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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지난 10년간 총리만 6번 바뀐 호주… 리더십 위기 속 총리가 또 바뀔까

입력
2018.12.20 19:30
수정
2018.12.26 16: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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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월 호주 총선

지난 2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 직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한 문서를 들여다보는 장면이 포착됐다. 메르켈 총리의 손에 들려 있던 문서에는 모리슨 총리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적혀 있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메르켈 총리가 재임 중 만난 호주 총리는 모리슨 총리가 6번째였다. 2005년 처음 총리직을 맡은 메르켈이 장수 총리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호주 총리가 그만큼 자주 바뀌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호주 유력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이 사진에 “이 사람은 누구지?”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는데, 이는 호주의 정치불안을 꼬집은 것이다. 지난 10년간 6번이나 바뀌었던 호주의 총리가 내년에 또 바뀔 가능성이 있다. 총선의 해이기 때문이다. 호주에서는 내년 5월18일 이전 상원 의석 절반(38석)과 하원 전부(151석)를 교체하는 총선이 열릴 예정이다.

최근 10년간 호주 총리들
최근 10년간 호주 총리들

리더십 위기에 빠진 호주 정치

중도우파인 자유당ㆍ국민당 연정과 중도좌파인 노동당이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호주는 장기집권한 존 하워드(자유당ㆍ1996~2007년 재임) 총리 이후 임기 3년을 채운 총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호주는 하원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데, 리더십 위기가 시작된 시기는 노동당 집권기(2007~2013년)다. 당시 케빈 러드와 줄리아 길라드가 극심한 계파 경쟁을 벌이며 교대로 총리를 맡는 ‘회전문(revolving door) 총리 선출’이 이뤄졌다. 길라드 총리가 러드 총리에게 등 떠밀리듯 퇴진할 당시 ‘정치적인 축출’이라고 비판했던 자유당도 다르지 않다. 자유당은 정작 정권을 잡자 인기가 떨어진 총리를 당내 불신임 투표에 올리는 방식으로 갈아치워 왔다. 첫 번째 희생양은 토니 애벗 총리다. 시드니 카페 인질사건, 호주인이 탑승한 말레이시아 항공 MH370실종 사태에 미숙하게 대처하면서 애벗 총리 지지율이 떨어지자 당시 통신부 장관이던 맬컴 턴불이 불신임투표를 요구, 결국 의원총회를 통해 애벗 총리를 사퇴시킨 뒤 자신이 총리에 취임했다. 전임자를 쫓아냈던 턴불 총리 역시 순탄하게 물러나지 못했다. 턴불 총리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6% 감축하는 친환경 입법을 강행하려 하자 당내 보수파들은 에너지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며 퇴진을 압박했다. 결국 지난 8월 불신임투표를 강행, 총리를 갈아 치웠다.

‘야만적인 정당 쿠데타’(BBC) 끝에 혼란을 수습할 구원투수로 모리슨 총리가 등장했지만, 그가 취임한 이후에도 자유당의 추락은 날개가 없다. 특히 지난 10월 시드니 부촌인 웬트워스에서 치러진 보궐선거 패배는 치명적이었다. 웬트워스는 1901년 이후 두 차례를 빼고 모두 자유당이 차지했던 자유당의 100년 아성이다. 자유당은 이를 지키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무소속 후보에게 의석을 내줬다. 지난달 열린 빅토리아주지사ㆍ주의회 선거에서도 노동당이 8석을 더 얻으며 다수당 자리를 수성한 반면, 자유당은 무려 11석을 잃는 참패를 당했다. 자유당은 웬트워스 보선 패배와 여성의원인 줄리아 뱅크스 의원의 당적 포기로 현재 하원 150석 중 74석만 점하는 소수연정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자유당 의원들의 이전투구식 권력투쟁에 질린 민심을 되돌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웬트워스지역구의 유권자 트레이시 해밀턴은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저들이 인격자인 맬컴 턴불에게 한 짓을 봐라. 기후변화는 중요한 의제다. 자유당은 너무 오른쪽으로 갔다”면서 노동당을 찍겠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에서 자유당의 간판으로 나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캔버라=로이터 연합뉴스
내년 총선에서 자유당의 간판으로 나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캔버라=로이터 연합뉴스

