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실기 끝나는 2월초까지 사교육 기승
교습비 총액 상한 없어 시간 늘리면 합법
지난해 정시모집으로 미대에 합격한 황모(23)씨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강남의 한 미술학원 정시 실기 대비반을 등록했다. 하루 12시간, 총 45일 과정을 듣는데 학원비 600만원을 냈다. 이미 7월 수시 시즌이 시작하면서 매달 160만원씩 학원비를 지불한 탓에 부담이 컸지만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황씨는 “그림 그리는 기술을 강조하는 미대 입시 특성상, 정시 때 누구 도움 없이 합격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비쌌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예체능 계열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막바지 고액 사교육이 올해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학원들은 수능 직후부터 주요 예술대학의 정시 실기 시험이 끝나는 2월 초까지 ‘집중 코스’ 혹은 ‘파이널’이란 이름을 내걸고 한 달에 수백만원에 달하는 실기 대비반을 운영한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실기 비중이 큰 예체능 계열 특성상 울며 겨자 먹기로 고액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있다.
29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서울 강남구의 한 입시미술학원은 수능 직후인 11월 16일부터 1월 26일까지 2개월여 동안 주 6일 하루종일 수업하는 조건으로 무려 801만원을 받고 있다. 성북구의 유명 체인 미술학원은 2달도 안 되는 기간 497만원을 받았으나 ‘가장 싼 편’에 속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체대 입시 학원은 1월에 있는 학교별 실기 시험 전까지 300만원의 수강료를 내야 했다.
작년 고3 자녀의 체대 입시 준비를 지켜본 학부모 김모(46)씨는 “대학마다 시험 과목이 다르고 선택 과목도 있어 학원 도움이 필수적”이라며 “체대 자녀를 둔 엄마들은 다들 마지막에 목돈이 든다고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실기 준비를 주로 ‘개인 레슨’으로 하는 예비 음대생들의 비용 부담도 심각한 수준이다. 작곡과를 지망하는 고3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44)씨는 “이대로라면 수능 치고 두 달간 대략 1,000만~1,500만원 정도 들 것 같다”며 “부담이 많이 되지만 떨어지면 ‘이렇게 안 해서 떨어졌나’하는 후회가 남을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기간 지방에 거주하는 예체능 계열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은 배로 커진다. ‘방 값’까지 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남의 한 미술학원 인근 고시원에서 한 달 넘게 살며 실기 준비를 했던 미대생 김모(19)씨는 “지방 친구들은 수능 마치고 다들 경황 없이 올라와 대부분 고시원에 머무는데 강남은 고시원 월세도 45만원씩 한다”며 “여기에 학원비, 물감 연필 같은 재료비까지 합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밥은 편의점서 삼각김밥이랑 컵라면으로 때울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같이 입시철만 되면 사교육비가 급등해 학생과 학부모들을 괴롭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지만, 현재로선 교육당국이 이를 제재할 방법이 딱히 없는 상황이다. 교습비가 총액 상한 없이 분당 단가로 매겨지는 구조이다 보니, 교습 시간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높은 교습비를 받는 경우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습비의 분당 단가는 교육지원청별로 다르게 책정되는데, 강남의 입시 미술 교습비를 예로 들면 1분에 206원이다. 입시 미술 과정이 하루 12시간, 총 45일로 이뤄졌다고 가정했을 때 667만4,400원만 넘지 않으면 ‘합법적’이라는 얘기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예체능 입시를 치르는 학생들을 학교에서 대비해주지 못하다 보니 이 부담이 학부모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예체능 입시 자체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실기 대비 수요 사교육을 잠재우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choikk999@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