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파인더] 9ㆍ19 군사합의 한달
지난 9월 열린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9ㆍ19 군사합의가 11월1일 부로 이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우발적 군사충돌 가능성을 낮추는 동시에 한반도 평화정착을 견인하기 위한 신뢰 증진 조치라고 정부는 설명했지만 북한의 기습도발 가능성을 오히려 키워준 합의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급기야 예비역 장성들 사이에서 “정부가 안보를 포기했다”, “우리 군의 손발을 묶은 합의”라는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군 안팎의 다수 전문가들은 군사합의에 대한 우려의 상당 부분은 “과장됐다”고 입을 모았다. 군사적 유ㆍ불리를 따질 수는 있겠지만, 우리 군이 충분히 감당할만한 수준의 합의라는 것이다. 다만 만의 하나의 사태라도 대비하는 것이 군의 역할인 만큼 실제 우리 군의 대북태세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에 대한 보완책은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진 않았다. 9ㆍ19 군사합의를 놓고 최근까지 나온 문제점 지적과 이에 대한 반론을 조목조목 따져봤다.
◇서북도서 주둔 해병대가 고립됐다?
서북도서에 주둔 중인 우리 해병대 전력은 황해도를 관할하는 북한 4군단 전력에 비해 열세다. 따라서 우리 해ㆍ공군이 해병대 뒤에 버티고 있는 게 서북도서 지역에 대한 우리 군의 기본 전략이다. 그런데 9ㆍ19군사합의 때문에 해ㆍ공군의 손발이 묶이며 북한 4군단 전력이 기습할 경우 이에 대응하기 어려워졌다는 주장이 나온다. 예를 들면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우리 공군 전투기가 서북도서에 진입하지 못하게 돼 이 지역에서의 남북 간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공군 전투기가 서북도서에 투입되는 일은 원래 드물다는 게 군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군 관계자는 3일 “2014년 7월 최윤희 합참의장 시절 북한 미그-29 전투기 2대가 북방한계선(NLL) 인근까지 내려오는 긴급 사태가 발생해 공군 F-15K 전투기 출격 명령이 있었던 때를 제외하면 서북도서 지역에 전투기를 출격시키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 간 군사적 긴장감이 높은 이 지역에 전투기를 구태여 투입해 북한을 긴장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해군 함정이 대응하기 어려워졌다는 주장도 부풀려진 측면이 크다. 9ㆍ19 군사합의로 함정의 포문 덮개를 닫았을 뿐 통상적 경비활동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만약 이 지역에서 기습도발 한다면 그때는 이미 군사합의가 깨진 것”이라며 “그 때 우리 군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NLL 유명무실화 됐다?
남북이 서해 평화수역 조성을 위해 새로운 경계선을 긋기로 하면서 NLL이 효력을 잃었다는 주장도 공공연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남북은 “판문점선언에 명시된 바와 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 평화수역을 만든다”고 군사합의에 명시했다. 또 평화수역 설정 범위에 대해선 “쌍방 관할 하 섬들의 지리적 위치, 선박들의 항해 밀도, 고정 항로를 고려해 설정하되 구체적 경계선은 향후 출범할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확정한다”고 했다. “NLL 일대”라는 식으로 대략적 개념에만 합의하고 구체적 경계선 획정 문제는 군사공동위로 미뤄 둔 셈이다. 즉 북한이 NLL을 서해 상 경계선으로 용인할지, 결국 인정하지 않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문제다.
◇한강 하구 열리며 북 특수부대 침투 길 열렸다?
남북이 김포반도를 아우르는 한강 하구를 공동이용하기로 함에 따라 이곳을 통한 북한군의수도권 침투가 쉬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이곳 경계태세를 보완할 필요성까지 부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박휘락 국민대 명예교수는 “한강 하구는 오랫동안 북한군의 유력한 대남 침투루트였다”며 “한강 하구 공동이용 합의는 한국의 아르덴 숲을 북한에 열어준 꼴”이라고 비판했다. 아르덴 숲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프랑스 방어요새 마지노선을 우회해 프랑스를 기습 공격할 수 있었던 루트다. 박 교수는 특히 “북한 민간 선박이 한강 하구를 드나들게 되면 그만큼 남측 저지선에 대한 정보가 북한에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군 소식통에 따르면 한강하구 북측지역에서 북한은 대남 침투기지 3곳 이상을 여전히 운용 중이다. 신종우 한국국방포럼 사무국장은 “북한군 대남기습 도발에 대한 우리 군 대비계획에 한강하구는 여전히 유력한 통로로 상정돼 있다”며 “공동이용 전에 방어선을 강화하고 출입 선박 검색절차를 먼저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성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유속이 워낙 빨라 이곳을 통해 대남 침투조가 남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민간 선박 출입이 가능해진다고 해서 수도권까지 위험해졌다는 주장은 과도하다”고 경계했다.
