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65) 전 외교부 장관이 취임 전에 강제징용 사건 처리를 두고 일본 전범기업 측 고위 인사와 대응방안을 논의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와 청와대가 강제징용 피해자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재판개입 과정에 검찰은 윤 전 장관이 도화선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3일 한국일보 취재결과, 2013년 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에서 외교국방통일분과 인수위원을 맡았던 윤 전 장관은 주한 일본 대사를 지낸 무토 마사토시(70ㆍ武藤 正敏) 미쓰비시 중공업 고문을 만나 미쓰비시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2년 5월 대법원 파기환송심 사건과 관련해 한ㆍ일 외교관계 악화를 우려하며 대응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토 전 대사는 2010년 8월~2012년 10월 주한 일본대사로 일하다가 퇴임 후인 2013년 1월부터 미쓰비시중공업 고문으로 재직 중인 상태여서 검찰은 윤 전 장관이 박근혜 정부 첫 외교장관으로 취임하기 전부터 전범기업 측과 교감을 갖고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윤 전 장관 역시 미쓰비시와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소송대리를 맡았던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재직할 당시 해당 판결 직후 꾸려진 ‘강제징용 재판 대응 태스크포스(TF)’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장관 부임 후 외교부는 당초 이 판결을 환영했던 입장에서 급선회해 파기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법원행정처와 외교부는 김앤장을 통해 외교부 의견서를 대법원에 접수한다는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겼고, 윤 전 장관은 2013년 12월과 이듬해 10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서 열린 이른바 ‘소인수회의’에 참석해 해당 판결 파기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근혜 정부 초기 재판 개입에 불을 붙인 윤 전 장관은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에 집중한 양승태 사법부가 적극 나서자 미온적인 태도로 전환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박병대ㆍ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이 같은 내용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양승태 사법부에서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두 사람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영장을 청구했다. 두 사람의 구속영장청구서는 총 266페이지 분량으로 박 전 대법관은 30여가지, 고 전 대법관은 20여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전직 대법관들이 재임 중 업무와 관련해 영장이 청구된 건 헌정 사상 처음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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