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편집국에서] 강제징용과 위안부문제, 인권이 먼저다

입력
2018.11.26 04:40
수정
2018.11.26 10:33
30면
0 0
화해치유재단 해산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다고 공식 발표한 21일 서울 중구 화해 치유재단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서재훈 기자
화해치유재단 해산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다고 공식 발표한 21일 서울 중구 화해 치유재단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서재훈 기자

2012년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이듬 해 이를 토대로 고등법원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고, 대법원 최종 결론을 기다리던 즈음 일본 외교가에서는 한일관계의 장래를 우려하는 한가지 시나리오가 급부상했다.

한국의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이 내려지면 일본 정부는 “징용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상으로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논리로 일본 기업에 배상거부를 지시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한국 사법부가 피해자의 배상금 확보를 위해 한국내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 집행을 실시한다. 이 장면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일본내에서는 “한국은 과거 국가간 합의를 파기한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과 함께 혐한문화가 확산돼 양국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강제징용 재상고 최종 판결을 늦추기 위해 법원행정처와 터무니 없는 사법거래를 한 것도 이 같은 일본측 우려를 반영하고, 아버지가 만든 부(負)의 유산인 한일청구권협상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시간만 조금 늦춰졌을 뿐 시나리오는 거의 틀리지 않았다. 지난 달 30일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신일철주금(일제강점기 당시 신일본제철)이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강제 집행 절차를 앞두고 있다. 29일에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재판이 진행되는 등 10여건의 유사한 판결이 줄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우리 정부가 2015년 한일정부간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치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일본에 통보까지 했으니 일단 외형적으로만 본다면 5년전 일본이 우려한 현실보다 좋지 않아 보인다.

당장 일본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한국은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나카소네 히로후미 전 외무장관의 발언은 일본 우익세력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표현이다. 적어도 강제징용문제만큼은 한일청구권협상으로 마무리됐다는 입장인 우리 정부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특히 그간 양국관계를 담당해온 외교 전문가들의 허탈감이 클 것이다.

그럼에도 강제징용을 둘러싼 이번 판결과 화해치유재단 해산 통보는 여러 가지 함의를 담고 있다. 인권을 대하는 세상의 잣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피해자를 대신해 협상에 임하는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의 의견을 소홀히 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외교가는 물론 한일관계 전문가를 자처하는 인사들 역시 간과했던 사실이기도 하다. 협상 당사자들이 “이 정도 얻어 냈으면 만족할 만하다”라고 아무리 자부한 들 피해 당사자가 납득하지 않으면 ‘해결 완료’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는 엄중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 정부가 외교적 위기에 봉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5년전 일본이 우려한 시나리오만큼 어둡지는 않아 보인다. 아베 신조 총리도 고노 다로 외무장관도 강제 징용과 위안부 합의의 원론적인 입장만 언급했을 뿐 합의 파기를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 이는 자칫 한국에 대한 비난 목소리를 높였다가는 급진전중인 남북관계 속에서 일본이 자칫 소외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매년 700만명이 넘는 한국인 관광객이 일본을 방문하고 있는 현실을 일본이 무시할 수도 없다. 현재 일본의 호황 이면에 관광산업이 자리하고 있음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외교적 판을 뒤엎기 보다는 피해 당사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 의미가 있음을 일본 정부에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보상이 불충분하다는 결정을 내린 유엔 강제실종위원회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손잡고 일본을 압박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징용공 문제(강제 징용자)의 본질은 인권 문제다. 피해자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국가 간 합의는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 이달 초 일본내 양심적 변호사들이 낸 성명서다. 엉킨 한일 관계 해법을 풀 선명하고도 울림이 큰 메시지다.

한창만 지역사회부장 cmha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