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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슈] ‘김장계의 혁명’이라 불린 그것은? 김장 장비 진화사

입력
2018.11.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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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낯선 ‘스테인리스 김칫독’부터 가장 최근 김장매트까지 

 혜성처럼 등장, 김장계 평정한 핫아이템들 

※ [모슈]는 ‘모아보는 이슈’의 준말로, 한국일보가 화제가 된 뉴스의 발자취를 짚어보는 기사입니다.

김치를 담그는 분주한 손길. 1980년대 공장 김치가 등장하기 전, 배추 절이기부터 숙성까지 김장의 모든 과정은 가정 주부들의 일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치를 담그는 분주한 손길. 1980년대 공장 김치가 등장하기 전, 배추 절이기부터 숙성까지 김장의 모든 과정은 가정 주부들의 일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산처럼 쌓인 배추로 겨울의 시작을 실감하던 때가 있습니다. 집집마다 김장하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 다섯 식구 한 가족에 배추 100포기는 기본이었으니까요. 지난 수십 년 간 김장의 규모는 꾸준히 축소되고 과정은 간소화됐지만, 그럼에도 김치는 여전히 우리의 냉장고 한 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장 간소화의 한 축에는 ‘장비의 진화’가 있습니다. 절이고, 섞고, 무치고, 담고, 숙성시키는 복잡한 절차를 혁신적으로 줄여준 장비와 재료들 덕에 김장은 오늘날까지 각 가정에서 수명을 이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절인 배추부터 김장 매트까지, 혜성처럼 등장해 시장을 평정했던 김장의 필수 ‘핫’ 아이템들을 살펴 봅니다.

 ◇ 시간과 노력이 대폭 줄다, 1980년대 절인 배추의 탄생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모습. 80년대 초 절인 배추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주부들의 일손이 크게 줄었다. 사진: 올가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모습. 80년대 초 절인 배추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주부들의 일손이 크게 줄었다. 사진: 올가

“소금에 절일 때는 배추 1㎏에 소금 35~40g 정도에서 12시간 절이는 것이 알맞다. 절이는 도중 3~4시간마다 아래위를 바꿔놓는데 쪼개진 면을 위로 보게 둬야 잘 절여진다. 그러나 12시간 이상을 절이면 단물이 다 씻겨나가 아무런 맛도 없게 된다.”

1960~70년대 김장철에 신문기사의 단골소재는 김장 맛있게 담그는 비결이었습니다. 배추 고르기부터 우거지 처리법까지 세세히 일러주던 기사들이 자취를 감춘 건 80년대 초, 절인 배추가 시장에 등장하면서입니다. 79년부터 배추 절이는 법을 연구해온 농어촌개발공사 식품연구소는 82년 4월 실용화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립니다. 배추 부피가 훌쩍 줄어 운송비가 절감되는 것뿐 아니라, 김장 담그는 일손도 대폭 줄어드는 효과를 거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인스턴트 김치소도 개발됐습니다. 국내 최초로 공장김치를 만든 진미식품이 선보인 것으로 고춧가루, 젓갈, 마늘, 생강, 파, 버섯 등을 건조·분쇄한 가루형 제품이었는데요. 물만 부으면 바로 김치소로 변하는 획기적인 상품이었으나 손맛을 중시하는 김장의 특성상 스테디셀러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 박완서 작가도 눈독 들인, 땅에 안 묻어 ‘인기 짱’ 스테인리스 김칫독 

1981년 10월 8일 매일경제에 실린 스테인리스 김치독 소개 기사. 한일 스텐레스가 개발했다. 사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1년 10월 8일 매일경제에 실린 스테인리스 김치독 소개 기사. 한일 스텐레스가 개발했다. 사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우리 아파트가 유난히 더운 탓인지 며칠 안가 김치에 골마지가 끼고 신냄새가 진동하는 것이었다 (….) 아파트용으로 개발됐다는 스테인레스 김장독이 괜찮다던데 어떨지 모르겠다” 82년 11월 한 신문에는 소설가 박완서씨의 아쉬움 가득한 글이 실렸습니다. 지난해 김장을 망치고 속이 상한 작가는 올해는 김장을 조금만 하겠다며 스테인리스 김장독에 눈독을 들입니다.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전통적인 김장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많은 주부들이 장독대를 이고지고 아파트로 왔지만 ‘미관상’ 복도에 독을 내놓는 것을 금지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이때 아파트 김장족들을 겨냥해 나온 상품이 ‘스테인리스 김장독’입니다.

