났나.
“만났는데 꾸지람이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계약을 해지해주겠다’ ‘나갈 거면 나가라’고 말하셨다. 거기서 또 ‘멘붕’이 왔다. 장 감독님은 나에게 그런(조건 없이 나가라는) 얘기를 하나도 안 했고 혼날 거라고 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갔는데 아무 조건 없이 계약을 해지해줄 테니 결정하라는 분위기가 된 거다.”
-당황스러웠겠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 때 내가 ‘더 생각해보고 다시 말씀 드리겠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분위기상 어..어... 하다가 그러면 ‘믹스더블로 가겠다’고 말했다.”
-믹스더블로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던데.
“믹스더블 파트너가 확정된 게 경기(믹스더블 국가대표 1,2차 선발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전까지 사실상 훈련은 혼자 했다.”
-가르치는 사람도 없었나.
“그렇다.”
-훈련 과정에서 부당함을 느끼거나 그런 거는 없었나.
“뭐 혼자 운동 했으니...”
-그 후 남자 국가대표 선발전에 김민찬이 갑자기 포함되는 걸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 안 했나.
“‘어떻게 들어갔지?’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당황했다.”
-그러면 김 선수를 뺀 이유가 김민찬 선수를 넣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지는 않았던 건가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몰랐는데, 시간 지나고 국가대표 선발전에 갑자기 김민찬 선수가 합류했다고 얘기를 들으니...”
-그 때부터 좀 이상하다 느낌을 받았나.
“원래 지도부에서 5인조로 있을 때 내세웠던 원칙이 ‘후보 선수가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면 아예 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게 우리 팀의 원칙이었다. 그래서 내가 빠져도 쭉 4인조로 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선수(김민찬)가 들어가며 원칙이 바뀐 것 같았다.”
-김민찬이 최초 원칙에 맞게 모든 포지션을 소화 할 수 있는 후보라고 보나.
“당시(국가대표 선발전) 그 선수는 군에서 전역한 직후였다. 훈련량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시간이 흘렀고, 지금 와서 보니 이런 시나리오(김민찬을 넣기 위한)가 아니었느냐는 생각이 드는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게 평창올림픽 때 1,2차전을 김민찬 선수가 선발로 나왔다. 훈련이 너무 부족한 선수가 선발로 나온 게 상식상 가능한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컬링 선수들도 김민찬의 올림픽 예선 1,2차전 선발을 비상식적이라 볼까.
“컬링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그렇다. 군대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선수가 선발로 뛰고 있으니 말이다.”
-올림픽은 현장에서 봤나 아니면 중계로 봤나.
“사실 중계로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컬링이 올림픽 때 워낙 이슈가 돼서... 볼 수밖에 없었다.”
-경북체육회에서는 언제 나왔나.
“계약은 작년 12월에 끝났는데 3월까지 의성 컬링훈련원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했다. 올림픽 믹스더블 선발전 탈락하고 나서 ‘4인조도 팀이 꽉 차 있는 상태고. 믹스더블도 파트너가 없어서, 선수생활을 지속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라고 장 감독님이 얘기를 하셨다. 그러면서 ‘개인 훈련 하면서 당시 있던 학생 팀을 가르쳐 보면 어떻겠느냐’고 했고 내가 수락 했다.”
-혹시 어린 선수 지도하면서 월급을 못 받았다거나 그런 건 아닌가.
“의성여고와 충북 봉명고, 두 학교를 가르쳤다. 의성여고 가르친 건 내가 계산했던 거랑 딱 맞게 장 감독님이 임금을 주셨고, 봉명고는 받은 게 없는데...”
-얼마를 받기로 한 건데 못 받았나.
“계산을 안 해 봐서 잘 모르겠는데... 내가 봉사 활동 식으로 한다고 한 거니 상관은 없다. 지금까지 신경을 아예 안 쓰고 있었다.”
-봉명고를 매일 가르친 건가.
“1주일에 2~3번 정도였던 것 같다. (하루에 몇 시간씩?) 두 시간 정도...”
-봉명고를 가르친 급여는 못 받았지만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니 문제제기 할 의사는 없다는 건가.
“맞다. 계약서 없이 내가 자발적으로 애들 가르친 거니까...”
-지금은 어떻게 지내나.
“나름 치열하게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좀 쉬면서 군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
-컬링을 언제부터 시작한 건가.
“제대로 한 건 의성중학교 1학년부터다. 11~12년 정도 됐다.“
-컬링을 10년 이상 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하는 올림픽에 출전을 못 했다. 컬링이 올림픽에서 큰 화제를 모으는 걸 보며 감정이 복잡했을 것 같다.
“복잡했다. 어떻게 보면 선수로서는 제일 안 좋은 끝맺음을 했기 때문에...”
-혹시 김경두 전 부회장이나 지도부에 폭언, 폭행을 당한 적은 있나.
“폭행은 없었다.”
-폭언은.
“대회에서 2등을 하면 교수님이 ’너희는 이 좋은 시설에서 컬링을 하는데 어떻게 그런 팀에 질 수 있느냐‘고 강하게 질책은 종종 하셨다. 때로 상스런 욕을 하신 적도 있지만 자주 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여자 선수들이 호소문을 내고 기자회견까지 하며 사태가 커지는 걸 보고 어떤 생각이 드나.
“(힘든 부분이) 올림픽 이후에 더 심해졌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잘못된 부분도 보이는 것 같고...”
-경북체육회는 지도부의 어떤 결정에 대해서 선수들이 자기 의견을 얘기하거나 적극적으로 왜 그러냐고 물어보거나 하지 못하는 분위기인가.
“좀 힘들지 않을까... ‘팀 킴’ 누나들이 얘기한 것처럼...”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가 감사를 하는 과정에서 김 선수 이야기도 청취할 예정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알고 있다. 오늘 인터뷰 때 했던 그대로 말할 생각이다.”
한편 장반석 감독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선수가 한 포지션을 쭉 하라는 보장은 없다. 이기복을 리드로 바꾼 건 주전 경쟁의 일환이었고 일부 선수들의 건의도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선수(김 씨) 본인이 갑자기 컬링을 안 하겠다고 해서 우리도 당황했다. 그래서 믹스더블 전향을 권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찬의 후보 기용이 ‘후보 선수가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면 아예 두지 않겠다’는 원칙과 다르다는 김 씨 주장에 대해 장 감독은 “후보의 기량을 올리기 위해 어떤 선수든 모든 포지션을 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한 적은 있다”고 답했다. 김 씨가 경북체육회와 계약 종료 후 약 3개월 간 고등학생 선수들을 가르쳤는데 일부 급여를 못 받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의성여고를 가르친 건 강습비를 줬다. 봉명고는 그 선수가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한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서진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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