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을 희망한다 상>
외할머니, 손녀의 손 잡고 40분 거리 읍내 목욕탕 데려가
주거 빈곤 아동 9.7% 달해… “집을 모두 갈아엎고 싶어요”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수건걸이’를 첫 손에 꼽은 일곱 살배기 김희주(가명)양. 평소 잘 웃는 희주는 단 소변이 마려울 때마다 울상을 짓는다. ‘귀신이 나올 거 같다’거나 ‘거미가 무섭다’고 하면서 꾹 참을 뿐, 집에 있는 화장실에는 영 가려 하지 않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가 돼서야 외할머니 손을 잡고 겨우 가는 정도. 그럴 때조차 “집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화장실이야”라고 소리칠 만큼 아이는 화장실이라면 정색한다.
희주네 화장실은 재래식이다. 근처만 가도 악취가 나고, 잠기지 않는 문은 센 바람에 덜컹덜컹하기 일쑤다. 낮에는 그나마 양호. 가족이 잠든 밤에 혼자 화장실에 가는 건 애당초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임시방편으로 방 안에 아기들이 기저귀를 뗄 때 쓰는 간이 변기를 들여놨다. 희주가 맘 편히 용변을 볼 수 있는 곳은,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학교밖에 없다.
희주는 6년 전 홀어머니가 서울로 돈을 벌러 간 이후 외할아버지 김모(58)씨, 외할머니 박모(52)씨와 함께 살고 있다. 평소에는 동네를 돌면서 이런저런 고물을 모아 팔고, 겨울에는 벌목을 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벌이는 겨우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다.
5일 기자가 방문한 강원 횡성군 집은 희주네 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읍내에서 30㎞ 떨어진 산골,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도로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조립식 가건물. 20년 전 도로공사 인부들이 현장사무소로 쓰던 그 가건물, ‘집처럼 보이지 않는 집’이 지금의 희주네 보금자리다. 마당 공터에는 녹슨 드럼통과 H빔, 고장 난 가스레인지 등 각종 고철과 빈 액화석유가스(LPG)통까지 위험천만하게 나뒹굴고 있다. 그곳을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동네라고 해봐야 10가구 정도밖에 없으니까, 같이 놀 친구도 없고 저기(마당)에서 줄넘기 하고 놀거나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거죠.” 외할머니가 말했다.
본격적인 한파가 닥치기 전인데도 집 안은 냉기로 가득했다. 애초 주거용으로 지어진 게 아닌 터라 다른 집들처럼 기본적인 난방 능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 패널 벽면에 덧댄 나무합판들, 창문 틈에 구겨 넣어진 단열재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집 안과 밖의 온도 차이는 거의 없다. 긴 세월 뒤틀린 나무 현관문 사이로 독하게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은 ‘휘잉’ 기괴하게 울어댔다.
겨울엔 씻는 게 고역이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와 집 뒤쪽으로 서른 걸음은 걸어야 세면실이다. 거미줄이 엉겨있고, 벽면과 천장이 화목(火木)보일러 매연으로 시커멓게 얼룩진 보일러실을 거쳐야 한다. 급속온수기가 데운 물은 빨간 고무 통에 담기자마자 산골의 차가운 공기에 싸늘하게 식는다. 그나마도 수도가 얼어버리면 씻고 싶을 때, 씻을 수도 없다. 박씨는 “엄마 없이 자란 티가 난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매주 목욕탕에서 꼼꼼하게 씻긴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 희주를 씻기기 위해 외할머니는 40분을 걸어 읍내 목욕탕에 간다.
외할아버지 부부는 마음만 졸인다. 한 달 수입은 150만원 정도. ‘운이 좋을 때’가 그렇다. 한겨울엔 기름 난방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 나무를 떼는 화목보일러로 난방을 해야 하는데, 99.17㎡ 정도인 집을 그나마 훈훈하게 데우려면 상당한 땔감이 필요하다. 김씨는 “어린 애라도 조금 따뜻하게 키우고 싶어 겨울이 오기 전엔 직접 벌목을 해 땔감을 준비해둔다”고 말했다. 마당 한편에는 마른 나무토막이 벌써 층층이 쌓여있었다.
