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디자인 회사에 입사한 김모씨는 ‘오전 9시30분 출근, 오후 6시30분 퇴근’을 조건으로 연봉 2,000만원을 받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썼다. 그런데 야근이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자정까지 야근은 기본이고, 일이 몰릴 때는 다음날 새벽 4시30분까지 연속해 일을 시키기도 했다. 자정 넘어 퇴근하더라도 다음날 오전 11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했다. 게다가 이런 야근은 ‘공짜 노동’이나 다름 없었다. 시간외 근로 수당을 급여에 포함시켜 일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여서 연장근로수당을 줄 수 없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었다.
김씨 제보를 받은 노동ㆍ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7월부터 11월까지 22주간 김씨의 근무기록을 분석한 결과, 1주 최장 법정근로시간 52시간을 넘긴 주가 9주나 됐다. 이 기간 김씨가 보상 받지 못한 ‘공짜 노동 시간’은 261시간 49분이며 이를 임금으로 환산하면 313만1,790원에 달한다. 직장갑질119는 2일 “김씨가 노동청에 체불임금 진정을 해 이 돈을 돌려 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포괄임금제는 경비원 등 감시 업무나 대기시간이 많은 업무처럼 노동시간 계산이 어려운 경우가 아닌 한 대부분 무효”라고 강조했다. 이는 정부 역시 인정하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본보와 인터뷰에서 “근로시간을 측정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 (포괄임금제를) 허용하는 법원 판결대로 관행을 바꿔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힌 정부의 의지가 의심된다는 것이 직장갑질119의 평가다. 이 단체는 “사용자들에게 유리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탄력근로제는 신속하게 추진하면서도, 직장인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명백한 불법인 포괄임금제는 또다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떠넘기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괄임금제 개선 논의가 사회적 대화기구로 넘어가면 언제 결론이 날지 모르는 데다가, 포괄임금제가 타협 대상으로 전락해 개선을 대가로 경영계가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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