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게임’ 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연내 북미교착 타개 구상 어긋난 김정은
북미정상회담 이후가 유용 판단할 수도
‘연내’를 20여일 앞둔 시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초미의 관심사다. ‘답방’은 한반도 최고의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연내 답방 여부 자체보다 답방이 제안ㆍ수용됐던 배경과 애초 답방을 통해 얻고자 했던 효과, 북미의 답방 관련 이해관계 등 더 본질적인 질문들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돌이켜 보면, ‘가을 정상회담’, ‘종전선언’, 그리고 ‘서울 답방’은 한국의 모멘텀 확보를 위한 승부수들이었다. 4ㆍ27 판문점선언은 가을 정상회담과 연내 종전선언, 9월 평양 정상회담은 연내 서울 답방이라는 ‘시한 목표’를 승부수로 던졌다. 특정 이벤트를 제시하고 그것이 갖는 모멘텀을 통해 정세의 동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남북 및 북미가 이 모멘텀을 의식하며 움직이도록 하는 일종의 ‘장치’인 것이다. 팽팽한 타임라인을 제시해 협상과 이행의 처짐을 방지하겠다는 의도였다. 서울 답방은 연내 종전선언을 구체화하고 남북 이행 사항들을 견인하는 일종의 장치로 고안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북한의 입장이다. 서울 답방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하고 김 위원장이 수락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런데 당시 노동신문 보도에는 ‘연내’라는 말이 없다. “서울을 방문할 것을 약속하였다”고만 돼 있다. 문 대통령의 발표에도 의도적으로 뺐다고 볼 수 있다. 여러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시한을 특정하지 않은 김 위원장의 답방 수용에 한국이 ‘연내’라는 시한을 설정하고 싶어했을 가능성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란 단서를 달고 발표했지만 정작 북한 보도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답방 수락은 신중한 내부 검토 없이 이뤄진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이었을 개연성이 있다. 그래서 정세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사후적으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연내’를 뺐을 수 있다.
사실 평양 정상회담 목적은 7월부터 조성된 북미 교착 국면 돌파에 있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고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처음으로 비핵화의 구체적 방법과 대상까지 제시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하루속히 북미 협상의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성과가 가시화되길 기대한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에게 북미 협상을 진전시키는 데 유용한 ‘장치’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의 중대 전환으로 강한 내부 저항들을 무마하며 왔을 가능성이 있다. 일종의 성과 약속을 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북미의 시간은 6ㆍ12 이후 지지부진했다. 올 들어 오히려 대북 제재 조치가 추가됐을 뿐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유용성과 적절한 타이밍에 대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주목할 부분은 9월 평양 공동선언 이후 미국의 ‘시간 게임’이 본격화된 것이다. 9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직후 시간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 고위 관계자들의 입에서도 서두르지 않겠다는 얘기가 쏟아졌다. 시간 제한에 쫓겨 졸속으로 북미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남북 이행 시간표에 구애되지 않고 미국이 시간을 주도하겠다는 의도다. 한편 북한이 시간에 쫓길 만한 약점을 포착하고 역으로 협상 전술화 했을 수도 있다. ‘친서 외교’와 트럼프 면담, 정상회담을 통해 빠른 시간 내 불확실성을 돌파하고자 했던 북한은 결국 북미 2차 정상회담 연기의 기정사실화 이후 ‘침묵’을 선택하고 말았다.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과 연내 이행이라는 시간표를 통해 북미 교착을 돌파하고 미국의 행동 변화를 끌어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의 시간 게임으로 남북 시간표가 무력화됐다. 북한 입장에서 미국에 무언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통로로 문재인 대통령을 활용하겠다는 절박함이 있지 않은 이상 오히려 답방은 김 위원장이 뭔가를 내놔야 하는 무대일 뿐이다. 만일 북한이 내부 정비를 끝내고 대미 협상을 본격화할 의지가 있다면 내년 초 북미 정상회담 이후 서울을 답방하는 게 더 유용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결국 답방은 북미 사이의 비핵화ㆍ상응조치의 현실화 수준과 연동돼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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