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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놀이터에까지 시커먼 로켓포 탄흔… 돌파구 못찾는 이-팔 분쟁

입력
2018.11.27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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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지구에서 2km 떨어진 스데롯시 경찰서 외곽에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포 탄피들이 전시돼 있다.
가자 지구에서 2km 떨어진 스데롯시 경찰서 외곽에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포 탄피들이 전시돼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오후 이스라엘 남쪽 스데롯시(市)는 평일인데도 고요함 속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가자지구 북측에서 2㎞가량 떨어져 있는 인구 2만5,000명 소도시이지만,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급진주의 정파 하마스의 주요 로켓 공격 대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재단의 ‘KPF 디플로마’(중동전문가) 교육과정 일환으로 찾은 이 도시 중심부 경찰서 외벽에는 지금까지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포 탄피 수백개가 4단 진열장에 차곡차곡 전시된 채, 이곳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충돌의 최전방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인 11일 이스라엘군의 가자 지구 비밀 작전이 발각되면서,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13일까지 서로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임시 휴전으로 포성은 멎었지만 평화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을 뿐이었다. 로켓포 공격에 따른 시커먼 탄흔이 선명한 경찰서 인근 놀이터의 놀이기구 옆에서 2세와 6세인 딸과 함께 그네를 타고 있던 니심(28)은 “아이들이 폭격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비행기가 뜨고 오토바이만 지나가도 깜짝깜짝 놀란다”며 “우리가 원하는 건 평화”라고 말했다.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로켓… 정착촌의 불안한 평화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로켓에 대비해 높은 담을 쌓아 유지하고 있는 ‘불안한 평화’는 유대인 정착촌에서 더욱 실감이 났다. 가자지구 북쪽 장벽과 겨우 400m 정도 떨어진 인구 800여명 정착촌 ‘네티브 하아사라’에 들어서려 하자 까다로운 차량 검문검색이 이어졌다. 정착촌 관계자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자지구와의 통행이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최근 충돌로 주민들이 희생되면서 통행을 막았고 검문검색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정착촌 주민들에게 불안은 일상이었다. 16년째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으며, 텔아비브로 출퇴근하고 있다는 오베르 마르코비치(47)는 “수시로 공격을 받는데 아이들이 걱정돼 때때로 피난을 가기도 한다”면서도 “아이들 학교도 여기에 있고, 아내의 부모도 모시고 있어 이 마을을 떠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분쟁종식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간절했다. 오베르는 “오슬로 협정(1993년)이 체결된 이후에는 평화가 올 줄 알았지만 이후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대 팔레스타인 정책은 분쟁만 키웠다”면서 “20년 전처럼 이스라엘 사람들과 가자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드물게 이웃해 살고 있는 서안지구 역사도시 헤브론시를 찾았을 때, 이 도시의 긴장된 분위기는 현재 진행형인 ‘이ㆍ팔 분쟁’을 생생하게 느끼게 했다. 헤브론시의 97%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관할하지만, 이스라엘 정착민 8가구가 사는 구역은 이스라엘군이 치안을 맡고 있다. 전체 도시 면적의 3%에 불과한 이 8가구 이스라엘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내 곳곳에는 수많은 이스라엘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슬람 양식 건물 곳곳에도 이스라엘기와 시오니즘(유대 민족주의)의 상징인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는 등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웃해 살면서도 ‘이 지역은 유대인 땅이고, 팔레스타인에게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한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고집이 그대로 드러났다. 유대인 지역으로 통하는 검문소 인근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압둘 하빗(50)은 “지금은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라 다행이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길이 막히고 학교도 문을 닫는다”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평화를 원한다. 그들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해 갈등이 상존하고 있는 헤브론시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해 갈등이 상존하고 있는 헤브론시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네타냐후 건재와 팔레스타인 내분…협상 재개 가능할까

이ㆍ팔 갈등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장기 집권으로 더욱 고조되고 있다. 2009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오기 전부터 ‘이스라엘 판’ 자국 우선주의 외교ㆍ안보정책을 펴고 있다. 국제사회가 불법으로 간주하는 정착촌 건설을 밀어붙이고, 이스라엘 국민의 20%에 달하는 아랍계 주민의 의사를 무시한 채 이스라엘을 ‘유대인만의 국가’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가 밀어붙이는 유대민족국가법은 골수 강경 우파정책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ㆍ팔 간 상호 인정을 기본정신으로 하는 오슬로 협정 이래로 캠프 데이비드 협상(1999년), 애나폴리스 평화회의(2007년) 등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가던 양측의 대화는 그가 집권한 이래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대 팔레스타인 강경파인 그가 물러나야 협상 재개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지만 연이은 부패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하마스 공격에 대한 대응 수위와 휴전안 수용 여부를 놓고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국방장관이 지난 14일 전격 사퇴하면서 한때 정치적 위기에 몰리는 듯했지만 이스라엘 보통사람들은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적극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에 반대하는 사람조차도 그가 물러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다.

