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꼭 한 달 남았네요. 며칠 전 끈을 정리했어요. 책상 정중앙에 있는 서랍에 좋아하는 것들을 넣어두는데 제일 많은 것은 끈이에요. 재질도 색상도 다른 끈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는데, 실제로는 선물 포장할 때 제일 많이 써요. 묶었다 풀었다 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때도 있어요. 마음에 드는 묶기가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하거든요. 어디까지나 제 관점에서, 받을 사람의 느낌에 가까워질 때까지 거듭하거든요. 하나의 긴 끈에서 잘라 쓴, 잘린 그 끈에서 또 잘린 여러 길이의 끈들을 한 손에 간추려보았어요. 고단하거나 어긋났다고 멈춘 순간들도 있었지만, 건네고 싶은 ‘꿈틀꿈틀 마음’이 있었구나, 확인했어요.
끈은 끝단만 있어서 어느 모양도 품을 수 있지요. 끈은 ‘칭칭’에도 관여하지만 ‘스르르’에도 관여하지요. 연애편지는 칭칭과 스르르 사이로 묶어야 하는데, 쏠리는 마음은 칭칭에 가까워지지요. 그래서 태워지고 마는 것이 연애편지이고, 묶었던 자리가 유독 표시가 나는 것이 연애편지를 묶었던 끈이지만, 끈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쓰임에 최선을 다한 것이지요. 맬 것도 묶을 것도 없게 된 끈은 비로소 자신을 잊을 수 있는 타이밍을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자신을 잊으면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는 시간이 열리지요. 온몸으로 접촉한다는 면에서 뱀과 끈은 닮은 원형이지요. 끝단만 있는 끈은 머리와 꼬리가 달린 뱀이 되고 싶지요. 나아감이지요. 나아감은 꼬리가 돌아가자는 말을 꺼낼 때까지 오를 수 있는 언덕과 바라볼 수 있는 먼 바다의 나타남이지요.
끈은 ‘나 잊기’였나봐요. ‘다른 무엇이 되는 시도’였나봐요. 그래서 저도 끈을 좋아하나봐요. 이 시를 읽으며 새해에는 끈 하나를 묶는데 더 오랜 시간을 써도 좋겠다는 당위를 얻었어요. 제 방식의 칭칭과 스르르 사이의 묶고 풀기를 발명해야겠어요. 문득 이유 없이 서랍을 열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면 ‘꿈틀꿈틀의 마음’이 작동되고 있나, 그것부터 확인해봐야겠어요. 리본체조 선수처럼, 어느 날인가는 먼 바다가 보이는 ‘끈의 언덕’에 올라가보고 싶거든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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