우향우 자유당… 복지ㆍ환경 의제 승부건 노동당

내년 총선에서 자유당의 간판으로 나설 모리슨 총리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이지만, ‘실용주의적 보수주의자’(BBC)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원의원 시절인 2011년에는 호주 앞바다에서 이민자 수십명을 태운 보트가 가라앉아 이들의 장례를 치르게 되자, 여기에 정부예산을 쓰는 건 납세자의 돈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발언하는 등 노골적 반(反) 난민정책을 내세웠으나, 총리가 된 뒤 태도가 다소 유연하게 바뀌었다. 남태평양 나우루섬 수용소에 있는 호주행 난민들을 뉴질랜드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 영연방국가인 뉴질랜드에서 시민권을 얻은 난민은 호주에서 취업할 수 있다.

반면 이민정책과 관련해서는 강경 기조다. 그는 최근 시드니 대도시의 교통난ㆍ부동산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영주권 발급을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극우 포퓰리즘 정당 일국당의 부상을 견제하는 동시에 반 이민정서가 강한 보수층의 표심에 호소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주 서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겠다는 발언도 친(親) 이스라엘 성향이 강한 보수 기독교층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호주의 잠재적 안보위협국으로 2억6,000만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와 다소 불편한 관계가 되더라도 국내 정치적 득실을 따지면 이득이라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임기 만료로 내년 3월 공석이 되는 총독 자리에 지난 주말 군 장성 출신의 데이비드 헐리를 지명했다. 호주 총독은 총리가 지명, 영국 여왕이 승인한다. 5월 총선 때까지 신임 총독자리를 공석으로 남기라는 야당의 요구를 묵살한 것이다. 공화제보다 영연방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 군 출신을 선호하는 보수 유권자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6년 만에 정권 탈환을 노리는 노동당은 사회안전망 강화, 친환경노선 등 전통적 좌파정당 의제로 승부를 걸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말 열린 전당대회에서는 노동당의 내년 총선 전략 골자가 드러났다. 호주의 실업수당인 ‘뉴스타트’의 인상계획이 눈에 띈다. 노동당은 현재 주당 275달러인 실업수당을 75달러 가량 인상할 방침이다. 자유ㆍ국민당 연정은 뉴스타트 인상 요구를 거부했지만, 노동당은 실업수당 인상이 사회안전망 강화는 물론 경기부양효과도 낼 것이라는 입장이다. 보수정권에서 후퇴한 환경정책을 개혁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총리 후보인 빌 쇼튼 노동당 대표는 2030년까지 탄소가스배출을 45% 감축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50%로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대도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주택난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점을 감안, 2022년까지 1억달러, 2029년까지 모두 66억달러를 투입해 주택 25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자유당의 내분으로 지난달 한때 노동당의 지지율이 자유당보다 10%포인트가까이 높아지는 등 노동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변수도 있다. 쇼튼 대표에 대한 호감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13~15일 입소스 여론조사에서 총리 선호도는 모리슨 총리 46%, 쇼튼 대표 37%로 나타나는 등 모리슨 총리에 비해 충성도 높은 지지자가 적은 게 약점이다. 가디언의 정치평론가 케서린 머피는 “쇼튼은 자신을 메시아 스타일로 포장할 수 있는 지도자가 아니다”라며 “대신 그의 자산은 끈기와 대의명분, 그의 뒤에 있는 지지자들”이라고 평했다. 내년 호주에도 또다시 새로운 총리를 보게 될 것인지, 구관이 명관임을 확인하게 될 것인지, 레이스는 이제 막 시작됐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빌 쇼튼 호주 노동당 대표. 호주 노동당 홈페이지 켑처
빌 쇼튼 호주 노동당 대표. 호주 노동당 홈페이지 켑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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