20일 텔아비브 비치에서 만난 샤케드 슈나흐(19)는 “그는 지금까지 항상 성공했고 그가 뭘해도 사람들이 지지한다”면서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지만 대안이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ㆍ팔 협상 재개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많은 이스라엘 총리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이 만나 협정에 서명을 했지만 번번이 깨졌다”면서 “협상이 잘 되려면 양측 지도자들의 ‘케미스트리(궁합)’가 맞아야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오슬로 협정을 이끌어낸 이츠하크 라빈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처럼, 내부의 반대 목소리를 돌파할 수 있는 지도자들끼리 만나야 협상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ㆍ팔 분쟁에 더해 최근에는 시리아 내전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시리아를 거점 삼아 역내 최대 위협국가인 이란이 이스라엘 국경까지 세력 확장을 도모하는 등 안보위기가 고조되면서 ‘미스터 안보(Mr.Security)’로 불리는 네타냐후 총리의 입지는 오히려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 21일 예루살렘의 해리 윌프 독립공원에서 만난 일란 라루쉬(48ㆍ상업)는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라 일관되게 그를 지지해왔다”면서 “그가 부패했다고 말하지만 대안이 없다. 그도 평화를 원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루살렘 교외 운하브에 살며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이라는 타마 마고리(22)도 “그의 행동은 별로지만 다른 옵션이 없어 계속 집권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ㆍ팔 협상 재개 가능성에 대해 그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옥토인 가자지구를 주는 등 해법을 제시해 왔지만 그들은 테러로 답한다”며 “이곳은 어쨌든 이스라엘 국가인데 그들은 그걸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 같다”며 회의적으로 전망했다.

스스로를 중도 좌파라고 소개한 나오미 카파라(32ㆍ심리치료사)는 “1990년대 거의 분쟁이 종식될 뻔 했는데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한다”며 “상호 존중해야 하는데 요즘은 그런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다. 화해에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 달에 2번씩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만나 랭귀지 익스체인지(히브리어-아랍어) 수업을 한다면서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국가 해법’이냐 대안이냐

이ㆍ팔 분쟁을 해결할 최선의 현실적 방법은 서로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는 ‘2국가 해법’이 최선이라는 게 국제사회의 합의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집권세력은 사실상 이스라엘 1국가 상태인 ‘현상 유지’를 고집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역시 이스라엘 정부를 협상 상대자로 인정하는 PA와 협상을 거부하는 하마스 간 노선갈등 및 권력 투쟁으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다른 해법도 모색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요르단이 연방국가를 이루는 ‘이스라엘-요르단-팔레스타인’의 3국가 해법이 검토할만한 대안으로 떠오른다. 실제로 재러드 쿠슈너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이 지난 9월 마무드 아바스 PA수반을 만나 이 같은 제안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요르단 정부는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둔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를 지지한다’며 이 해법을 거부했지만 불씨는 살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모세 마오즈 히브리대 명예교수는 한국일보와 만나 “현재 상태로 가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고 점령만 하게 돼,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처럼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2국가 해법이 최선이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요르단이 독립성을 지키는 연방제 방식도 추천할 만하다”고 말했다.

물론 난관이 있더라도 2국가 해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2007년 애나폴리스 평화회의 때 팔레스타인과 협상헀던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는 한국일보와 만나 “3국가 해법은 각자 국내 정치를 의식한 해법일 뿐 실제로 가능하지 않다”며 “2국가 해법 외 다른 대안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그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동평화협상안(딜 오브 센추리)와 관련해 “평화제안은 어느 쪽이라도 불편함을 느껴서는 성립이 안 된다”면서 “정교한 플랜이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텔아비브ㆍ예루살렘ㆍ스데롯ㆍ헤브론=글ㆍ사진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가자지구와 가장 가까운 유대인 정착촌인 네티브 하아사라 마을의 외벽에 평화를 기원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가자지구와 가장 가까운 유대인 정착촌인 네티브 하아사라 마을의 외벽에 평화를 기원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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