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다이어리, 예쁘게 제대로 쓸 방법
20년 전 만해도 다이어리는 주요 ‘생활용품’ 중 하나였다. 직장인과 학생은 생활필수품이나 다름 없었다. 스마트폰은커녕 전자수첩이 보편화되지도 않았으니 다이어리는 일정을 정리하고, 생각을 메모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다이어리는 지금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역할도 했다. 잡지 사진을 오려 붙이는 등 다이어리를 아기자기하게 꾸며 친구들과 공유하거나, 속지와 스티커를 친구들과 교환하며 또래문화를 형성했다.
디지털이 생활을 지배하고 있지만, 다이어리의 위상은 여전하다. 온라인 쇼핑몰 지마켓에서 10월 25일~11월 26일 한달 동안 팔린 다이어리와 달력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38% 증가했다. 문구기업 모닝글로리는 다이어리의 생산량을 지난해보다 30.82% 늘렸다. 지마켓의 한 관계자는 “올해 소확행과 레트로 열풍이 맞물리면서 다이어리도 인기를 끌고 있다”며 “고급 브랜드 다이어리에 많은 돈을 과감히 내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이어리는 일정 관리 기능을 넘어 패션으로도 소비되고 있다. 다이어리를 판촉에 활용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올해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 이전보다 디자인을 강화했다. 스타벅스는 이탈리아 패션브랜드 10꼬르소 꼬모와, 할리스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데일리라이크와 손을 잡았다. 매년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수집하는 직장인 김민선(가명·30)씨는 “다이어리 디자인이 예뻐 어디를 가든지 들고 다닌다”며 “일부러 가방에서 꺼내 손에 들고 걸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다이어리의 가장 큰 매력은 종이에 펜을 눌러 쓰는 ‘손맛’이다. 한 글자씩 적으며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다. 빠르고 간편하게 작성하고, 기록을 쉽게 지울 수 있는 스마트폰과 달리, 다이어리의 글은 파기하지 않는 한 오래 지속되는 기록으로 남는다는 장점도 있다.
외형에 반해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특정 카페에 가서 충성스럽게 음료를 마셔 다이어리를 얻는다 해도 다이어리의 실제 쓰임새는 크지 않다. 새해를 맞아 다이어리에 메모를 하고 일정을 남기다가도 한 달이 채 안 돼 스마트폰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편리한 디지털에 익숙해 있고, 글쓰기가 생활화되지 않아서다.
돈을 들여 얻은 다이어리를 장식품이나 연습장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예쁘게 꾸며가며 제대로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다이어리 꾸미기, 이른바 ‘다꾸’에 취미를 붙여보자.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활동 중인 다꾸 전문가들에게 다꾸 초보자를 위한 팁을 물었다.
나에게 맞는 다이어리를 찾아라
‘인스’ ‘도무송’ ‘마테’ ‘디테’ ‘떡메’ ‘랩핑지’…. 알쏭달쏭한 이 단어들은 다꾸 고수들이 쓰는 은어다. ‘인스’(인쇄소 스티커)는 주문자의 요청에 따라 제작돼 칼선(캐릭터의 윤곽에 따라 이 스티커를 뗄 수 있는 선) 없이 나오는 스티커, ‘도무송’(톰슨 인쇄기의 일본식 발음)은 칼선이 있는 스티커를 뜻한다. ‘마테’는 손으로 찢어 쓰는 마스킹 테이프고, ‘디테’는 디자인이 있는 박스테이프를 말한다. 랩핑지는 A4용지 크기로 나온 포장지, ‘떡메’(떡메모지)는 예쁜 모양이 새겨진 다꾸용 메모지다. 이들 자잘한 소품만 있으면 아기자기한 자기만의 다이어리를 만들 수 있다.
소품 구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나에게 맞는 제품 먼저 찾아야 한다. 작심삼일 유형이라면 먼슬리(월 단위)와 위클리(주 단위) 부분이 혼합된 다이어리를 추천한다. 유튜버 하영으로 활동 중인 신하영(26)씨는 “칸이 넓고 빈 공간이 많으면 쓰는 게 귀찮아진다”며 “3일에 한 번씩 써도 빈 공간이 적어 보일 만큼 칸이 세부적으로 나눠진 다이어리를 쓰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일기 위주로 활용하고 싶다면 데일리용 다이어리를 선택한다. 한 쪽에 하루 혹은 이틀 단위로 칸이 나뉘어져 있어 먼슬리용보다 두껍다. 다꾸에 취미를 붙여보겠다면 왼쪽 측면에 여섯 개의 구멍이 뚫려 속지의 탈착이 가능한 육공 다이어리를 추천한다. 유튜버 보쨘 유세영(27)씨는 “속지 교환이 가능해 다 쓴 속지를 따로 빼서 보관하고 새롭게 꾸밀 수 있다”며 “양장다이어리와 달리 부피가 커져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유행하던 육공 다이어리는 레트로 열풍을 타고 지난해 겨울부터 다시 인기를 끌었다. 커버가 투명한 육공 다이어리는 겉표지를 자유롭게 꾸밀 수 있다. 다이어리에 귀여운 열쇠고리까지 달면 개성 있는 다이어리가 완성된다. 유튜버 나키다이어리 정의선(32)씨는 “다이어리뿐 아니라 스티커, 메모지도 복고풍이 유행”이라며 “문구에도 레트로 바람이 불고 있다”고 했다.
