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웹하드 불법영상 필터링]
불법유통 막는 필터링 의무화됐지만, 웹하드社는 저작권 영상만 보호
위디스크 내부고발자 “2016년 두달간 연예인 피해영상 재유포되게 해”
정부 DNA 필터링 도입 소극적… 몰카영상 못 막는 게 아니라 안 막는 것
디지털 성범죄 영상, 이른바 ‘몰카’의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가장 깊은 고통은 크게 세 가지다. 지워도 지워도 계속 올리고 퍼 나르는 유포자들의 집요함. 사라진 듯 보여도 언제 다시 유포될지 모른다는 공포. 이 말도 안 되는 범죄의 대잔치를 번듯한 인터넷 기업과 당국이 방치하고 있다는 당혹감.
이 참담한 ‘몰카 왕국’이 여기까지 온 것은 단지 기술적 한계 때문일까. 업계 관계자들의 답은 노(No)다. 최근 서울 모처에서 본보와 만난 공익제보자 A씨(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신변 보호 및 책임감면 등의 보호조치를 위해 익명처리)는 “불법 촬영물이 아예 웹하드 서버에 업로드조차 되지 않도록 차단할 필터링 기술은 이미 개발돼 있었으나, 이 기술은 수년간 ‘저작권 보호’에만 사용돼 왔다”라며 “그나마 몰카 차단에 적용된 낮은 기술(금칙어 설정 등)도 업체가 얼마든 마음대로 건드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구속된 웹하드 업계 1위 위디스크 소유주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각종 범죄 혐의를 세상에 알린 당사자다.
2012년부터 ‘웹하드 등록제’가 도입돼 각종 문제가 있는 영상의 업로드와 다운로드를 막는 기술, 즉 필터링(Filtering)이 의무화됐지만 그 관리 및 감시 실태가 워낙 허술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특정 영상의 유출 및 방치가 온전히 웹하드 업체의 의지에 내맡겨져 있었다. 그는 근거로 “회사가 과거 유명인 피해 영상을 2016년 의도적으로 약 두 달간 풀어버렸다”며 “(필터링에서)설정된 금칙어 몇 개를 슬쩍 제외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간 수사기관이나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등 감독기관의 제재는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라고 답했다.
지난달 9일 구속된 양 전 회장의 직원 폭행 영상과 엽기 행각은 큰 공분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양진호 사태’의 본질은 개인의 기행에 있지 않다. 웹하드 업체가 이렇게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을 스스로 유포하고 방치하는 황당한 실태가 왜 이렇게 오래 방치돼 온 것인지, 그 근본 의문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애초 불법 촬영물의 업로드를 막을 기술은 충분했는데도, 그간 아무도 이 기술 도입을 마음먹지 않았다는 주장이 A씨만의 견해는 아니다. 업계 안팎의 관계자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엄격한 필터링이 미뤄져 온 이유는 이렇다. 업체 입장에서는 저작권자인 대기업, 영화사, 방송사처럼 무섭게 감시하는 주체가 없는데 굳이 조심할 필요도, 감시를 위한 추가 서버 이용 비용을 감당할 필요가 없어서. 정부 입장에서는 별도 비용이 들어가는데 여기에 책정된 예산이 없어서.
이렇게 피해자 말고는 아무도 철저한 감시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사이, 웹하드를 통해 유포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 피해자들은 인터넷에서 해당 영상을 스스로 지우기 위해 수백에서 수 천만 원의 경제적 피해를 감당하고 불안과 공포에 떨며 살아야 했으며, 심지어 누군가는 생을 등지기도 했다.
◇ 쉬워도 너무 쉬웠던 불법유통
A씨에 따르면 2016년 양 전 회장 소유의 웹하드에 과거 유명인들의 불법촬영 피해 영상이 유포됐다. 업계 용어를 빌리자면 두 업체가 영상을 ‘풀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의미다. 당시 위디스크에 근무했던 공익제보자 A씨는 “영상 자체는 이미 서버에 저장돼 있던 상태였는데, 회사가 관련 영상의 금칙어 설정을 풀어버려 누구나 쉽게 해당 영상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기존에는 관련 영상이 연상되는 특정 단어 또는 문자열을 금칙어로 설정해 검색 자체를 막아뒀다가 일순간에 이 단어를 금칙어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당시 회사 내부에서도 필터링 시스템을 무력화시켜 불법 동영상을 재유통 시킨 데 대해 문제 의식을 느낀 구성원들이 적지 않았다. “꼭 유명인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소위 말하는 ‘몰카 영상’이 디지털 성범죄 영상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들과 성범죄 영상 유포를 막기 위해 싸웠지만 실패했습니다.” 결국 유명인의 피해 영상은 약 두 달 동안 아무런 제재 없이 웹하드 사이트를 통해 버젓이 유통됐다는 것이다. “금칙어는 전적으로 회사가 설정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풀어버릴 수 있어 불법 콘텐츠를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더 높은 수준의 차단(필터링) 방식을 적용해야 하는데, 웹하드 업체에서는 이를 사용하지 않거나 우회하고 있습니다.” 본보는 해당 웹하드 업체에 이에 대한 입장 확인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할 말이 없다”는 응답만 돌아왔다.
