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년째 찬반 팽팽
“녹지국제병원, 외국인만 진료해 의료계 영향 적을 것”
일각선 “미허가 시술 행위 등 통제 못하는 상황 올 것”
文정부, 영리법인 ‘적폐’로 지목… 확대 가능성 높지 않아
중국 자본이 투자한 국내 첫 투자개방형병원(영리병원)인 제주녹지병원이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열게 됐다. 김대중 정부가 동북아 의료허브를 구상하며 투자개방형 병원을 제한적으로 허용한 지 16년 만이다. 제주도는 녹지병원이 외국인 의료관광객만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이용 대상을 제한했지만, 영리병원이 물꼬를 튼 것 만으로도 의료공공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영리병원은 외부 투자를 받고 진료 수익이 생기면 배당할 수 있는 ‘주식회사형 병원’이다. 2002년 제정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8개 경제자유구역에 한해 외국인 투자비율이 출자 총액의 50% 이상, 자본금 500만달러(약 50억원) 이상인 외국계 투자병원의 설립을 허용하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외국인과 외국법인에 한해 영리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제주특별법이 제정됐다. 현행 의료법상 국내 의료기관은 비영리법인으로 운영돼 병원 수익은 병원에 재투자해야 하는데, 영리병원은 기업처럼 이윤을 남겨 투자자가 회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거센 찬반 논란으로 영리병원 설립은 16년간 제자리걸음을 해 왔다.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해온 측은 새로운 자본 투자가 이뤄지면서 의료서비스 질이 향상되고 환자의 선택권이 넓어질 뿐 아니라 의료산업 육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보건의료시민단체들은 “영리병원이 이윤만 추구해 병원비가 폭등하고 건강보험제도가 무력화되는 등 의료체계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고 반발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녹지국제병원의 경우 외국인 관광객만을 진료하므로 국내 의료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거라고 본다. 이만우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은 “국내 의료기관도 법상은 비영리법인이지만 일부는 비급여진료를 위주로 하는 등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영리병원의 허용 범위와 진료분야 등에 대한 원칙을 마련하고,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 간의 역할을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도 “영리병원의 설립을 무조건 막을 게 아니라 국내 공공병원을 늘리고 민간병원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쪽이 의료영리화를 막기 위한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실제 적어도 문재인 정부에서는 영리병원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는 관측이다. 지난 4월 복지부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인 ‘조직문화 및 제도개선 위원회’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과 자법인(자회사)을 통한 영리목적법인 설립을 ‘적폐’로 지목해 허가 중단을 요구했고, 복지부는 해당 권고를 받아들인 상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녹지병원 허가 자체가 의료 민영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당장 우후죽순 영리병원 신청이 늘진 않겠지만, 보건의료체계 규제 밖의 사례가 하나 생긴다는 의미에서 위험한 결정”이라며 “의료비를 결정하는 수가부터 국내가 아닌 외국 취득 면허만 가진 의사의 진료 행위, 국내에서 허가받지 않은 시술 등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복지부는 녹지병원 승인 이전인 2014년 중국 CSC그룹의 ‘싼얼병원’ 설립 계획을 적극 검토했다가 불허했는데, 줄기 세포 시술을 관리ㆍ규제할 방안이 없다는 게 불허 이유 중 하나였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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