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주감귤
법규까지 동원해 당도 관리
올해는 폭염에 더 달달해져
※ 편집자 주: 씹고 뜯고 마시고 즐기는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화제가 되는 식품, 새롭게 뜨는 푸드 산업, 건강한 먹거리를 중심으로 올바른 정보를 다루는 새 연재물을 마련했습니다. 제대로 알고 먹는 식문화를 위한 한국일보의 ‘먹거리 사전’입니다.
두 달 전 북한이 보낸 송이버섯(2톤) 선물에 대한 우리의 답례품은 제주감귤(200톤)이었다. 한반도 남단의 온난한 기후 속에서 빚어진 높은 당도가 제주감귤의 최대 매력이지만, 올해는 유난한 폭염과 가뭄까지 견딘 덕에 단맛이 더욱 향상되고 신맛은 적어졌다. 이렇게 당분을 한껏 머금은 햇감귤 중에서도 당도 12브릭스(brix) 이상의 최상품이 엄선돼 지난 11일 북녘으로 건너갔다. 겨울을 설레게 하는 국민 과일에서 남북 화해의 전령사로 격상된 제주감귤, 그 달콤함의 비결은 뭘까.
우선 제주도가 앞장서서 감귤의 품질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제주는 우리나라 감귤 재배면적의 99.5%를 차지하는 주산지다. 국내산 감귤은 대부분 중국 원저우((溫州ㆍ온주)에서 기원해 일본에서 품종 개량을 거친 ‘온주밀감(감귤)’이긴 하나 ‘제주감귤’이란 상표명은 오로지 제주에서 출하된 감귤에만 허락된다. 도는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감귤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감귤 수급과 품질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특히 감귤 출하를 허용하는 최소 당도 기준을 품종별로 시행규칙에 명시하고 있다.
시행규칙에 따르면 10월 하순경 가장 일찍 수확하는 극조생 온주밀감은 당도 8브릭스 이상, 조생 및 일반 온주밀감은 당도 9브릭스를 넘겨야 출하할 수 있다. 브릭스는 과육 100g당 가용성 고형물(당, 단백질 등) 함유량을 표시하는 당도 지수다. 수확시기가 늦은 품종인 만감류 중 유일하게 당도 규제를 받고 있는 한라봉은 12브릭스 이상만 출하가 가능하다. 도지사 지정 품질우수감귤이 되려면 이보다 더 높은 당도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북한에 선물한 감귤은 노지에서 재배된 일반 온주밀감인데, 일반 온주밀감이 품질우수감귤 지정을 받으려면 노지 재배 땐 11브릭스, 하우스 재배 땐 12브릭스 이상의 당도를 내야 한다. 북한엔 당도가 12브릭스 넘는 감귤만 보냈으니 ‘상품(上品) 중의 상품’을 선물한 셈이다. 도내 거점지역 산지유통센터엔 모두 당도측정기가 구비돼 있어 즉석에서 고당도 상품을 선별할 수 있다고 한다.
당도 향상은 수입품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감귤시장에서 우위를 지키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도는 지난해 10월 시행규칙을 개정, 감귤 출하의 세 기준(당도 크기 무게) 중 크기 및 무게 규제를 완화했다. 종전엔 당도뿐 아니라 지름 49㎜ 이상~54㎜ 미만, 무게 53g 이상~136g 미만인 상품만 출하를 허용해 지나치게 크거나 작은 감귤을 배제했지만, 개정 규칙에선 노지 재배의 경우 품종과 무관하게 당도 10브릭스 이상이면 크기와 무게 제한 없이 출하할 수 있도록 했다.
제주도가 법규를 동원해 감귤 품질을 일률 규제할 수 있는 것은 제주가 사실상 국내 감귤의 독점적 재배지역인 까닭이다. 사과, 복숭아, 포도 등 대중적 과일 대부분은 주산지가 전국적으로 고루 퍼져있지만, 감귤은 따뜻한 기후에서만 기를 수 있어 재배면적 대부분이 제주에 속해 있다. 고성만 제주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는 “배는 재배면적이 점점 줄고 있고 사과는 기후온난화로 주산지가 북상하고 있지만 감귤은 재배지가 집중돼 있어 정책 지원 효과가 매우 큰 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여름 폭염으로 육지 과일 대부분이 재해를 입었지만 제주감귤은 이상기후를 ‘자양분’ 삼아 더욱 달아졌다. 문영일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소 연구원은 “가뭄으로 수분 흡수량이 줄어 당도는 올라간 반면, 무더위로 과실 성장의 에너지원인 구연산 방출이 늘어나면서 산도는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다른 나무에 비해 열매를 많이 맺는 귤나무 입장에선 열매(감귤)들이 골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게끔 일조량이 풍부했던 올해가 품질 향상에 유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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