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소방서 구조대 6인
“연립주택 4층에 세살배기” 듣고 헬멧 녹는지 모르고 필사의 구조
“아이가 빨리 회복돼 되레 감사… 국가직 전환으로 안전강국 희망”
헬멧이 녹아 내리는 화염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져 세 살배기 아이를 구해낸 홍천소방서 119구조대원들. 국민들은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한 김인수(55) 소방위와 최재만(45), 박동천(44) 소방장, 김덕성(36), 이동현(30) 소방교, 홍일점인 여소연(25ㆍ여) 소방사에게 ‘화(火)벤저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들은 올해 10월말, 강원 홍천군 홍천읍의 한 다세대주택 4층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출동해 화마(火魔) 속에서도 끝까지 어린 생명을 살려낸 홍천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다. 이들은 사고현장에 도착 당시, 강한 열기로 내부 진입 자체가 어려웠지만 이불 위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어린이를 무사히 구조해 냈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의인들이 있어 든든하다’ 에서 ‘소방관에게 쓰는 세금은 아깝지 않다’까지 칭찬 글이 이어졌다. 익명의 시민이 홍천소방서에 피자와 치킨이 한아름 배달된 것은 물론 충북 충주 예성여고 학생들은 감사의 손편지를 보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감사인사까지 전했다. 지금도 각지에서 격려 메시지를 적은 화환과 인형 등 의인들에게 배달되고 있다.
‘해피뉴스’의 주인공인 된 대원들의 삶이 현장에 출동했던 10월 28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명인사가 됐다.
팀장인 김 소방위는 “아일랜드에서 유학 중인 딸(28)이 현지 보도를 SNS를 통해 보여주며 아빠가 국위선양을 했다고 해 유명세가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활짝 웃었다. “사고 덕분에 수십년간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에게도 전화가 왔으니 저도 큰 선물을 받은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하다 보니 이제 넉살도 꽤 늘었다는 의인들. 대원들은 거실과 베란다 방향으로 섭씨 1,000도가 넘는 화염이 절정에 이른 당시를 또렷이 기억했다. 20년 넘게 1만4,000번 이상 현장에 출동한 베테랑인 김 소방위는 “시야가 50㎝도 확보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갇혀 있다’는 말에 낮은 포복으로 아이에게 다가갔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동물적인 감각이 나온 것이었어요. 아이의 호흡이 미세하게 잡혀 여기서 빠져나가면 살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아이와 함께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그는 “4층에서 1층까지 어떻게 뛰어내려 왔는지 아직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고 말했다. 화염과 유독가스 속에서 빠져 나온 아이도 새 생명을 다시 얻은 것을 아는지 큰 울음을 터뜨렸다. 대원들도 이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화재 진압과정에서 헬멧이 녹아 왼쪽 뺨에 2도 화상을 입었던 박 소방장은 “아이가 무사해 다행”이라며 “지금은 다 나았다”고 의연함을 보여 국민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무조건 다시 뛰어들 것”이라는 그는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됐으니 영광의 상처 아니겠나”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원들은 지금까지 아이의 집을 찾아 건강을 살피는 등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에는 소방서로 초대해 소방차를 태워주고 장비 체험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최 소방장과 김 소방교는 “빨리 건강을 되찾아 되레 고마울 따름”이라며 “대원들이 아이의 큰아빠와 삼촌이 돼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달 또 한번 귀감이 됐다. LG복지재단으로부터 받은 의인상 상금 6,000만원을 강원소방장학회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흔쾌히 기부한 것. 대원들은 “국민들의 성원으로 받은 상금인 만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쓰는 것이 맞다”고 의견을 모았다. 열악한 근무조건 속에서도 이웃들을 먼저 생각한 이들이 또 한번의 큰 박수를 받는 이유다.
대원들의 바람은 소방공무원이 하루 빨리 국가직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처우개선이 아닌 국민 모두가 양질의 소방서비스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들은 “자치단체의 재정여건에 따라 인력과 장비의 차이가 나서는 곤란하다”며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데, 서울 강남과 홍천사람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차이 나면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라는 따끔한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김 소방위와 대원들은 19일부터 차례로 연차 휴가에 들어갔다. 화재진압과 구조는 물론 전국에서 가장 넓은 관할구역을 관리하느라 함께 하지 못했던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지는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단지 며칠뿐이라 미안할 따름이다. “소방관으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과분한 국민들께 사랑을 받았습니다. 내년에는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홍천=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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