‘나만의 책’ 다이어리 꾸미는 법
중학생 때부터 다이어리를 작성한 유씨는 세 가지 종류의 가위를 사용한다. 끈적이는 박스테이프를 자를 때는 프린텍 가위, 미끄러운 스티커를 자를 때는 고쿠요 가위를 사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문구 용품들을 사모으지 말라”고 당부했다. “처음엔 하나만 해보는 거예요. 비슷한 분위기와 색감의 스티커 여러 개를 붙여보는 거죠. 다꾸를 하다가 아쉬운 부분이 보이면 그 때 하나씩 용품들을 구매해도 늦지 않아요.” 영화 티켓이나 결제 영수증도 좋은 장식이 될 수 있다. 영화 감상 소감을 적거나 여행 후기를 남긴다.
손재주가 없다면 욕심 부리지 말고 구도를 맞추는 데만 집중해본다. 메모지와 스티커를 잘 배치하기만 해도 꾸밀 여지는 크고도 크다. 신하영씨는 “악필인 이들은 글씨를 최대한 작게 쓰고, 글을 쓸 때 칸을 넘지 않도록 한다”며 “단순한 것만 지켜도 다이어리가 예뻐 보인다”고 했다.
다꾸에 취미를 붙였다면 유행하는 빈티지 콘셉트에도 도전할 만하다. 도일리 페이퍼(케이크나 빵을 잴 때 밑에 까는 종이)에 붓으로 커피 물을 들이거나 압화 스티커, 해외 우표, 빈티지 버스 티켓 등을 속지에 붙인다. 스탬프나 실링왁스(황동인장)를 이용하기도 한다. 정의선씨는 “밀랍 봉인하는 실링왁스를 속지에 붙이면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살아난다”며 “가격도 1만~3만원대로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 많은 이들이 쓴다”고 했다.
SNS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손지현(24)씨는 헌책방에서 영어 원서를 구입해 활용한다. 원서를 찢어 속지에 붙이거나 반듯하게 잘라 육공 다이어리에 속지 대용으로 끼워 넣는다. 손씨는 “예쁜 아이템은 원래의 용도에 구애 받지 않고 최대한 활용한다”고 했다. 액세서리에 쓰는 레이스, 잡지 사진도 오려 붙인다.
인쇄소 스티커, 랩핑지 등은 주로 SNS,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구입한다. 일반 문구 용품과 달리 매수가 많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중고거래도 활발히 이뤄진다. 인터넷에서는 한 개당 15~20원씩 받고 인쇄소 스티커를 대신 잘라주는 ‘인컷 알바’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숙제가 아냐”… 꾸준히 쓰려면 부담을 버려야
다이어리를 꾸준히 쓰려면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떨쳐야 한다. 유세영씨는 “다꾸는 숙제가 아니니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된다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며칠을 안 써도 쓸 마음이 생긴 때부터 다시 쓰면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 나만의 책이 완성된다. 정의선씨는 “일기를 메모로 생각한다. 평소 메모지에 간략히 일정 등을 적어놓고 이걸 모아 다이어리에 붙인다”며 “따로 시간을 내야 한다는 부담을 버려야 질리지 않는다”고 했다.
정 쓰기 싫다면 스티커 하나라도 붙여본다. 유씨는 “꼭 글로만 채워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라”고 했다. “그 날의 기분을 표현하는 스티커만 붙이는 거죠. 내 마음과 똑같은 노래 가사 한 줄만 쓸 수도 있고요. 저는 여행 갔다 온 날은 힘들어서 여행 일정만 붙여놔요. 그것만 봐도 추억이 되살아나거든요.”
정의선씨는 “새 다이어리에 아낌없이 투자하라”고도 했다. 정씨는 “내가 보기 예쁜 노트여야 계속 손이 간다”며 “1만~3만원 정도 나를 위해 투자하면 다이어리에 그만큼 애정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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