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자수 작가 이정숙 개인전
내년 佛유네스코본부 전시 앞두고
국내서 먼저 병풍 등 25여점 공개
붉은 비단에 비단실로 수놓은 팔보 문양이 화려하면서도 품위 있다. 법륜(바퀴살) 모양을 중심으로 법라(소라), 보산(양산), 보병(꽃병) 등의 보물들이 추상 기법으로 새겨져 상상력을 자극한다.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여덟 가지 길상의 상징을 전통자수로 표현한 이정숙(63) 작가의 ‘팔보문’이다. ‘팔보문’은 다음달 9일까지 서울 중구 롯데호텔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작가 개인전의 대표작이다. 고증과 도안 기획하는 데 1년, 염색하고 수놓는데 1년이 걸렸다. 이 작가는 “우리나라는 예부터 이웃나라의 문화를 우리 고유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우수성을 지녔다”며 “우리 불교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팔보 문양을 어떻게 더 우리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작업했다”고 했다.
이번 개인전은 내년 4월 프랑스 유네스코 본부 전시장에서 열릴 전시를 앞두고 국내에서 먼저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전시에는 병풍, 불교자수, 보자기, 흉배, 장신구 등 25여점이 공개된다. 박소화 롯데호텔갤러리 큐레이터는 “입구는 큰 병풍 작품으로 시선을 끌었고 이어 화려한 복식 자수를 배치해 섬세한 기법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왕세자, 문무백관이 입는 관복에 장식하던 표장인 흉배는 전통의 미를 유지하면서 색과 형태에 작가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넣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의복, 마구 등 생활용품의 형태로 이어지던 자수는 현대적인 감각과 결합해 국제적인 예술이 됐다. “장인의 면모에 예술성까지 두루 갖춘 행위”로 평가 받는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우리나라는 장인이라 하면 못 배우고 우직한 이미지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해외에서의 인식과 달라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했다.
중국, 일본의 동양자수와 구분되는 한국 전통자수만의 우월성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동양자수는 푼사(고치를 켠 그대로 꼬지 않은 명주실)로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만, 전통자수는 꼰사(푼사를 여러 가닥 꼬아서 만든 실)를 이용해 굵기에 따라 입체감 있게 표현하며 주로 상징적인 이미지를 묘사한다.
이 작가는 “꼰사는 500년 유지되는 푼사 작품보다 두 배 이상 수명이 길어진다”면서 “서양자수보다 기법이 많고 실생활에서도, 궁중에서도 다채롭게 쓰였던 독보적인 예술”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2014년 프랑스 앙드레말로 문화협회에서 명장 칭호를 수여받았고,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터키 미국 등 다수의 국제 전시를 열었다.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물한 ‘화문수 자수 보자기’를 제작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유네스코 전시 외에도 내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 등 국제 전시가 예정돼 있다.
이 작가는 “전통자수는 단순한 공예품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하나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의 형태로 해외에 전파돼야 유산으로 남을 텐데 물려받으려는 이들이 없어 힘든 상황”이라며 “(해외 전시가) 전통자수와 보자기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