◇무인기 못 띄우며 대북감시망 구멍?
일면 타당한 지적이다. 우리 군이 공중 전력에서 북한군을 압도하는 만큼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손해를 본 것은 남측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가 공군력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기 때문에 전방지역 비행금지구역 설정만으로 대북감시망이 약화됐다는 주장 역시 어불성설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공평원(예비역 공군 준장) 성신여대 교수는 “비행금지구역 밖에서도 여전히 북한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다”며 “우리군 전체 공중감시능력을 생각하면 군사합의로 인한 영향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기존 자산인 고고도무인정찰기와 금강ㆍ백두(RC-800), 새매(RF-16) 정찰기, 군사위성은 군사합의와 무관하게 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단ㆍ군단급 무인기 무력화로 전방 감시가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군 관계자는 “사단ㆍ군단급 무인기는 전방 육군 부대가 전쟁 시 마크해야 할 북측 부대를 감시하기 위한 장비이지, 평시에 사용하는 정찰자산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단ㆍ군단급 무인기가 애당초 정찰자산이 아닌 만큼 무인기 무력화로 대북 감시력이 약화됐다는 논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셈이다.
◇장사정포는 건들지도 못한 합의?
수도권을 겨냥한 북한의 주포(主砲)인 장사정포를 묶지 못했는데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다고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러나 하나를 얻기 위해선 하나를 내줘야 하는 게 협상의 기본이다. 북한 장사정포를 후퇴시키기 위해선 남측의 다연장로켓(MLRS)인 천무나 구룡도 뒤로 물려야 한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화력까지 제한하려 들 수도 있다. 과거 남북 간 군비통제 협상을 담당했던 예비역 육군 장성은 “이번 합의는 비핵화라는 정치적 목표를 군사적 긴장완화로 뒷받침하는 수준의 합의”라며 “장사정포나 천무 등을 철수시키는 합의까진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포 사격 훈련 중단으로 포병전력 약화?
실제 군 내부에서 우려가 적잖은 부분이다. 특히 육군은 군사합의에서 ‘해상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함에 따라 강원 고성군 송지호 사격장을 쓰지 못하게 됐다. 유일한 실사거리 포병 사격장이 문을 닫게 된 것으로 육군은 당장 새로운 사격장을 찾아야 하는 입장이 됐다. 송지호 사격장은 특히 최대 사거리 80km의 다연장로켓인 천무의 사격훈련이 이뤄지던 곳이다. 우리 군 스스로 ‘북한 장사정포 킬러’라며 천무의 화력을 과시해왔던 점에서 천무 사격 훈련 중단은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북한도 남측과 똑같이 해상으로의 사격훈련을 못하게 됐으니 남측만의 손해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이에 대해 신종우 사무국장은 “우리 군은 주민 민원 때문에 사격장 부지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지만 북한군은 바다로 쏘지 않는 대신 내륙으로 얼마든지 사격훈련을 할 수 있다”고 재반박했다.
◇GP 철거... 결국 남측 손해?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철거가 DMZ에 대한 남북 간 감시능력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DMZ 내 북한군 GP숫자(160여개)가 남측(60여개)을 압도하는 만큼 똑같은 숫자의 GP를 철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산술적으로 DMZ 안에는 100개의 북한GP만 남게 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남북이 10개씩 GP를 뺀 것은 시범적 조치에 불과하다”며 “본격 철수 과정은 구역별 철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설명대로 구역별로 철거가 진행된다면 오히려 북한군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반론도 나온다. 지난 1일 군사분계선(MDL)을 넘는 북한군 1명을 우리 군은 감시장비를 통해 발견했다. 이처럼 GP를 철거해도 남측 GOP(일반전초)의 과학화경계시스템은 그대로 돌아가지만, 북한군은 그렇지 않다고 군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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