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그걸 가만히 놔뒀어? 어디 선배한테 ‘~씨’라 부르나?”
서울 소재 한 대학에 재학 중인 13학번 장모(26)씨는 최근 졸업한 선배들을 만나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호칭 변화에 대해 얘기했다. 선배들의 반응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새내기인 18학번 후배가 아무렇지 않게 ‘~씨’라고 자신을 부른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후배들이 선배에게 밥이나 술을 사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동급’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학번에 따라 선ㆍ후배로 부르던 대학가의 호칭문화가 변하고 있다. 그동안 과도한 위계질서로 경직됐던 대학문화가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화로 변화되는 것은 긍정적이다. 한국적인 호칭 문화가 동등하고 민주적인 소통을 가로막는 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인간관계가 과거와 달리 정서적 요소가 줄어든 대신 지나치게 물질적, 계산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선배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자신이 원하고 편한 사람들끼리만 소통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며 “결국 인간관계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성이 중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이 취업 준비과정이자 교육제공 기관으로 전락해, 선ㆍ후배 모두 학점과 취업에서 잠재적 경쟁자에 불과한 세태의 반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대학문화를 만들기 위한 대학생들의 자발적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경쟁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대학문화에 침투해 생긴 현상으로 본다”며 “힘들게 경쟁해 대학에 들어왔는데 다시 경쟁을 통해 생존을 해야 하는 젊은 세대의 절박함과 허탈감이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자메시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즉 비대면으로 소통하는 데 익숙하고 얼굴을 보고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의 문화적 특징도 이 같은 세태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이동귀 교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시간의 제한 없이 소통을 할 수 있으니, 굳이 유대감도 느끼지 못하는 ‘선배’와 불편하게 만날 필요가 없는 것이 요즘 대학생”이라며 “역으로 따지면 한 번의 연결로 내 모든 것을 쉽고 빠르게 알아 낼 수 있는 ‘초연결사회’에 대한 피로와 불안감이 내재돼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장석준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자신의 생활을 보호받고 싶고, 타인과 분리되고 싶은 심리적 요인도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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