위디스크 등 웹하드 업체들이 서버에 올라오는 모든 동영상의 필터링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상파 TV 방송사가 제작해 저작권이 명시되어 있는 ‘무한도전’, ‘1박 2일’ 등 유명 예능프로그램 영상물 유통은 철저하게 관리했다. 웹하드 이용자들이 해당 영상을 업로드나 다운로드 못 하도록 필터링 시스템에 관련 금칙어를 빼놓지 않고 설정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저작권자가 없고 수익을 더 많이 낼 수 있다는 이유로 디지털 성범죄 영상에 대해선 필터링을 허술하게 관리, 이른바 몰카 영상물 유통 실태는 계속 심화해온 것이다. 취재에 응한 위디스크 전직 직원은 “사내에서 임원회의 때마다 저작물에 대한 필터링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질책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 웹하드 업체, 제멋대로 ‘기술 조치’ 적용
위디스크 등 웹하드 업체들은 마음만 먹으면 어떠한 콘텐츠라도 걸러내 인터넷 유통을 막아줄 필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에도 디지털 성범죄 영상들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불법 촬영물과 저작물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랐던 탓이다. 이유를 알기 위해선 우선 웹하드에서 이뤄지는 콘텐츠 유통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동영상 등 콘텐츠를 중개 거래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수익으로 삼는 웹하드(Webhard) 업체들은 기본적으로 저작권자(개인 또는 회사)와 콘텐츠 유통에 대한 계약을 맺는다. 웹하드 회원(이용자)이 돈을 내고 영화, 드라마 등의 저작물을 내려받으면,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저작권자와 웹하드 업체가 나눠 가지는 조건이다.
하지만 이 같은 유통구조는 불법 업로더가 등장하면 유지되기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어 저작권자와 관계없는 제3자라 할지라도 웹하드에 회원가입만 하면 TV 예능프로그램, 영화 등 저작물을 불법 복제해 유통할 수 있다. 이들은 보통 해외 인터넷프로토콜(IP)을 사용하기 때문에 적발해도 처벌이 쉽지 않다.
정부는 불법유통을 봉쇄하고자 2012년부터 ‘정식 사업자로 등록하려는 웹하드 업체는 의무적으로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웹하드 등록제)고 못 박았다. 사후 모니터링을 통해 불법 콘텐츠를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술적 조치(필터링 기술)를 활용해 불법 콘텐츠를 걸러내자는 취지였다.
◇ 저작물과 음란물, 천차만별 단속
웹하드 업체가 불법콘텐츠 유통과 관련해 지켜야 하는 법적 의무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22조의 3, '특수유형부가통신사업자의 기술적 조치' 하나뿐이다. 등록 웹하드 업체는 이 조항에 따라 1년에 한 번 불법 콘텐츠를 걸러내는 기술적 조치가 무엇인지 서면으로 정부에 보고만 하면 된다. ‘기술적 조치’가 무엇인지 특정되어 있지 않아 웹하드 업체들은 저작권 없는 음란물 유통에 대비해선 ‘금칙어 필터링’, ‘해시값 필터링’ 등 저렴하고 낮은 수준의 조치만 적용하고, 적발될 경우 고액을 지급해야 하는 저작물에 대해선 가장 강력한 필터링 기술인 ‘DNA 필터링’까지 사용해온 것이다.
불평등한 조항 적용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소극적으로 대응해왔을 뿐이다. 일찌감치 음란물에 대해서도 저작권동영상과 동일한 필터링 사용을 의무화했다면 몰카 영상 대거 유포 사태는 쉽게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DNA 필터링’기술을 활용하면 95%이상 해당 동영상을 걸러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국내 필터링 양대 업체인 뮤레카에서 대표를 역임하고 아컴 스튜디오의 전신인 캔들미디어에서 이사를 지낸 김주엽씨는 "저작물의 경우 저작권자가 필터링 비용을 내지만 저작권자가 없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은 비용을 지불해주는 데가 없다"며 "민간 기업이 굳이 손해를 보면서 이를 필터링할 유인책이 없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당국조차 불법 저작물관리를 강력히 단속하지만, 필터링 적용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음란 동영상 유통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부실한 제재와 처벌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24시간 컴퓨터 모니터링을 통해 온라인 사이트상의 불법 저작물을 잡아낸다. 처벌도 강력하다. 저작권법 위반이 적발되면 징역 5년 혹은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 파일노리를 소유한 양진호 전 회장도 2011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에 벌금 3,000만원 선고를 받고 저작권사에는 100억원의 합의금을 물어줘야 했을 정도다.
