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적 이해관계ㆍ지역사업 추후 편성에 악용
올해 유난히 짧았던 심사기간 탓에 예산안 심사가 ‘초치기ㆍ밀실심사’로 진행되면서 과거보다 예산안에 첨부한 부대의견이 부쩍 늘었다. 부대의견이란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하면서 예산 집행과정 시 고려해야 할 사항을 명시한 것이다. 입법부가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지만, 반대로 쟁점 사업에 대한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정리하는 데에도 활용된다. 무엇보다 예산에 넣지 못한 지역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우회로로 악용되는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예산안 부대의견을 놓고 ‘제2의 쪽지예산’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예산 심사 과정에서 논란이 됐거나 특정 지역을 위한 특혜성으로 본예산에 빠졌던 각종 지역사업 예산들이 부대의견에 대거 반영됐다. 대전시의 숙원사업인 ‘대덕특구 리노베이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내용이 부대의견에 담겼다. 해당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국무총리실 소관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 서구갑)의 지역구 관련 사업으로, 박 의원은 ‘숙원사업 빅3’ 중 하나로 꼽으며 “용역비 10억원을 반영했다. 중부권 광역경제권을 조성하겠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특정 지역의 철도ㆍ도로 사업도 부대의견에 명시됐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조속히 시행하는 방안도 들어갔는데, 경기 양평은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의 지역구다. 인천공항철도 환승할인 관련 방안을 강구하도록 하고, 2020년도 예산안 심사 전까지 추진경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농축어업 관련 예산들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점도 눈에 띈다. 농축어업 지역구의 경우, 해당 지역 의원들이 관련 예산을 반영하기 위해 쪽지예산을 주고 받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경우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 사업 성과 제고를, 해양수산부는 어촌뉴딜300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하도록 했다.
해수부가 진행하는 국가어항 사업의 경우 특정 지역 두 곳이 부대의견에 명시됐다. 진두항(인천 옹진)과 장목항(경남 거제) 두 곳인데, 모두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역구다. 인천 옹진은 국회 예결위원장인 안상수, 경남 거제는 예결위 소속 의원인 김한표 의원이 해당 지역을 맡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사업 가운데 대전 동구 소제지구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조기에 추진하도록 했다. 예산소위 소속인 이장우 한국당 의원이 해당 지역구 의원이다. 이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관련 사업 예산을 확보했다며 홍보하기도 했다. 이밖에 김해신공항 건설사업과 자동차대체부품 인증지원센터도 차질 없이 추진하기로 못박았다.
여야는 예산안 논의 과정에서 정치적 쟁점이 됐던 부분을 부대의견에 넣으면서 체면치레를 했다. 여당은 야당이 대폭 삭감한 청년 일자리 예산의 경우 기금운용계획 변경과 예비비 등을 통해 지원할 수 있도록 부대의견을 넣었다. 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은 정부의 일자리 관련 사업을 견제하기 위해 각 부처 및 산하 공공기관 일자리 추진 실적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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