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軍 지시로 금수산태양궁전 방문… 방문증 없어 생명 위협 겪어
2014년 보상 신청 기각에 작년 소송… 법원 “민간인 우회공작도 대북공작”
“남조선 사람이 위대한 김일성 수령을 접견하다니 영광이십니다.”
1990년대 후반 군의 ‘우회공작원’이었던 민간인 A씨는 ‘김일성 주석의 시신을 확인하라’는 특명을 받고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에 방문했다. 김 주석은 1994년 7월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역사적 만남을 앞두고 사망해 궁전에 안치됐다. 이후 ‘조문파동’으로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방북 자체가 어려운 상황. 앞서 1986년 모 언론의 ‘김 주석 사망’ 오보를 그대로 사실로 인정했다가 호되게 비판 받은 적 있는 군 당국으로서는, 민간인 방북을 통해서라도 김 주석 시신 및 안치 상태를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다.
궁전 내부는 층마다 검은 정장 차림의 요원이 암호를 확인하는 등 경비가 삼엄했다. A씨는 안내에 따라 시신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돌며 8번 고개를 숙였는데, 김 주석 시신은 혹과 검버섯 등이 그대로 보존돼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생했다. 김 주석이 사용하던 집무실도 그대로였고, “동무들, 우리는 우리 대로 가는 기야”라는 생전 육성도 생생하게 들렸다. A씨는 귀국 직후 평양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군 당국에 보고했다.
A씨는 제3국을 경유해 북한에 침투해 대북 첩보를 수집하는 우회공작원으로 숱한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A씨는 통일부의 공식 방북 승인을 받지 못해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와 정보사 승인만 받고 북한을 방문했을 때 보위부 소속으로 추정되는 요원 2명이 숙소에 들이닥쳐 권총을 겨누며 “방북증을 보여 달라, 안기부 요원 아니냐”고 추궁하는 상황을 겪었다. 공식 방북증이 없었던 A씨는 경제교류를 위해 방문한 민간인이라고 해명한 끝에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2000년대 초까지 A씨는 수 십 차례 중국을 방문해 탈북자 지원 및 대북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했고, 중국 공안에 체포돼 고문을 받기도 했다.
“오로지 국익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생명의 위협을 감수한 A씨에게, 정보사는 돌연 아무런 보상 없이 연락을 끊었다. 배신감을 느낀 A씨는 2014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심의위원회에 “특수임무를 수행한 사실을 인정해달라”며 보상을 신청했다.
그러나 보상심의위는 “특수임무수행자보상법상 특수임무를 수행했거나 교육훈련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보상금 지급을 거부했다. 정보사가 관련 내용을 상세히 확인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A씨는 마지막 수단으로 지난해 법원에 소송을 냈다. △정보사에 보관된 공작계획서 △이력서 제출한 뒤 경비지원을 받으며 임무 수행한 점을 근거로 들었고, 각종 보고 자료와 북한에서 촬영한 사진도 제출했다.
최근 법원은 “보상금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 박형순)는 판결문에서 “민간인을 공작원으로 채용해 제3국을 경유해 북한에 침투시켜 첩보를 수집하는 우회공작도 대북공작방법 중 하나”라면서 “비록 군인이 아니더라도 군 첩보부대에 소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통일부의 공식 방북 승인 없이 북한에 가는 것은 일종의 이적행위로 고도의 위험이 수반된 임무였다”면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에 잠입한 것은 아니지만 첩보 수집 목적을 숨기고 방문한 이상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대북 침투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1990년대 순수 민간인 출신 ‘대북 우회공작원’ 활동을 보상법상 특수임무로 인정한 이례적 판결이다. 앞서 ‘흑금성’ 박채서씨가 정보사 제대 후 안기부 공작원으로 활동한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보상심의위가 불복해 항소하지 않을 경우, 판결은 그대로 확정된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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