“특수 단열재를 사용, 보온과 냉동이 동시에 되기 때문에 외부 온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특징”인 이 제품은 ‘독을 땅에 묻지 않아도 된다’는 엄청난 이점 때문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초기에 단순히 아이스박스 수준이었던 제품은 점차 개량돼 바퀴가 달리고 발효가스 분출장치, 내부 온도감지기 등이 추가됐으나, 김치 냉장고의 등장과 함께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집니다.

 ◇ 1990년대 김치 냉장고를 향한 의심, “만족” VS “글쎄요” 

만도기계가 출시한 위니아 딤채의 2002년 사진. 당시 배우 송강호, 이미연, 신은경이 모델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만도기계가 출시한 위니아 딤채의 2002년 사진. 당시 배우 송강호, 이미연, 신은경이 모델이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치계의 혁명, 김치냉장고가 시장에 전면 등장한 것은 95년 만도기계가 출시한 위니아 딤채입니다. 앞서 금성사(현 LG), 대우전자, 삼성전자 등이 김치 냉장고를 내놓았으나 번번이 시장 안착에 실패했습니다.

지금은 필수 가전으로 자리 잡았지만, 초기의 김치 냉장고에 대한 시선엔 의심이 가득했습니다. 흙을 파고 땅 속 깊이 묻은 뒤 시간을 들여 숙성시키는 번거로운 과정을 과연 기계가 그렇게 간단히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심이었는데요. 92년 말 한 신문에 실린 김치 냉장고 리뷰에서 주부들은 저장 기능에 대해선 “만족”하지만 숙성 기능에 대해선 “글쎄요”란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뜨뜻미지근한 반응도 잠시. 김치 냉장고는 아파트 수의 증가와 함께 없어서 못 파는 인기 상품으로 떠올랐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95년 2만대 팔렸던 김치 냉장고는 98년 25만대나 팔리며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김치 냉장고 시장 규모는 연간 130만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2010년대 김장 매트 

21일 부산 동래구 부산경찰청 어린이집에서 원생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김장 매트 위에서 김장을 담그고 있다. 김장 매트가 등장한 건 2014년 경으로 추정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1일 부산 동래구 부산경찰청 어린이집에서 원생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김장 매트 위에서 김장을 담그고 있다. 김장 매트가 등장한 건 2014년 경으로 추정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느 순간 등장해 김장계를 휩쓴 김장매트. 접으면 노트북 사이즈지만, 펼치면 거짓말 조금 보태 작은 마당만해지는 다용도 매트입니다.

실내에서 김장을 할 때는 원래 붉은색 고무 대야(속칭 ‘다라이’)나 크고 두꺼운 김장용 비닐을 사용했는데요, 비닐의 경우 테두리가 없어 옆으로 국물이 흘러나오기 일쑤고 대야는 보관이 쉽지 않아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김장매트는 특대 사이즈의 지름이 180㎝로 김치 약 100포기를 담글 수 있다고 합니다. 가장자리에는 15㎝ 높이의 얕은 벽이 둘러져 있어 바닥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걸 방지합니다.

김장매트는 소리 소문 없이 우리 곁에 안착했습니다. 포털사이트 검색 결과를 보면 2014년 김장철부터 “김장매트 써보신 분 계세요?”라는 질문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초기 사용자들에 따르면 김장뿐만 아니라 아이들 물감놀이나 모래놀이에도 사용 가능한 다용도 매트로 이름을 알린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해인 2015년부터 홈쇼핑과 소셜커머스마켓에서 김장매트가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기발하다는 평이 줄을 이으면서 인기 있는 브랜드 제품은 주문 후 2주가 지나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습니다.

장비의 변천사와 함께 한 김장의 역사. 김장을 둘러싼 풍경이 변해온 것처럼 장비의 진화사 역시 변화무쌍합니다. 과연 김장매트의 뒤를 이을 핫 아이템은 뭐가 될까요?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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