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인정’ 끌어낸 아주중 학생들
대법 “박해 공포 충분치 않아” 추방 위기 몰리자 하나 둘 뭉쳐
국민청원^1인시위 등 구명활동… 법무부서 결정 뒤집고 난민 인정
“그냥, 친구잖아요. 돌아가면 정말 죽을 수 있겠구나 싶은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서울 송파구 아주중학교 3학년 아이들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우리 손으로 친구를 구했다’는 벅참으로 충만했다. 곧 다가올 긴 방학과 설레는 졸업은 잠시 제쳐뒀다. 최현준(15)군 등이 “절대 잊을 수 없는 요란스러운 중학교 생활을 보냈다”고 정리하자, 다른 친구들도 “맞다”고 깔깔댔다. 왜 아니겠는가, 친구를 위해 대한민국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이 내린 ‘난민 불인정 결정’을 뒤집은 열다섯 동갑내기들의 위풍당당은 에누리없이 아름답다. 20일 어른보다 어른스러운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안토니오(세례명ㆍ15)는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일곱 살 때 한국에 왔다. 같은 동네 아이들이 자연스레 친구가 됐다. 아이들에게 피부색 따위, 언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있는 게 즐거우면 그만. 같은 교회를 다닌 박지민(15)군도, 방과후마다 같이 지낸 추경식(15)군도 그렇게 ‘반 평생 동고동락’한 소꿉친구가 됐다.
올 여름이 찾아올 무렵 매사 활발하던 안토니오의 낯빛이 어두워진 걸 친구들은 놓치지 않았다. 2016년 종교 박해를 이유로 출입국당국에 낸 난민신청이 탈락한 뒤 불복 소송을 진행했으나,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최종 패소한 것이다. 법원은 아직 어린 그의 종교적 신념을 믿지 않았다. “이란에 가도 종교를 숨기고 살면 되기에 ‘박해를 받을 충분한 공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아이들 생각은 달랐다. 안토니오의 ‘난민 인정’을 친구의 목숨을 구하는 일로 여겼다.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이란에서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은 사형에 이를 수 있는 ‘범죄’라고 했다. 그 무렵 종교를 이유로 경찰관에게 맞아 숨진 이란인 소식이 뉴스에 나자 학교가 술렁였다. 처음에는 친한 친구들이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교에서 돕고 싶다는 친구들이 모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안토니오를 알고 지낸 이규비(15)군은 “친구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무조건 도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안토니오가 속해있던 3학년 1반은 모둠학습에서 그의 패소 판결문을 파다시피 했다. 난생 처음 본 판결문을 분석하고, 토론하고, 모의재판을 했다. 한 친구는 2,000장이 넘는 소송자료를 집에 가져가 읽었고, 청와대에 청원 글을 올렸다.
세상의 벽은 높디높았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로 난민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난민이라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만 봐 온 부모들을 설득시키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출입국당국과 법원이 그랬듯 어른들은 안토니오의 의도를 의심했다. 학교와 교육청에 투서가 날아들었고, 학교 페이스북과 관련 기사엔 악플로 도배됐다.
그럴수록 친구들은 더 단단해졌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안토니오와 친했던 장은하(15)양은 “주변의 누가 죽는다는 것을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는데, 친구는 돌아가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어떻게든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거리로 나섰다. 학교에서 30㎞ 가까이 떨어진 양천구 신정동 서울출입국ㆍ외국인청 앞에서 피켓 시위를 시작했고, 안토니오가 ‘난민지위 재신청’을 내도록 도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댓글부대’를 모으고, 국민청원 참여 캠페인을 벌였다. 청와대 앞에서 안토니오를 응원하는 1인 시위도 진행했다.
4개월 넘게 구명활동이 이어지자 세상이 차근차근 달라졌다. 조희연 교육감이 학교를 찾았고, 염수정 추기경은 학생들을 면담한 뒤 국무총리, 법무부장관에 서한을 보냈다. 안토니오의 신앙심을 증언하는 신도 수백 명의 탄원서가 출입국당국에 접수됐다. 결국 법무부 서울출입국ㆍ외국인청은 10월 19일 안토니오의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 출입국당국이 대법원에서 승소하고도 기존 결정을 뒤집은 것은 지금까지 단 16건(결혼 등 가족결합 사유 제외)에 불과할 정도로 이례적이다.
아이들의 가슴은 고새 넉넉해졌다. 오현록 교사 덕분에 친구를 살릴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누구보다 안토니오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앞장섰고, 어른들의 업무를 도맡았다는 것이다. 오 교사는 “모두 아이들이 한 일”이라고 다시 공을 돌렸다. 그는 최근 법원에서 패소한 안토니오 아버지의 난민 인정을 위해 바삐 돌아다니고 있다.
아이들의 시야는 몇 달새 넓어졌다. 안토니오를 구하니 다른 난민도 눈에 밟혔다. “상상해봤으면 합니다. 당신이 태아이고 어머니의 국적을 모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머니는 한국인일 수도 있고 미국인일 수도 있지만, 시리아인이거나, 예멘인, 이란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난민에 대해 반대하며 추방하자고 말 할까요?” 진심이 담긴 아주중 학생회 입장문은 인터넷에서 회자됐다.
학생회장 김지유(15)양은 “난민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모두 이 친구처럼 사연이 있고 사정이 있을 것”이라며 “난민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의 시선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오 교사와 아이들이 청탁을 했다. “안토니오처럼 추방 위기에 놓인 키르기스스탄 중학생이 고양시에 있어요. 언론에서 그 아이의 이야기를 다뤄줬으면 좋겠습니다. ‘꼭’이요!”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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