반면 음란물의 경우엔 사정이 다르다. 성폭력 영상이 웹하드 사이트에 올라와도 웹하드 사업자에 대한 처벌은 보통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방조죄를 적용할 수 있는데 징역 1년에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저작권법 위반보다 약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웹하드 업체들이 음란물 유포죄로 기소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피해자가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발견하고 삭제 및 차단 요청을 해도 바로 반영되는 게 아니다. 음란물에 대한 심의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평균 10일 이상이 소요되고 그동안 피해자는 속수무책으로 성범죄 영상이 유통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심의기간이 뒤늦게 사흘로 단축된 것은 올해 4월부터다. 반면 저작물의 경우 ‘선 차단 후 심의’가 이뤄진다. 이래저래 저작물과 음란물 불법유통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균등하지 않았던 셈이다.
◇ "DNA필터링 적용" 요구 외면해온 정부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유통을 막기 위해선 웹하드 업체들이 주로 사용하는 ‘해시값 필터링’ 기술로 부족하다는 사실은 정부도 오래 인지하고 있었다. 2015년 12월 방통위에서 낸 '특수유형부가통신사업자의 불법정보 유통방지를 위한 개선방안 연구'에서는 해시값 필터링의 한계를 거론하며 '음란물 필터링 기술에 있어서 특징기반 필터링(DNA필터링)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도 꾸준히 웹하드 사이트에서 유통되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 근절을 위해서는 저작물처럼 음란물 단속에 DNA필터링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에 디지털 성범죄 영상이 퍼진 피해자들은 디지털 장의사 업체에 한 달 수백만 원을 내고 삭제, 차단 작업을 의뢰해 왔다. 디지털 성범죄 영상 피해 신고를 받고 삭제요청 작업을 진행했던 시민단체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의 하예나 대표는 지난해 5월 디지털 장의사 업체를 이용했던 피해자에게서 효과적인 DNA 필터링의 존재를 처음으로 듣게 됐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디지털 장의사들도 결국 뮤레카 등의 DNA필터링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수수료를 내고 있었다”며 “피해자 입장에서는 뮤레카에 직접 필터링을 의뢰하는 게 디지털 장의사를 통하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에 영구적인 차단을 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DSO는 DNA필터링 기술을 평가한 정부 보고서 등을 근거로 여성가족부에도 디지털 성범죄 영상 차단에 DNA필터링 기술을 도입할 것을 제안했으나 ‘인공지능(AI) 필터링 기술을 곧 개발 할 것’이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피해자, 시민단체, 그리고 해당부처의 의견이 일치했지만 정부 당국은 유독 음란물 차단에 최신 기술 적용을 의무화하는 조치를 서두르지 않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웹하드 업체 직원은 “수년 전부터 방통위에 ‘디지털 성범죄 영상에 DNA필터링을 도입하자’고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주엽씨 역시 “3년 전 국회에서 관련 세미나를 열고, 방통위와 여성가족부 관계자들과 만났지만 당시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며 “정부에 디지털 성범죄 영상 필터링 위탁사업을 달라는 제안도 했지만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진척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솜방망이 처벌로는 몰카 확산 못 막아
방심위는 지금까지 DNA필터링 기술이 음란물과 몰카 영상 등 필터링에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예산 부족을 거론했다. 저작물의 경우 필터링 비용을 권리 소유회사가 지불하지만, 개인이 피해자인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은 그렇지 않아서 정부가 의무화를 규정하면 적잖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웹하드 관리 감독 부처인 방통위는 내년 1월부터 웹하드 업체가 음란물 필터링에도 DNA필터링 기술을 적용토록 한다는 계획이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대응이란 지적이다. 그리고 단지 과태료 수위를 상향 조정하는 정도의 처벌 규정만 둘 것으로 보여 실제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방통위 관계자는 "DNA필터링을 1월부터 강제할 예정"이라면서도 "전기통신사업법상 기술조치 미이행에 대한 과태료 상향은 검토 중이지만 현 법체계에서는 처벌 기준이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고 말했다. A씨는 “기업인 웹하드 업체들에 단지 도덕성을 강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법적으로 강제해 DNA필터링 적용을 하도록 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jxp939@hankookilbo.com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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