국내 아동복지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주거빈곤에 빠진 아동들의 실태를 최근까지 심층 조사, 13일 최종 보고서를 발표한다. 희주처럼 화장실 같은 기본시설이 열악하거나 아예 없는 집(최저 주거기준 미달)에 사는 아이들이 국내 전체 아동의 9.7%(94만4,104명)라는 게 보고서 내용이다. 이 중 8만6,605명은 판잣집 비닐하우스 여관 고시원처럼 주택이 아닌 곳에 살고 있다.
주거빈곤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문제는 연쇄적이고 심각하고 광범위한 수준이라는 게 재단의 분석이다. 주거빈곤가구 및 일반가구 아동 303명을 조사한 결과, ‘집에 친구를 초대할 기회가 없다’는 비율은 주거빈곤가구 아동(66.9%)이 일반가구 아동(36.2%)보다 2배 가량 높았다. 주거빈곤가구 아동의 절반 이상(55.9%)은 집 안에서 책을 읽을 공간조차 없다고 답했고,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자신만의 공간을 갖지 못해 우울과 불안, 공격성 지수도 더 높다는 게 재단의 결론이다.
폭염엔 사우나처럼 푹푹 찌는 방을, 혹한엔 두꺼운 옷을 입고 얼음장 같은 추위를 견뎌야 하는 것도 아이들 몫이다. 재단 측은 “환기가 되지 않아 곰팡이가 점령한 비위생적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만성적으로 아토피피부염과 비염을 달고 산다”며 “오래된 세면대가 부서져 씻다가 얼굴을 다치는 등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집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고 역설했다.
50년 된 무허가 주택에 거주하면서 ‘집을 모두 갈아엎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최수지(18ㆍ가명)양. 최양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23㎡ 남짓 단칸방에 산다. 혼자만의 시간이 누구보다 필요한 그는 ‘나만의 방이 있고, 나만의 책상이 있고, 나만의 침대가 있는’ 또래 친구들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집 안으로 발을 들일 때마다 자신에게 허락된 공간이 조금도 없다는 생각에 그저 답답한 심정일 뿐이다.
집이 안식처가 되지 못하니, 집 밖을 나돌게 된다. 반에서 1, 2등을 할 정도로 아직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최양이 집에서 공부를 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책상 위에 옷가지 수십 벌과 온갖 짐을 쌓아놓는 바람에 책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지 오래다. 공부를 해야 할 때면 낮은 상을 펴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허리가 아파온다. 답답할 때면 지갑과 휴대폰을 들고 여기저기 정처 없이 쏘다닌다. 만나주는 친구가 있으면 좋고, 아니어도 관계 없다. 그게 어디든 집보다는 편하다. 최양은 “네 살 터울 언니가 대학 입학에 따라 타지로 가기 전까진 네 가족이 한 방에서 생활했던 때도 있었으니, 좀 나아진 건가 싶기도 하다”라면서도 “이젠 정말 아무리 작아도 혼자 있을 수 있는 방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힘없이 말했다.
조부모와 고모, 아버지와 함께 낡은 흙집에 사는 김민수(17ㆍ가명)군은 집 자체가 부끄러움이다. 친구들과 약속을 할 때면 무조건 집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장소를 잡는다. 집에 놀러 가도 되냐는 말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친구 부모가 차로 데려다 주는 바람에 친구들이 집을 알게 됐을 때, 김군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그럴 때면, 철 없는 행동인 줄 알면서도 어른들을 원망하게 된다고 했다.
당연히 다른 친구들의 '집다운 집'에 놀러 갈 때면 부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좋은 집을 보면 신기한 마음에 춥지는 않은지, 베란다에 바람은 안 들어오는지 꼬치꼬치 캐묻기도 한다. 지금 김군의 자리는 부엌 옆 작은 공간이 전부라, 식구들이 밥을 먹을 때는 잠이 깨 늦잠을 자지 못하고, 책상이 없어 공부도 엎드려서 한다. 김군은 "크지는 않더라도 제대로 누워 쉴 수 있게 내 방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보고서 작성을 위한 연구를 수행한 경기북부아동옹호센터 전성호 소장은 “최저 주거기준을 적극 적용하면 주거빈곤 아동은 100만명을 넘어선다”라며 “그간 주거정책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주거빈곤 아동 보호에 국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공동기획입니다.>
횡성=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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