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 아마존 판매 5일도 되지 않아 아시아 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한국 출간 2년여 만에 누적 판매 부수 100만 부를 돌파한 조남주 작가의 인기 소설은 성공적으로 일본에 상륙했다. 하지만, 소설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과 비하도 함께 수출된 것으로 보인다.
12일까지 일본 아마존에 올라온 리뷰 23개의 평점 평균은 3.4점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더 많았다. 긍정적인 평가는 대체로 “이는 어느 나라에나 통하는 사회 현상”이라거나 “많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절망”이라며 책에 공감한다는 내용이었다. 반면 부정적인 평가는 책을 ‘쓰레기’나 ‘독’에 비유하며 조롱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평점 분포는 1점과 5점으로 양극화됐는데, 별점 5점을 준 사용자가 14명이고 별점 1점을 준 사용자가 9명이었다. 이 중 아마존에서 책을 구입했다고 분류된 사용자는 2명으로, 모두 별점 5점을 부여했다.
책에 대해 긍정적인 리뷰를 남긴 사용자들은 “이것은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라며 소설에 담긴 내용들이 어떤 여성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났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소설 속 김지영이 겪는 경력 단절, ‘독박 육아’ 등 현실이 일본의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제임을 시사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를 분석해 발간한 ‘일본의 여성 고용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여성의 연령별 취업 곡선은 경력 단절로 인해 2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취업률이 급감하는 ‘M’자 모양을 그렸다. 보고서는 아베 정부의 여성 고용 정책으로 여성 연령별 취업 곡선의 ‘M’자는 완화됐지만 많은 여성이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고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사회의 여성 차별 문제를 직접 언급한 리뷰도 있었다. 한 사용자는 “나도 82년생”이라며 “도쿄대 의학부 입시 여성 차별 소식에 아무것도 느끼지 않은 이들은 공감하지 않겠지만, 이 뉴스에서 뭔가를 느낀 사람에게는 큰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도쿄대 의과대가 2011년부터 남성 입학생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여성 지원자의 시험 점수를 감점해왔다고 지난 8월 보도했다. 당시 “여성은 대학 졸업 후 결혼과 출산으로 의사 직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는 대학 관계자 발언이 보도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본보 8월 2일자 기사 참고)
소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중엔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소개한 사용자들이 남긴 ‘사과’가 절반을 차지했다. “한국인으로서 죄송합니다”라고 밝힌 한 사용자는 “하지만 나도 당신들(일본인들) 때문에 오타쿠가 됐다. 이것은 복수”라고 주장했다. ‘여성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집약한 망상’ 등의 악평 외에도, “한국인이 아마존에 독을 넣었다”며 소설의 일본 출간을 관동대지진 당시 퍼졌던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루머를 빌려온 평가도 있었다.
한국의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일본 아마존에 올라온 악평을 공유하며 “이건 진짜 독을 푼 게 맞다”는 등의 반응을 올리는 사용자들도 있다. 11일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에는 ‘일본 아마존 82년생 김지영 리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저건 진짜 (일본에) 독을 푼 거다”, “방탄 티셔츠로 난리 친 거 생각하면 깨소금”이라는 등의 반응이 뒤따랐다.
이는 반(反)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네티즌들의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네티즌들에게 ‘82년생 김지영’은 타인의 사상을 검증하는 척도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이돌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이 지난 3월 팬 미팅에서 근황을 묻는 질문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답했을 때, 일부 네티즌은 “아이린이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다”며 그의 사진을 찢거나 불태웠다. 배우 정유미도 영화화되는 ‘82년생 김지영’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9월 알려지며 악플 세례에 시달려야 했다. (본보 9월 13일자 기사 참고)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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