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 정부 부처에 “자료 보내라” 포털 휴면계정 해킹 가짜메일
“한반도 비핵화 첩보전” 관측… 국제교류재단 소장 명의 도용 메일도
올 초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개인 이메일 계정이 도용돼 정부 부처에 “대북 정책과 관련된 내부 자료를 보내라”고 요구하는 가짜 메일이 발송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6월 북미 정상회담 직전에는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가짜 메일이 국제교류재단 소장 명의로 유포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대북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한미 간 이견을 감추려 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가안보실 사칭 메일(28일자 4면 보도)과 유사한 구조다.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싸고 관련국 간에 협상 정보를 빼내려는 치열한 첩보전 또는 정부 외교 정책을 흠집내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정부 관계자는 28일 “올해 초 윤 실장으로부터 대북 정책과 관련된 내부 자료를 보내 달라는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며 “민감한 내용을 정부 공식 메일이 아닌 개인 메일로 보내 달라고 해 청와대에 확인을 했더니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부처에서 수상한 메일이 전달됐다고 연락이 와서 윤 실장이 바로 신고하고 조치를 취했다”며 “윤 실장이 정부에 들어와 쓴 적 없는 이메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청와대의 말을 종합하면 윤 실장이 사용하지 않아 사실상 동면 상태로 있던 포털 계정이 해킹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상황의 엄중함을 고려해 진상 파악에 나섰지만, 계정에 접속한 인터넷 IP 주소가 해외 지역이어서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후 주요 참모들의 개인 이메일 계정을 파악해 해외에서의 접근을 차단하는 등 보안 강화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각 부처 파견자들이 일하는 국정상황실은 ‘청와대 내의 작은 청와대’로 불리는 곳이다. 각종 현안의 흐름을 파악하고 사건ㆍ사고에 대한 대응 방침을 정하면서, 남북관계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윤 실장은 지난 3월 대북특별사절단에 포함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윤 실장 메일이 도용돼 하마터면 정부의 민감한 대북 정책이 통째로 넘어갈 뻔한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있던 6월 10일에는 북미 협상 상황을 공유한다는 내용의 가짜 메일이 공공외교 전문기관 한국국제교류재단(KF) A 소장 이름으로 기자 등에게 유포되기도 했다. ‘본부(외교부)에서 보내온 문건을 송부하니 참조하세요’라는 내용이 적힌 메일은 당시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을 취재 중인 한국 기자 등에게 뿌려졌고, ‘보안 주의’라는 당부도 달렸다.
본부로부터 받았다는 메일은 주미 한국대사관 공보 담당 직원 B씨가 작성한 것으로 돼 있고, 메일에는 ‘비공개 문건이니 취급 주의해달라’는 말과 함께 ‘6ㆍ12 미북 정상회담 예상의제(외교부)’라는 제목의 PDF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파일은 ‘외교부가 북한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등 정부가 그간 밝혀온 입장과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북한이 자발적 비핵화를 하도록 둬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메일은 A 소장은 물론, B씨도 보낸 적 없는 가짜 메일이었다. B씨와 동명이인인 외교부 당국자 또한 관련 메일과는 무관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메일은 ‘정부가 한반도 정세를 사실과 다르게 외부에 설명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대북 협상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우려와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청와대가 인지하고도 덮으려고 한다’는 취지의 청와실 안보실 사칭 메일과 유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러한 시도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빈번하다는 점이다. 정부 외교라인 당국자는 “업무와 유관한 관계자가 보낸 문건인 것처럼 속여 가짜 메일을 보내는 경우가 1주일에 두세 번가량 있다”고 했다. 청와대가 안보실 사칭 메일에 대해 “허위ㆍ조작 정보가 생산ㆍ유포된 경위가 대단히 치밀한 데다 담고 있는 내용 또한 한미 동맹을 깨뜨리고 이간질하려는 반국가적 행태”라고 규정하면서 경찰에 수사까지 의뢰한 만큼, 비슷한 사건에 대한 조사가 병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